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잠깐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 수업 때문에 가끔씩 학부모들의 상담전화를 받았다. 아무리 바빠도 학부모가 어렵게 부탁을 한 느낌을 받을 때면 하루 계획했던 일을 뒤로 미루고 시간과 장소를 잡았다. 지난 5년간 엄마들이 흘리는 눈물을 많이도 지켜봤다. 그 때를 기억하면 전화를 끊을 즈음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많이 힘이 드시는가 보다. 하긴 아이가 그렇게 흔들리는데.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은 자주 자신을 비난하는 말들을 글로 쏟아냈다. 다시 태어나고 싶다. 너무 한심하다. 그리고 가끔씩 자살하고 싶다, 란 표현까지. 그 시간은 들판에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아래에서 거센 바람을 맞는 들풀처럼 흔들리는 아이들의 말이었고, 이런 아이들을 지켜보는 엄마들도 몹시 혼란스러울 것만 같았다. 처음엔 동네에서 학부모와 단 둘이 차를 마신다는 게 낯설었지만 (여전히 개인적인 상담 자리보다는 공개적인 강연회 자리가 더 편하지만) 생각이 얽힐 때마다 지난 시간 동안 엄마들이 보인 눈물을 생각하면서 손수건을 챙겨 들었다.

 

 중학교 2학년. 그 시간은 많은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절망을 경험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특수목적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기 위해서는 대개 5학년 때부터 준비를 하는데, 그 준비는 다름아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들어갈 내신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교육 대학원을 다니면서 지역에 따라서는 일반고등학교가 얼마큼 심각한 상황인지를 알게 되면서 특목고를 준비하는 엄마들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많은 전형이 있는 대학입시와 달리 특목고를 들어가는 중요한 조건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하는 내신 성적이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주요과목의 점수는 A 등급을 유지할수록 유리했다. 아이들도 그 사실을 스스로 잘 알았다. 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를 치르는 5월, 그 달은 가장 먼저 특목고에서 탈락하는 아이들을 걸러내는 시간이기도 했다. 앞으로 시험을 치를 때마다 자신이 원하는 고등학교를 진학할 수 없는 학생들은 점점 더 늘어만 갈 것 같았다.

 

괜찮지 않은 아이들에게 괜찮다 란 말처럼 폭력적인 말은 없다. 인생의 전부가 공부가 아니지.그걸 모르는 아이도 없다. 하지만 그건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말이 아니었다. 그 만큼 아이들은 공허했고 또 절망스러운 감정을 느끼는 시기이기도 했다. 다시 태어나고 싶다 란 말, 너무 한심하다는 말, 그 말들은 대개 오랫동안 품었던 고등학교 진학의 꿈을 접고 자신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말들이었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기가 싫어 그 화살을 가장 고마운 사람에게 돌렸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준 부담감 때문이야. 엄마가 너무 일찍 나를 공부시켰기 때문이야. 비난은 받아주는 사람에게 쏟아 붓는 법이니까.

 

 “요즈음 아이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
 한 마디 말을 했을 뿐인데 벌써 엄마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내 아이가 내 아이 같지 않다는 말. 똑똑하고 성실하던 아이는 어느덧 내 말을 거절하고 밖으로 돌아다닌다는 말. 엄마의 눈물은 잘나가던 직장마저 그만두고 아이를 위해 헌신했던 시간을 원망하는 눈물처럼 보였고, 아이가 절망하는 상황까지 가도록 막지 못한 책임감을 담은 눈물인 것도 같았다. 그 누구보다도 웃는 얼굴이 예뻤던 아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줄곧 임원을 맡아왔던 아이. 가끔씩은 지겨울 정도로 엄마를 부르던 아이의 눈에선 예전의 맑고 선한 눈빛을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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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pixabay )

 

 그런데 난, 역설적이게도 그 엄마의 슬픔이 부러웠다. 아이를 위해서 눈물을 흘려줄 수 있는 엄마가 있는 아이. 누군가를 위해 저렇게 눈물을 흘려주는 사람이 있는 아이는 무척 행복한 아이란 생각이 잠시 스쳤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가 그 엄마에게 조용히 물었다.
“제 옆에 놓인 빈 의자에 아이가 있었다고 한 번 상상을 해 보시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어머님이 하신 이야기를 옆에서 아이가 들었다면, 그 아이는 과연 어머님께 어떤 말을 했을 것 같으신가요.”
잠시 엄마의 눈망울이 흔들렸다. 다시 물었다.
“옆에서 지금까지 아이가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아이는 엄마에게 어떤 말을 했을 것 같으신가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대답을 기다렸다.
“고맙다고 할 것 같아요.”
속에 있는 말을 전했다.
 “고마운 어머니시지요. 어머님은 많이 속상하시겠지만 저에겐 그 속상함이 한 편으로는 안타까움으로 한편으로는 아이를 향한 사랑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당신과 같은 어머니가 있는 아이가 저는 무척 부럽습니다.”

 

 가르치는 아이들의 면면을 보면 교수님의 아이들부터 학교 선생님의 아이들, 기업의 대표와 의사 선생님의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가르치는 아이들은 무척 행복한 조건 속에서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건 부모의 인생이었지, 아이들이 부모와 닮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지난 5년의 시간. 중학생 아이들을 만나고 부모님들을 만나며 배운 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워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아이를 가슴으로 키웠지만 아이가 아빠에게 고마움을 간직하거나 아빠를 깊이 생각을 할 거라는 바람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아이의 마음에 달린 문제이니까. 아이에게 공부하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거실 책장에 양서를 많이 꽂아 두었다면 확률적으로야 책을 좋아할 확률이 높겠지만 그렇다고 책을 집어 들고 읽는 건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공부를 하는 것도 친구를 사귀는 것도 그리고 아빠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생각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였다. 아이가 놀자고 할 때 난 아이와 같이 놀아주는 일, 아이가 궁금한 게 있다고 다가올 때 아는 만큼 설명해 주는 일, 아이를 위해 밥을 해 주고 아이가 원한다면 산책을 함께 하는 일. 함께 시간을 보내주고 때로는 안아주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하지만 어쩌면 중학교 2학년은 이별을 가르쳐 주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와 하나가 되었던 삶이 이제는 떨어져야 한다는 걸 가르쳐주는 시간. 부모가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분노하거나 슬퍼해도 결국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시간. 아이를 위해 헌신했던 시간을 지나, 다시 부모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그런 시간 말이다.
커다란 배움엔 커다란 고통이 따른다. 그리고 내 품 안에 아이가 머무르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 이 시간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삶이 아름다운 건 끝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프란츠 카프카의 말을 떠올리면, 그래서 아이와 함께 있는 초등학교 시절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아이는 서서히 부모 곁을 떠나갈 테니까. 사춘기는 심리적으로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가 독립을 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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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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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만들고 다듬느라 35년을 흘려보냈다. 아내와 사별하고 나니 수식어에 가려진 내 이름이 보였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기자 생활을 접고 아이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미뤄둔 사랑의 의미도 찾고 싶었다. 경험만으로는 그 의미를 찾을 자신이 없어 마흔에 상담심리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금 꼭 안아줄 것' '나의 안부를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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