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파도를 바라보는 아이. 무슨 생각을 할까? 어린 아이의 뒷모습만 보이는 그림은 아이의 얼굴을 더 궁금하게 했다. 바다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망울이 보고 싶었다. 아이의 시선을 따라 바다를 바라봤다. 하얀 파도가 넘실댔다. 높은 파도의 바다색은 푸른 색을 잃은 채 새하얬다. 사람은 화가 나면 얼굴이 붉어지는데, 바다는 하얘지는가 보다. 태풍이 올 거처럼 몰려오는 이 파도를 아이는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바다를 바라볼까. 다시 아이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파도를 바라보는 아이.png  

  그림 속 아이는 지난 내 모습과도 겹쳐 보였다. 아내와 사별을 하고 얼마 뒤 아이와 함께 떠난 무인도 여행에서 해가 지는 노을 속에서 바다를 꽤 오랫동안 바라본 기억이  떠올랐다. 참 힘들었는데. 그 때 파도는 무척 슬퍼 보였다. 땅 위로 올라가기 위해 긴 여행을 했지만 파도가 할 수 있는 건 가까스로 손을 뻗어 모래를 어루만지는 게 전부였다. 땅과 만날 수 없다는 운명을 확인한 파도는 다시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파도가 슬픈 게 아니라 내 슬픔이 파도마저 슬프게 보이도록 만들었지만, 그 때 내 모습은 저 사진 속 아이의 모습과 무척 비슷했다.
“누구의 그림인가요?”
휴대폰 배경 속 그림을 바라보며 휴대폰 주인에게 물었다. 며칠 동안 의식을 잃었을 만큼 큰 교통사고를 당한 뒤 불행히도 암 진단까지 받은 60대 여성이 간직한 그림이었다. 더 이상 현대 의학으로는 몸 속에서 퍼져가는 암세포를 줄일 수 없는 상황에서 그 그림은 어떤 의미일지도 알고 싶었다.
“제가 그렸습니다.”
전문 작가의 이름이 나올 줄 알았는데, 본인이 그렸단다.
“선생님이 그리셨다고?”
“네.”

 놀란 눈을 한 나를 바라보며 그 여성은 외로움 때문에 그림 실력이 늘었다고 말했다. 외국 주재원인 남편이 외국에서 출근을 하면 외지에서 혼자 남아 그림을 그리거나 꽃을 꽂으며 무료함을 달랬다고 말했다. 그 여성 분이 가져다 준 꽃 화분도 직접 만드신 거라고 했다. 자신의 운명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선 오히려 주어진 하루하루가 자신에게는 덤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던 사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보너스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큰 미련도 슬픔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림 속 아이는 어쩌면 60대 여성의 자신의 모습을 그린 건지도 모르겠다. 비록 나이는 60을 넘겼지만, 외모와 말투는 소녀와 같았던, 두 아이의 어머니. 문장이 글을 쓰는 사람을 닮는 것처럼, 그림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그림을 그린 이와 관계를 맺지 않을까. 그림 속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2017년 늦은 가을.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들었다. 삶의 끝을 생각하는 사람들. 처음 만나기 전에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막상 그들을 직접 만나 뵈니 보통 사람들보다 더 편한 얼굴과 목소리를 지녔다. 한 번은 60대 여성에게 그래도 어떤 미래를 꿈을 꾸느냐고 물은 때였다. 삶의 의미를 생각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질문은 어렴풋하게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생각들을 찾게 하는 힘이 있으니까. 그 생각들을 찾아내면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언어로 표현하기를 기대했다.
 “전 제 물건들을 하나씩 버리고 있습니다. 버리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물건을 버린다…그게 오늘 삶의 의미와는 어떻게 연결이 될까.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그의 설명을 기다렸다.
 “너무 많은 걸 가졌어요. 그렇게 많은 게 필요가 없는데 말이죠.”
 그는 우리가 지나치게 많은 걸 갖기 위해 산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정말 중요한 걸 잊은 채로 말이다. 하긴 대학에 입학을 한 건 대학의 이름을 가지기 위해서였고, 직장에 취직을 한 건 돈을 갖기 위한 이유가 컸다. 자동차를 가지고, 집을 가지고, 심지어 특정한 그룹의 사람들이 누리는 문화마저 가지기 위해 시간을 보낸 게 내 지난 오랜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게 어떤 삶의 의미라는 걸까.
 “전 제 삶이 정리되기를 바랍니다. 떠나는 자는 떠나야 하니까요.”
 그 여성은 자신은 사람들에게 잊혀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 말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한 사람이라도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 고마울 것 같은데, 그 여성은 오히려 잊혀지는 게 나은 편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떠난 사람의 흔적이 많다면, 그건 남은 자들에게 힘들 것 같거든요. 그냥 잊혀지도록 하는 게 남은 가족들에게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 저라고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겠어요. 하지만 남은 가족들은 저를 잊고 그냥 다시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 여성은 “모든 걸 다 내려놓았습니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그 말은 자신의 존재까지도 모두 내려놓았다는 말로도 들렸다. 나를 내려놓은 이유가 그런데 그건 우울이나 절망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남은 가족들을 위한 마음이라고 생각을 하니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보다 내가 아닌 상대를 생각하는 사람들. 그 말을 들으며 왜 신은 이토록 착한 사람들에게 험한 경험과 질병을 주셨는지 순간 원망스러웠다.

 

 2017년 11월 22일, 그리고 밤 11시 51분. 많은 이들은 송년회로 바쁜 나날을 보내거나 준비를 하겠지만, 이 순간에도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삶의 ‘덤’이라며 감사하는 사람들을 만난 건 나에게 많은 걸 배우고 느끼게 했다. 그 분들과 마지막 만남의 시간을 12월 첫째 주에 한 공간에서 함께 하기로 했다. 그 날은 미뤘던 질문을 물어봐야겠다.

 

 그림 속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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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만들고 다듬느라 35년을 흘려보냈다. 아내와 사별하고 나니 수식어에 가려진 내 이름이 보였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기자 생활을 접고 아이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미뤄둔 사랑의 의미도 찾고 싶었다. 경험만으로는 그 의미를 찾을 자신이 없어 마흔에 상담심리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금 꼭 안아줄 것' '나의 안부를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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