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 챙기느라 다들 바쁜 이때.
저는 언제부턴가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돈으로 따지면 얼마 안 되는 거지만
평소에 '없어도 되는데 뭘...'하며 사고 싶은 걸 꾹 참았던 물건을
포장까지 해 달래서 미리 준비해 둡니다. (이럴 때마저 세일기간을 이용하는 12년차 주부;;)
올해는 늘 갖고싶었던 머그잔을 골랐어요.
집에 찻잔이 너무 많아서 또 사는 게 웬지 마음에 걸려 참고 있었는데
크리스마스인데 뭐.. 하며 사 버렸어요.
그리고 대접만한 머그잔에 뜨거운 커피를 가득 만들어 후후 불어가며 마시는 시간...
이 때 중요한 건!
집에 아무도 없어야 한다는 것
거실 창으로 햇볕이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오전이어야 한다는 것
커피와 함께 먹는 달달한 것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
가슴 속을 훑어줄 모국어로 된 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런 조건을 만족시킬려면 나만의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5,6년 전이었나.. 사진에 있는 책 속의 젊은 엄마에게 힌트를 얻었습니다.
"요즘 제이미는 토요일 아침이면 거의 항상 포피와 데이지를 데리고 브로우 마켓에 간다.
그때가 나로서는 평화롭게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고마운 기회다.
그리고 제이미에게 있어서는 어린 딸들에게 더플코트를 입히고 차에 태워서 시장으로 가는
그때가 일주일동안 바쁘게 일을 한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세 사람이 집에 돌아온 후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다."
영국의 유명한 젊은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의 아내가 쓴 육아책인데
이 책을 읽은 뒤로 저희집은
주말 오전,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나면
남편이 아이 둘을 데리고 잠시 외출하는 게 거의 정해진 일과처럼 되었죠.
처음엔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아이가 넘어져서 무릎을 다쳐 울고불며 돌아오기도 하고
아빠 혼자 아이들을 볼 때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는데
이 일도 벌써 몇 년이 지나다 보니 아빠도 아이들도 알아서 잘 하더군요.
큰아이는 외출해서까지 엄마 잔소리를 안 들어도 되니 은근히 해방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남편도 잠시 혼자 시간을 가지고 난 뒤의 제 얼굴(비포/에프터)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니
이젠 당연하다 여기는 분위기네요.
세 사람을 현관밖으로 몰아내고 나면
물을 끓이고, 음악을 집안 가득 채우고, 좋아하는 잔에 커피를 부어 책과 함께
자리를 만듭니다. 갓 구운 토스트에 버터랑 꿀을 듬뿍 발라 커피 한 모금, 빵 한 입...
이렇게 '평화롭게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게 일주일 동안 열심히 산 나 자신에게 주는
젤 큰 선물이예요. 제이미 올리버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 남편도
'일주일 동안 바쁘게 일을 한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까지 여길 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이런 사고수준까지 간다면 정말 좋은 아빠일 거 같은데
마지못해 하는 건지.. 이젠 습관처럼 하는 건지.. 아니면 친정이 외국인 아내에 대한 연민으로
그런 건지..
가끔은 가족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것보다
이렇게 따로 또 같이 즐겨보는 게 저희 가족에게는 잘 맞는 것 같아요.
혼자 집에서 시간을 즐기다 보면 일주일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좀 풀리고
생각도 정리되는데.. 그러기도 잠시, 금방 세 사람은 들이닥치고
밖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서로 앞다퉈 얘기하느라 바쁜데 그게 진짜 재밌어요.
가끔은 셋 다 사이가 나빠져 돌아오는 때도 있지만.. 뭐 그건 셋이서 해결할 수 밖에^^
가만 생각해보면,
제가 젤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은 <시간>같습니다.
고요하게 호젓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다음,
다시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기 위한 시간!
정신없고 바쁜 12월이지만, 되도록 이런 시간을 많이 가지도록 노력해 보려구요.
사진에도 나와있는 <줄스와 제이미 올리버의 맛있게 사는 이야기> 추천합니다!
생생하고 리얼한 육아이야기가 너무 귀엽고 감동스러워요.
그리고 고미숙의 <나의 운명사용설명서>, 요즘 읽고 있는데
이런게 진정한 육아서 아닐까, 감탄하며 읽고 있습니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은
자기자신을 먼저 알고 챙기는 것! -
이번 주말도 커피와 고칼로리의 빵을 먹을 시간을 고대하며...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