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정대로라면 '생생한 글쓰기'에 대해 써야 하는데
지금 이 계절에 딱 어울리는 이야기가 있어, 먼저 올립니다.
지난 여름동안 매미를 둘러싼 에피소드들 많으시지요?
이런 이야기도 있네요. 한번 들어봐 주세요.^^



평소에도 동물에 관심이 많던 아들.
올해는 곤충에게 꽂힌 모양이다.
길을 걷다가도 매미 소리가 들리면 한참을 멈춰 가만히 듣거나,
나무 위에 있는 걸 발견하면 또,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 보곤 한다.
한번쯤은 매미 유충이 날개돋이를 하는 걸 보는 게 소원이라고
여름 내내 노래를 부르더니,
예치치도 않은 한여름밤의 어느 날, 아들의 꿈은 이뤄지고야 말았다.

할머니댁에서 사촌들과 자기로 한 여름밤,
공원에서 발견한 매미 유충을 데려와 거실 창문 망에 붙여두고
변화를 지켜보았다.
최대한 창문쪽을 어둡게 해 커튼도 닫아주고, 자주 들여다보지 않고
매미가 집중할 수 있도록 조용히 했다.
그러다, 가끔 몰래 들여다보면 매미 유충은
등 쪽이 껍질처럼 조금씩 갈라지면서 하얀 몸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들의 눈이 평소보다 세 배쯤은 커진 듯했다.


아들은 눈 앞에서 벌어지는 매미의 날개돋이에 압도되었는데

한동안 말이 없어졌다.

어른인 내가 봐도 곤충의 변화는 신비로웠고, 대견했고,

어떤 알 수 없는 엄숙함마저도 느껴졌다.


크기변환_DSCN8235.JPG

두 시간 정도에 걸쳐 천천히
날개돋이를 마친 매미는 날개가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다
아침이 되어야 날아갈 수 있다.
아이들은 밤늦도록 간간히 지켜보다 겨우 잠들었는데
아침이면 날아가버리고 없을까봐 무척 아쉬워했다.

그렇게 8월이 끝나고 학교도 개학을 한 요즘,
집 주변과 길거리 여기저기에 생을 마감한 매미들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아들은 3학년이 된 지금도, 그 모습이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인지 많이 아쉬워했다.
"조금 더 살면 안돼?" 하면서.
내년이면 또 만날 거니까... 괜찮아. 하며 우리는 다시 길을 걸었다.

그러다, 며칠 전에 신문을 읽는데 독자마당에 실린 글에 너무 공감이 되어
베이비트리에도 올려보고 싶었다.
원문은 일본어인데 번역하면 이런 내용의 글이 된다.

<매미와 아들>

지금은 중학생이 된 아들이 7살 무렵에는, 매미를 몹시도 사랑하는 아이였다.
할아버지와 공원에 놀러가는 날이면, 여러 마리를 잡아와 마당에 있는 나무에 올려놓고
'부디부디 우리집에서 알을 많이 낳아, 언젠가는 그 알에서 나온 유충이
 다시 매미로 자라 큰 소리로 울어주기를...'
간절하게 소원을 빌곤 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7,8년이 지난 올해 여름,
유난히 마당의 나무에서 매미 소리가 요란하길래
무슨 일인가.. 곰곰히 생각하던 중에
아. 예전에 아들이 잡아온 매미들이 지금 이 요란함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었다.
자세히 보니 나무 아래에는 손가락 굵기만한 구멍들이 여기저기 나 있는게 아닌가.
매미의 일생이 7년은 걸린다더니, 아들의 나이를 세어보니 딱 그만큼이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거실 쇼파에 누워있는 아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들, 네가 어렸을 때 잡아온 매미들이 낳은 알에서 매미가 태어났나봐!!"
엄마의 호들갑에도 꼼짝하지 않고, 아들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매미 소리 땜에 시끄러워서 TV소리가 안들리잖아요."
그런다.
... ...
아들이 자라는 동안 매미도 함께 땅 속에서 부지런히 자라,
세상밖으로 무사히 나와준 것에 감동하는 건 이제 엄마인 나뿐인가 보다.
졸린 표정으로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현문관을 나서는 중학생 아들을 향해 외쳤다.
"매미가 낳은 알에서 다시 매미가 태어나는 거 보는 게,
네 어린시절 꿈이었잖아. 진짜 꿈이 이루어졌다 그치?!"
엄마의 이런 말에 아들은 피식 웃으며 현관문을 닫았다.
창문 밖으로 멀찌감치 보이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어느새 저렇게 자랐구나..
매미를 그렇게 사랑하던 아들은 이제 내곁에 없네..'
밖은 어느새 매미 대신 귀뚜라미가 울고 있다.


매미와 아들의 성장 스토리.
우리 아들은
내년에도 매미를 변함없이 좋아하게 될까?
조금씩 변해가는 아이들의 성장이
때론 뿌듯하고
때론 아쉬운..
그런 마음이 드는
초가을 아침입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현재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어린이식당 운동’활동가로 일하며, 계간 <창비어린이>에 일본통신원으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1739905/576/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41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달라진 아침, 달라진 일상 imagefile [3] 윤영희 2013-04-22 16639
40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결혼 13년차 4가지 결심 인생 리셋 imagefile [5] 윤영희 2013-03-31 24128
39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일본에서 며느리살이,이보다 더 가벼울 수 없다 imagefile [7] 윤영희 2013-03-18 58844
38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아이들과 된장담근 날 imagefile [5] 윤영희 2013-03-13 19724
37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아이를 울린 엄마, 부엌에서 죄책감을 씻다. imagefile [3] 윤영희 2013-03-06 19374
36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가는 길 imagefile [4] 윤영희 2013-03-01 22926
35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한일 초등학교 입학분투기 imagefile [2] 윤영희 2013-02-21 22628
34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목소리도 아이에겐 스킨쉽이 된다-옛이야기 들려주기 imagefile [7] 윤영희 2013-02-18 16732
33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30년 된 아빠의 장난감 imagefile [9] 윤영희 2013-02-14 20546
32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디테일한 생활멜로드라마 <이웃집 꽃미남> imagefile 윤영희 2013-02-05 15558
31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그리움'을 알아버린 만 네살^^ imagefile [1] 윤영희 2013-02-05 13710
30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40대 엄마가 30대 엄마에게 imagefile [6] 윤영희 2013-01-29 21980
29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그림의 떡 아니 집, 구경이나 하지요^^ imagefile [5] 윤영희 2013-01-24 18208
28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엄마,아들을 이해하기 시작하다]를읽고/아들키우다가 몸 속에 사리생기겠어요! imagefile [7] 윤영희 2013-01-21 21449
27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겨울감성 가득한 윤동주의 동시^^ [2] 윤영희 2013-01-18 12476
26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스케이트장에서 생긴 일 - 세상이 아직 살만하다고 느낄 때 imagefile [1] 윤영희 2013-01-15 14919
25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엄마 교과서>- 베이비트리와 함께 읽고 싶은 책 윤영희 2013-01-08 12471
24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새해 "탈 아파트"소망, 이룰 수 있을까 imagefile [3] 윤영희 2013-01-07 15288
23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마법이 일어나는 아침 imagefile [5] 윤영희 2012-12-25 15334
22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아직도 멍-하네요. imagefile [3] 윤영희 2012-12-21 13269

Q.부부간 육아 방식의 의견충돌 상담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두 아이들 둔 아빠입니다.요즘 자녀 육아로 부부간에 의견이 달라 자주 다투어서 서로 힘든 나날을 보...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