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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어느 주말.
텃밭 친구들과 고구마와 땅콩을 수확했다.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땅 속에서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는 보물같은 고구마들.

해마다 경험하는 일인데도 아이들은 늘 신기해 하는데
고구마를 캐다가 작디작은 도마뱀 한 마리까지 덤으로 발견한 아들은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했다.
작은 땅 몇 평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하는지,
텃밭에 갈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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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가져온 고구마는
쪄서도 먹고
구워서도 먹고
튀김도 해 먹고
빵이나 케잌에도 넣어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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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랑 얇게 썰어서 말려서 먹으면
말랑말랑한 게
식감도 영양도
아이들 겨울 간식으로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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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한 줄기는 나물로도 해 먹을 수 있으니
새삼
고구마가 대견하고 고맙게 느껴진다.
이 세상에 와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살다
최대한의 쓸모를 남기고 가니,
이보다 더 야무진 삶이 있을까.

어마어마한 돈과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도
온 나라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못살게 굴고
자신의 삶까지 최악으로 만들어버린 사람들보다
고구마의 삶이 백만배는 더 훌륭하고 낫다.

돈 밖에 없는 빈곤.
모두들 돈 때문에 그 난리를 치며 살지만
그렇게나 많은 돈이 있어도
지혜나 인간다움,
그런 모든 것은 최악의 빈곤상태였던 사람들.
가장 돈이 많다는 강남구의 자살률이 높다는 것도
'돈 밖에 없는 빈곤' 때문은 아닐까.

이번 일을 겪으며
세상살이와 육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먹고 살아갈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도와주는 것은 꼭 필요하지만
'돈 밖에 없는 빈곤'한 삶을 살지만은 않았으면 한다.

최소한의 여건과 비용으로도
세상에 쓸모있는 존재가 되고
자기자신도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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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구마에게 돌아와서.
먹을 것을 주는 것으로 고구마의 삶은 끝나지 않는다.
수확이 한창인 밭 한 켠에서 선배 엄마 몇 명이
나물을 해 먹을 수 없는 큰 줄기들을 엮어, 리스 형태로 만들고 있었다.
모두들 집으로 하나씩 가져가 아이들과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들기로 했다.
정말, 아낌없이 주는 고구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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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이미 있는 것만으로도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내는 삶.
고구마밭에서 배운 것이 너무 많다.

경제가 힘들다고 다들 걱정이 많지만
요즘 주말마다 열리는 촛불집회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훌륭한 시민들을 많이 가진 한국은 참 부자구나. 라는 생각.

이미 존재하는 것만을 가지고도 나라살림을 알뜰하게 꾸려갈 수 있는 사람이
새 대통령이 되었으면... 간절히 바란다.
제 자리를 잡는 날까지, 마지막 남은 올해 한달도
야무진 고구마처럼
아이들 열심히 키우고
나도 잘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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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현재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어린이식당 운동’활동가로 일하며, 계간 <창비어린이>에 일본통신원으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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