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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요즘 맨날 술 먹고 (페북에) 글 쓰더라.”

 

우선, 나보다 일곱 살 어린 남동생의 눈썰미에 놀랐다.

맞는 말이다. 요즘 나는 낮과 밤이 분열된 상태로 지내고 있다.

 

조증에 가까울 만큼 기분이 한껏 고조되는 건 출근해서부터 동생 말대로 술 먹고 몇 줄이나마 끼적이거나 사무실에 있는 자정 언저리 까지.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뿐인 고요한 집안에 발을 들이는 순간 태평하게 웃고 떠들던 여자는 사라지고, 까만 동굴에 갇혀 있던 악에 받친 존재가 깨어나 나를 괴롭힌다.

 

지난 1월. 계약직 워킹맘의 밥벌이에 관한 글을 쓸 때는 막연히 설렜다.

구체적으로 준비된 건 없지만 곧 무언가에 몰두할 거란 믿음, 어떤 선택과 변화도 잘 헤쳐 나갈 거라는 자신감이 굳건했다. 그 사이 전에 일했던 국회 비서관 면접도 한 번 보고 왔다.

 

그런데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멈춰버렸다. 이런 걸 공황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는데 몸과 마음이 세상과 분리되어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다.

착지하고 싶지만 무얼 붙들어야 할지 몰라 눈치만 보는 불안한 날들.

살면서 꽤 골이 깊은 나를 만났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만이고 착각이었다.

 

늦은 10시. 여전히 사무실이다.

이번 상반기에 출간할 예정이었던 두 번째 책 원고 수정은 퇴근 후 개인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보기 좋은 대의였을 뿐, 실은 파괴적인 나를 만나기 싫을 뿐이다.

할 일이 있으면 있는 데로 없으면 없는 데로 모니터 앞에 멍하니 있다가 자정 무렵 집으로 가면 동굴 속 여자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질문을 던졌다.

 

안전한 밥벌이야, 하고 싶은 일이야?

일이야, 엄마야?

 

잔인하기도 하지.

그렇게 매일 밤. 폭력과도 같은 선택지를 들이밀며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아이를 낳은 뒤로, 엄밀히 말해 경력단절녀에서 계약직 노동자로 사는 동안 반복돼온 일련의 과정이 - 일을 구하고, 이사를 하고, 일을 하고. 정작 잘하고 싶은 엄마노릇과 글쓰기는 점점 멀어지는 - 구질구질하고 구역질난다고 성토하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었다.

그제야 엄마란 존재를 만난 두 아이는 서러워서 울고, 옷에 오줌을 누고,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목에 매달렸다.

 

미안 미안해. 엄마는 지금 방황 중이야. 마음이 갈 길을 찾고 있어.

그렇게 한 계절이 지났다.

 

회사에서의 일상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밤마다 몸부림친다는 게 거짓말 같을 정도로 평온하고 활기차고, 희망이 넘쳤다.

 

파란 하늘과 19만평의 너른 마당 사이에 자리 잡은 회사가 몇이나 될까. 회사 정문을 지날 때마다 일하러 온 게 아니고 쉬러 온 것 같다는 생각을 매번, 똑같이 하는 사람은 얼마나 운이 좋은가. 

 

입사한 지 2년쯤 되니 적당히 편안하고 익숙하고. 서울에 비하면 일도, 생활도 덜 버거웠다.

가족열람실이 딸린 널따란 도서관에서는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주문할 수 있고, 글을 써도, 책을 읽어도, 드라마를 봐도 좋은 열람실은 언제나 쾌적하고 조용했다. 두 딸은 내 책상에서 5분 거리인 직장어린이집에 들어가 안정적인 보살핌을 받았다.

 

이건 정말 복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데, 살면서 이런 팀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팀 궁합이 최고다.

 

50대의 남자 팀장님은 유머가 넘친다. 차(tea), 역사, 문화. 하여튼 살아가는 모든 것에 조예가 깊어 대화거리, 배울거리가 넘친다.

존경하는 선배의 후배가 되는 일, 장차 내가 되고픈 선배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자체가 설렘이다.

 

팀장님의 좌우명은  '후배가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배가 좋은 선배.'

향이 좋은 차를 우리거나 원두를 직접 갈아서 내린 커피로 손님을 대접하는 상사와 그런 마음에 고마워할 줄 알고, 배우려는 태도를 가진 후배들이 둘러앉은 사무실 생활은 즐거움을 넘어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조직생활에서 어디 일이 문제던가. 늘 사람이 어렵지.

동고동락하는 사람들이 좋으니 성과도 팍팍 나왔다. 작년 기관 설립기념일에는 다섯 명의 팀원 중 세 명이 상을 받았다.

사실 이 정도의 팀워크라면 무서울 일도, 못 해낼 일도 없다. 부러운 시선이 부담일 때도 있고 때로는 오해도 사지만 그게 뭐 대수야.

가, 우리가 이토록 좋은데.

 

작년, 두명의 팀원이 다른 팀으로 전출가던 날. 다 큰 어른들이 회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눈물 콧물을 훌쩍거리며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었다.

한 선배는, 그 해 '나를 만난 것이 제일 큰 행운이었다'는 최고의 찬사를 선물로 남겨주고 떠났다. 그리고 만난 어린 두 후배님들.

 

입사한 지 두 달이 채 안 된 막내 후배가 비밀스런 목소리로 속삭인다.

“진짜 (우리 팀은) 신의 직장인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느 날은 감격에 찬 얼굴로 감탄사인지 질문인지 모호한 말을 한 적도 있다.

“안 선생님, 팀 회식이 이렇게 즐거워도, 기다려져도 되는 겁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나도 미치겠습니다 좋아서)

 

장거리 연애 중인 팀원의 남자친구는 괜히 애가 탄다.

“또 회식이냐?”

(내 남편도 자주 묻습디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호주 일주 이후(애 엄마가 된 뒤로)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을 팀원들과 함께 간다. 심지어 저기 히말라야 아래 은둔의 나라, 부탄으로.

 

아, 매일 밤 만나는 동굴 속 여자의 날선 추궁이 이제야 분명해진다.

밥벌이에 대한 궁리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간절함보다 더 간절한 것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었음을.

함께 꽃구경 갈 계획을 세우고, 새로 나온 영화를 보고, 좋은 책을 돌려가며 읽고, 고구마를 삶아오고, 참외와 참기름을 주고 받고, 주말에도 이런 저런 핑계로 안부를 묻고, 하루 걸러 맛집을 순회하고.

새로 맡은 업무를 멋지게 한 번 해보자고 으쌰으쌰 힘을 모으는 지금의 일상이 유한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몸부림이었음을.

 

2년 뒤를 보장할 수 없는 계약직 직원으로 이 회사에 들어올 때, 사실 나는 ‘관계’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었다. 일이든 뭐든 내가 받는 월급만큼 적당히 계산적으로 주고받을 심산이었다.

그것이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부당한 세상에 대한 항변이고 나를 보호하는 방패로 여겼다.

고용불안 상태에 접어드는 자의 일상은 뜬금없이 불안하고 투쟁적일 테니, 그렇지 않은 자들의 한가로움과 부딪히고 어긋나 상처를 입는 쪽은 나일거라고 미리 재단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게임에서 나는 완전히 졌다.

내가 지금껏 겪어 왔고 앞으로 경험할 변화의 아쉬움과 설렘의 본질이 결국 ‘사람’이고, 그들과 같이 붓고 따르며 채워온 ‘사랑’이었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통쾌한 패배고 감격스런 반전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매번 열병을 앓듯 누군가를 만나고 맘껏 좋아하고 헤어지는 의식을 치렀더라.

함께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내 마음을 전했다.

유난스런 감정몰이가 헤어짐을, 변화를 어렵고 더디게 하는 것 같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을 때 오히려 미련이 적었다. 그만큼 새로운 만남에 더 깊고 빠르게 몰두할 수 있고.

그렇게 맺어온 인연들의 응원을 든든한 빽 삼아 나는 현재를 살아간다.

 

그런데 이번엔 좀 남다를 것 같다.

이 글을 써내려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이토록 저리고 쿵쾅거리는 걸 보면...

 

그날 남동생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잘 봤다. 당분간은 글을 쓰느니 술을 마시고, 책을 읽느니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참말로, 열심히 그럴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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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숙
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이메일 : elisabethahn@naver.com      
블로그 : http://blog.naver.com/elisabeth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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