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결혼하면서 아내에게 약속했던 주말 풀코스 서비스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결혼 초기, 임신한 아내를 위해 제육볶음에 도전했다가 역한 돼지냄새에 내가 되레 기겁을 하고 혼자 몇 점 먹다가 다 버렸다. 그러고는 새로운 메뉴 도전을 포기했다. 그리하여 2011년 현재,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는, 김치찌개ㆍ미역국ㆍ김치볶음밥ㆍ소고기볶음밥 정도다. 계약 파기의 대가는 아내의 지속적인 ‘바가지 긁기’로 돌아왔다. 뭐, 할 말 없다.



   지난주 토요일, 아내는 감자크로켓을 만들었다. 녀석과 나는 사이좋게 앉아서 찐 감자를 으깨며 동참했다. 온 가족이 함께 만든(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크로켓은 맛도 좋았다. 으깬 감자에 다진 쇠고기와 당근을 볶아 빵가루를 묻히면 끝?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거 만들기도 쉽겠는데!



   그 다음주 토요일. 장모님은 지방에 내려가셨고 아내도 친구 결혼식 때문에 먼 길을 떠나야 했다. 녀석과 나는 실로 오랜만에 단 둘이 주말을 보내게 됐다. 세 식구가 아침을 먹는 자리에서 나는 오늘의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성윤아! 아빠가 오늘 크로켓 만들어줄까?”

   그러나 아내는 나의 야심찬 주말 프로젝트에 바로 찬물을 끼얹졌다. 

  “당신이 그걸 할 수 있을 거 같아?”

  “왜? 하면 하는 거지.”

  “냉장고에 크로켓 있거든. 그러니까 그거나 튀겨줘.”



   그래?완제품이 있다면 굳이 내가 또 만들 필요는 없지... 해동을 시키려 냉동실을 열어보니 크로켓이 아닌 돈까스다. 크로켓이든 돈까스든 상관없다. 튀겨서 케첩 찍어먹이면 되니까.

   점심때가 돼서 돈까스 튀기기를 시작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돈까스 몇 쪽을 집어넣었다. 얼마 튀기지도 않았는데 튀김옷이 노릇노릇함을 넘어서 약간 까매졌다. 아이에게 탄 걸 먹일 순 없기에 타기 전에 건져냈고 먹기 좋은 크기로 가위로 돈까스를 잘랐다. 그런데... 돈까스에서 육즙이 나온다. 다 익지가 않았다. 이건 돼지다. 화들짝 놀라 프라이팬에 기름을 더 넣고 다시 튀겼다. 튀김옷은 더 까매졌고 빵가루 찌꺼기까지 범벅이 되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탄 부분은 가위로 제거하고 접시에 올렸다. 나도 같이 식사를 하는데... 맛이 별로다. 돼지냄새가 약간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난 “성윤아, 아빠가 해주니까 더 맛있지?”라고 설레발을 치면서 분위기를 잡았는데 녀석의 반응이 영 시원찮다. 반응이 시원찮을수록 나는 맹렬히 녀석의 입 안에다 돈까스를 집어넣었다. 녀석은 몇 점 받아먹다가 결국 입 안을 가리키며 한 마디 했다.



  “돼.지.냄.새.나.” (헉! 돼지냄새라는 표현을 본능적으로 체득했나...)

  “그래, 아빠가 미안하다. 먹지 마.”



   녀석을 식탁의자에서 내려주었다. 실패다. 녀석의 점심은 나 때문에 부실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저녁때가 다 돼있었다. 이제 저녁이 문제였다. 쇠고기볶음밥을 해줄까? 케첩에 비벼서 오므라이스처럼 해주면 잘 먹겠지? 그런데 쇠고기는 있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녀석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성윤아, 오늘 저녁이 걱정이네... 성윤이는 뭐 먹고 싶어?”

  “돈.까.스. 먹.고. 싶.어.요.”





de0556f13057e0be20fec9d6ee5b12c8. » 고기를 반드시 다 익히려고 자르고 또 잘랐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아까 그 ‘돼지냄새’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당분간 돈까스를 멀리할 줄 알았는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두 번의 실패는 있어서는 안 될 일.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돈까스 튀기기, 돈까스 튀기는 방법... 네티즌들의 조언에 의하면, 돈까스는 일단 기름을 달군 다음에 중간불로 튀겨야 한다.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센 불로 튀기면 튀김옷만 빨리 타고 속까지 골고루 익기가 어렵다는 얘기였다. 그래! 바로 이거였어! 점심 때 실패 원인을 찾은 것 같았다.

   검색한 내용대로 불을 달궜다가 중간불에서 돈까스를 튀기기 시작했다. 한 번 뒤집으니 색깔이 노릇노릇하다.



  ‘고기가 익었는지 어떻게 확인을 해보지... 젓가락으로 한 번 찔러볼까.’



   쿡 쿡 찔러보니 젓가락이 부드럽게 들어가는 게 느낌이 좋다. 왠지 골고루 잘 익었을 것 같은 느낌... 그런데, 그 구멍 사이로 불그스름한 육즙이 흘러나온다. 쿡 쿡 잘 들어간다고 잘 익은 게 아니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그 자리에서 돈까스를 절반으로 뚝뚝 잘랐다. 그래도 조바심이 나 더 잘게 잘랐다. ‘절대 고기가 덜 익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일념으로.

   그런 우여곡절 끝에 점심과 똑같은 상을 차렸다. 몇 점 먹어봤다. 또 돼지냄새가 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녀석은 점심을 부실하게 먹어서 그런지, 저녁 때에는 꽤 먹었다. 다행이었다.





699a1c9d825cf6f8a6f8598eb5204e46. » 그래도 맛있게 먹어주니 그저 고마울뿐...



   그러나 나는 오늘 또 나의 한계를 깨달았다. 만들어진 돈까스를 튀기지도 못하는 나. 결혼 초기, 내게 좌절을 안겨줬던 제육볶음도 돼지고기 요리였는데... 녹이고 얼리고 반복하면 돼지냄새가 더 나는 건가.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요리 잘하는 아빠가 되는 건 정말 ‘미션 임파서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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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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