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jpg

한라산과 너르고 푸른 바다와 바람 속에 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제주라는 단어로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세월호였다. 



비행기 머리에서 안쪽으로 스물 네 번 째 줄에 있는 비상구 창가에 앉았다. 저녁 7시 반. 긴급 상황이 발생해도 전혀 구실을 못할 것 같은 안전벨트가 못미덥다. 엄마 없는 밤이 싫어 떨떠름하게 파이팅을 외쳐주던 두 꼬맹이가 생각나 작은 창문 밖을 더듬어 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불안함이 어서 가시기를 빌며 자료를 훑어본다. 나는 제주도로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이다.


한라산과 너르고 푸른 바다와 바람 속에 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제주라는 단어로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세월호였다. 둘째 아이를 수태하였던 그해 봄이 지금도 또렷하다. 벚꽃이 비가 되어 후드드 떨어지던 날. 수학여행 가는 학생을 태운 배가 침몰했으나 전원 구조되었다는 자막을 보며 얼마나 안도했던가.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녹이 슨 고체 덩어리가 되어 3년 만에 뭍으로 나온 세월호는 그것이 얼마나 처참한 사건이었는지 다시 한 번 각인시켜주기라도 하듯 흉물스럽고 처연하게 널브러졌다.


나를 바라본다.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세상에 보탬이 되며 살자.

그럴듯한 문장 하나를 지어놓고 살던 나는 평화로웠다.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살아감의 본질은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자유와 행복을 위해 떠남이 일상인 삶을 기획했다. 가난하되 스스로 주도하는 삶은 당당하고 힘이 넘쳤다.


세월호는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꿈을 좇는 한 개인이자 두 아이 엄마의 일상이 심하게 흔들거렸다. 이런 세상에 너희를 내놓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하는 회한마저 들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겪어야 할 세상이 한스러워 울었다.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사회에 대한 자각은 살아남기 위한 글쓰기로 이어졌다. 스스로의 힘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키는 자체가 미션 임파서블인 사회에서 일하는 엄마로 사는 것 자체가 투쟁이었다. 

핏덩이 같은 자식을 내 손으로 보살피는 당연한 선택을 한 대가가 집에서 노는 전업맘, 경력단절녀, 계약직 노동자로 폄하될 때. 최소한의 자부심마저 푼돈으로 가치가 매겨질 때. 세상이 부당할수록, 억울할수록 쓰기에 대한 욕망과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의 당위성을 부러 더 키웠다. 


나는 전보다 더 열렬히 사랑하고 자유롭고 싶었다. 주류, 기득권으로 불리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도록 작고 사소한 것에 민감해지고자 했다. 가까운 사람들과 일상, 책, 글을 나누고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세상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월에 무뎌지지 않도록 날을 세우는 일은 피곤하고 고독했지만, 연대하는 이가 늘어날수록 떠도는 삶에도, 글에도 힘이 붙었다. 


면접보고 돌아오는 날 제주에는 돌풍이 불었다. 마침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고생 무리와 같은 비행기를 탔다. 예정된 시각보다 40분 정도 늦게 도착한 공항 출구에는 자식을 마중 나온 부모들이 수술실 밖 보호자같이 초조하게 서 있었다.

그들의 굳은 얼굴 위로, 바다에 빠졌던 아이들이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갈아입을 마른 옷을 챙겨 팽목항으로 갔다던 엄마들이 겹쳐졌다. “오늘 함께 해 주신 경신여고 학생들 고맙습니다.” 연착된 비행기의 승무원이 건넨 마지막 인사에서도 나는 세월호를 보았다.

 

사실 나는 매일 세월호를 타고 내린다. 내 아이가 울고 웃는 매 순간이 그렇다. 어쩌다 아이가 없는 텅 빈 집안에 혼자 있을 때면 사무치는 외로움이 통곡이 되어 쏟아진다.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홉 명의 희생자와 가족들은 목포 신항에 당도한 세월호를 보며 얼마나 가슴이 찢겨 나갈까. 봄꽃을 보며 맘껏 감탄하고 바다를 보며 푸르른 꿈만 키우는 건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기꺼이 안고 나누며 함께 나아갈 것이다.


이런 날들이, 나의 글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2017년 4월 16일 밤을 붙잡고 있다.



파이팅.jpg
엄마 없는 밤이 싫어 떨떠름하게 파이팅을 외쳐주던 두 꼬맹이. 결과는 낙방입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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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숙
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이메일 : elisabethahn@naver.com      
블로그 : http://blog.naver.com/elisabeth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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