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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색깔이 이뻐 샀던,
8살 둘째의 겨울 모자만 보면
그 귀여운 자태에 나도 모르게 엄마미소가 번진다.

그런데 아이는 벌써 훌쩍 컸는지
색깔이 유치해서 싫어,
이제 이런 거 부끄러워,
갑갑하고 귀찮아 ...
그런다.

모자마저 내 맘대로 씌워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요즘은 참 아쉽다.
아이들과 이런 자잘한 실랑이를 벌이며 한창 겨울살이를 준비할 때인데
올 12월은 일상에 집중하기가 참 힘들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이냐!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들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너무 기가 차고 한심하고,
민망해서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그래도 조마조마하며 지켜봤던 탄핵결과에
놀라고 다행스럽고 집회에 참석하신 분들께 고맙고 미안하고... 그랬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도
아이들은 겨울을 맞이할 채비를 벌써 마치고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현실에 귀를 기울이며 끝까지 잘 지켜봐야겠지만
우리는 또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까,
성큼 다가온 본격적인 겨울, 한 해의 마지막 12월을
아이들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나눠보고 싶다.

아이가 태어난 뒤부터 적어도 10년 정도는
아이들 덕분에 12월을 2배는 더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물론 번거롭고 귀찮은 일도 많지만
조금 더 미리 준비하고,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보면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도 행복한 연말을 보낼 수 있다.
그리 특별할 건 없지만, 10년 남짓한 시간동안 축적해온
우리집만의 <12월 보내는 방법>을 소개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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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겨울엔 역시 뜨끈한 먹을거리가 최고다.
외국살이가 아니라면, 이번 촛불집회 때 광장에 한 냄비 끓여가
나눠먹고 싶었던 음식인데
어묵탕을 만들 때나 남은 어묵 국물이 있을 때,
유부 주머니 속에 날달걀을 하나씩 깨서 넣고 꼬지를 끼워
국물 냄비에 푹 담궈 잘 끓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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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익는다.
유부와 달걀이 둘 다 부드러워져 보들보들한 게 참 맛있고
단백질이 풍부하니 아이들 간식이나 반찬으로도 좋은 것 같다.
따뜻한 국물에 푹 익은 무나 채소를 함께 먹으면
한끼 든든한 식사도 되고,
무엇보다 아이들은 이 음식의 비주얼을 참 좋아하는데
작은 그릇에 달걀을 깨서 그걸 유부 주머니에 잘 넣고 묶는 걸
아이와 함께 해 보면 재밌어한다.

이렇게 사소한 경험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 좋아하는 아이와의 시간,
그리 길지 않다는 것.
10대 아이를 둔 부모라면 다들 공감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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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좋은 크리스마스 용품을 싸게 구입하는 방법.
우리 부부는 1년에 몇 번 안 쓰는 물건을 보관, 관리하는 걸 참 못한다.
그래서 트리도 큰아이가 어릴 땐 사지않고 그냥 없이 지냈다.
근데 둘째가 태어나고 큰아이도 7살 쯤 되었을 땐가,
아이가 너무 간절하게 트리를 장식하고 싶어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혹은 당일부터 어느 가게 할 것 없이
크리스마스 용품을 파는 가게들은 파격 세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물건을 반액 이상까지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기회는 이 때가 딱인데
위에 있는 사진은 그때 산 물건 중 하나다.

트리 모양의 오르골인데
중간 부분을 뚜껑처럼 열면 크리스마스 캐롤이 은은하게 울린다.
구질구질한 부속 장식이 없어 수납이 간편하고
유행과도 크게 상관없는 디자인이니
아이들이 다 큰 다음, 어른들만 즐기는 크리스마스 때도 장식하기 좋을 것 같다.
반액 세일해서 3만원 정도에 산 것 같은데
두고두고 사 놓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물건이다.

크리스마스 이브까지는 가게들도 사람들도 엄청 들떠있다가
막상 25일 이후가 되면 관심이 엄청 줄어드는데
(사실 이 즈음은 쇼핑할 의욕도 안 나는 경우가 많다)
한번 이런 기회를 노려 야무지게 쇼핑해 두면
내년 이후부터 이어질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두고두고 잘 쓰게 된다.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정말 '돌아서면 또 크리스마스' 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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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크리스마스를 기회로 아이의 성장을 극대화하기.

엄마로 오래 살다보면
물건 보는 눈이 점점 생기게 되고
어떤 물건을 보는 순간, '아, 이건 사야 돼!' 라는 직감이 드는 때가 있다.
크리스마스 용품을 눈여겨 보는 것도 벌써 10년쯤 되다보니
올해는 우리집에 작은 소품으로 뭘 더 하나 추가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쓱 구경하다보면 '저거다' 싶은 물건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에릭 칼의 그림을 참 좋아하는데
서점에 갔을 때, 펼치면 팝업북처럼 생긴 12월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1일부터 25일까지, 하루에 하나씩 아이들이 숫자를 넘기면서
25일을 기다리는 달력인데,
우리집 둘째는 잠자기 전에 이걸 하나씩 넘기는 걸
그렇게 좋아라하며 간절하게 25일을 기다린다.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기,
숙제 미루지않고 하기,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기 등

스스로 해야 할 하루 일과를 잘 마친 약속을 지킨 사람만 저 숫자달력을 넘길
자격이 있는 걸로 정했는데
은근히 효과가 대박이다.
누나랑 서로 더 잘 지키려고 경쟁하면서
선물을 손꼽아 기다리는 둘째는 진심으로 하루하루 약속을 잘 지켜내고
스스로 성실하게 보내는 일상에 자신감과 긍지까지 느끼게 되었다.

2학기 기말시험이 한창인 요즘은 산타할아버지에게 잘 보이고 싶어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성적이 잘 나온 시험지만 골라서(몇 개 안된다는게 함정;;)
이브날 트리 옆에 편지랑 놓아두겠단다.
'나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 선물받을 자격 있어요' 이런 뜻이겠지.

40대인 나도 내가 원하는 선물을 산타가 가져온다면
12월 한달 정말 열심히 살 자신 있는데!
댓가를 바라고 열심히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는 괜찮치 않을까.
흐지부지 어수선하게 보내기 쉬운 연말 한달을 바짝 부지런히
밥값 혹은 선물값하는 의미에서
목표를 가지고 성실히 지낼 수 있으니, 아이의 성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로
이 시기를 활용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올해 처음 시도해 본 이 달력은
연도가 쓰여있지 않으니 내년 이후로도 재활용하기로 엄마는 이미 마음먹고
만 오천원이 아깝지 않았다며 날마다 자화자찬 중인데,
이것도 초등 고학년이면 효과가 떨어지지 않을지..
아무튼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이 달력 덕분에 올 12월은 내 잔소리가 대폭 줄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아이와 함께 핸드메이드로 이런 달력을 만들어봐도 재밌지 않을까.
직접 만들면 좀 더 애착을 가지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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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여럿이 함께 크리스마스 음식 준비하기.


사진은 저번에 소개한 적이 있는 <어린이식당> 멤버들과

함께 만들어본 크리스마스 음식 모습이다.


트리 모양의 감자샐러드

과일 생크림케잌

오색 컵케잌

치킨

돼지 불고기

닭 가슴살로 만든 햄 샐러드


화려해 보이지만, 재료비는 깜짝 놀랄만큼 적게 들었다.

상추를 풀밭처럼 큰 접시 위에 넉넉하게 깔고, 음식을 놓거나

붉은 색 방울토마토를 장식하면 이 두 색만으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이 날은, 5명의 엄마가 모여 자기 가정에서 즐겨 해먹는 크리스마스 음식 아이디어를

하나씩 내서 만들고 시식해 보았는데, 정말 맛도 좋고 보기에도 근사했다.


육아와 살림 경력10년이 넘는 엄마들 5명의

요리 경험을 모으니 50년치의 지혜가 되어 이렇게 풍성해졌다.

10명이 모이면 100년치의 지혜를 한꺼번에 나눌 수 있겠지?!

건강한 의식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얼마나 대단하고 감동적일 수 있는지,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나는 제대로 배웠다.

배운 건 잊어먹기전에 바로바로 써먹어야지.


각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는 가족친지끼리, 이웃끼리

함께 모여 삶의 지혜와 따뜻한 시간을 나누면 좋겠다.

올해 우리 가족은 생협의 <어린이식당>에서

크리스마스 음식을 먹고 파티를 즐길 계획이다.

40인분의 음식을 만들어 먹고 함께 놀며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실컷 볼 기대에 벌써부터 마음이 들뜬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우리 곁엔 아직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걸 진심으로 느낄 수 있는 귀한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너무 많이 고단했던 2016년 12월을 그렇게 잘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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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현재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어린이식당 운동’활동가로 일하며, 계간 <창비어린이>에 일본통신원으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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