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oTalk_20160620_163222315.jpg » 나들이를 가서 가족들에게 오카리나를 불러주는 딸. 가족은 딸의 연주를 감상하고 있다. 양선아 제공.

 

* <한겨레> 육아웹진 `베이비트리‘ 생생육아 코너는 필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생생하게 쓰는 육아일기 코너입니다. 베이비트리(http://babytree.hani.co.kr)에는 기자, 파워블로거 등 다양한 이들의 다채로운 육아기가 연재됩니다. 

 

“엄마~ 엄마~ 나는 왜 피아노를 안 배웠어? 우리 반 여자 아이들 가운데 피아노 안 배운 아이는 나밖에 없어. 나 피아노 학원 다닐래. 나도 피아노 배우고 싶어.”
 
어느 날 퇴근한 엄마를 붙잡고 초등학교 2학년 딸이 마치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같은 반 여학생 열 명 가운데 피아노 학원을 안 다니는 아이는 자기뿐이라고 했다. 딸은 자신이 뭔가 결함이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같은 반 여학생 모두 피아노를 이미 배웠다는 사실에 나도 살짝 놀라긴 했다. 동네 아이들을 보면 4~5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피아노와 태권도 학원 정도는 기본적으로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어 그럴 수 있겠다 짐작했지만 말이다.
 
나 역시 아이를 피아노 학원에 보낼까 말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아이가 6~7살 정도 되니 다들 한다는 피아노 교육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고 슬슬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독일 비텐아넨 발도르프 사범대학 음악과 교수이자 독일 듣기예술교육연구소 설립자인 라인힐트 브라스 교수를 인터뷰 때문에 만나게 됐다. 그는 조기 교육이 판치는 세상에서 너무 일찍부터 악기 교육을 시키는 것은 투자 대비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관련 기사 링크 http://goo.gl/qkGatI )

 

23년간 음악교사로 살아온 그는 “아이들의 발달과 성장에 적합한 음악 교육”을 강조했다. 일찍부터 클래식 음악을 악기로 연주시키는 교육보다는 생활 속에서, 놀이하면서, 자연 속에서 아이에게 다양한 소리와 울림을 들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리와 울림에 아이들이 귀기울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악기 교육은 만 8살 정도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라인힐트 브라스 교수의 의견을 들으니 수긍이 되면서 내가 아이에게 악기 교육을 하고 싶어하는 본질적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결국 내가 바라는 것은 아이가 음악의 즐거움을 아는 거야.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줄 알고, 악기 연주를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싶어. 다른 아이가 피아노 멋지게 치니까 내 아이도 피아노 연주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보면 내 욕심이고 다른 아이와 내 아이를 비교하는 마음일 수도 있겠구나. 피아노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없고, 초등학교  입학해서 해도 늦지 않으니 서두르지 말자.’
 
내 생각은 이렇게 정리됐다. 대신 나는 생활 속에서 새 소리, 바람 소리, 물 소리, 사물의 소리 등에 아이와 함께 귀기울이려고 노력했다. 아이에게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어봐~ 저 새 소리 들려?”라고 질문하기도 했고, 휴일에는 음악을 틀어놓고 둘이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기도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아이는 오카리나 방과후 수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봄이가 다니는 학교에는 방과 후 수업에서 오카리나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 수업부터 영어나 창의 수학 등 교과목 수업에 로봇 조립, 요리 등 다양한 수업이 알차게 구성돼 있다. 수많은 수업 가운데 아이에게 가장 듣고 싶은 수업 하나만 선택하라고 했더니, 아이는 오카리나 수업을 선택했다. 일주일에 한 번 아이는 방과후 수업에서 오카리나 수업을 들었다. 소리가 투명하고 맑은 오카리나는 휴대하기도 편리해서 어디에서나 편하게 연주할 수 있고, 오카리나를 배우면서 악보 보는 법도 조금씩 배울 수 있었다. 악보를 전혀 읽지 못한 딸은 악보를 몰라도 운지법을 익혀 연주를 했고, 한 학기 정도 지나니 저절로 악보 읽는 법을 익혀 나갔다. 그렇게 해서 아이는 오카리나를 지금까지 1년째 계속 배우고 있다. 제법 많은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됐고, 중간에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 발표 연주회도 참여했다. 바깥 나들이를 가서 돗자리를 펴놓고 가족들을 위해 오카리나를 연주해주기도 한다. 학교에서 1인1악기 특성화 교육을 시작하면서 2학년 친구들 모두 오카리나를 수업 시간에 배우게 됐는데, 봄이의 오카리나 실력은 더욱 좋아졌다. 친구들도 오카리나를 잘 부르는 봄이를 부러워하기도 했고, 봄이는 친구들에게 오카리나 연주법을 알려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봄이는 자기가 잘하는 것보다 자기가 못하는 부분만 확대해서 인지하고 있었다. 나는 봄이의 마음을 읽어주되, 봄이가 인지 못하는 자신의 강점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봄아, 반 여자 친구들 가운데 피아노를 안 배운 아이는 너밖에 없어 속상했구나.”
“응, 엄마. 다 피아노 칠 줄 아는데 나만 못 쳐서 속상해. 나 피아노 배우고 싶어. ”
“그런데 봄아, 잘 생각해봐. 다른 친구들이 피아노를 배울 동안 너는 뭘 배웠어? 네가 오카리나를 배우기를 원했고, 오카리나를 배웠잖아~ ”
“그렇지~. 나는 오카리나를 배웠지~”
“악기는 얼마나 연습하느냐가 중요해. 봄이는 다른 친구들보다 오카리나를 연습한 시간이 많아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오카리나를 잘 불잖아. 아마 봄이가 피아노를 배웠다면 지금 다른 친구들처럼 피아노를 잘 칠 거야. 피아노를 잘 치는 친구들은 봄이가 오카리나 잘 부르는 것을 부러워할 걸~ 지금도 친구들에게 오카리나 부는 법 네가 알려주고 그러잖아.”
“응. 그렇긴 하지. 그래도 난 피아노 안 배운 게 신경 쓰여. 엄마.”
“엄마가 봤을 땐 네가 정말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면 피아노를 시작해도 돼. 늦지 않았고, 지금 배워도 돼. 그런데 지금 너의 일주일 스케줄을 봤을 땐 피아노 학원에 다니게 되면 네가 너무 힘들 것 같아. 만약 피아노를 시작한다면 방과 후 수업 중에 요리 수업을 빼거나 오카리나 수업을 빼고 피아노 학원을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 네가 선택해. 뭔가 한 과목을 빼고 피아노를 배울래? 아니면 나중에 여름 방학 때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피아노를 배워볼래?”
“음…. 생각해보니까 난 오카리나가 좋아. 오카리나랑 피아노 가운데 하나 선택하라면 당연히 오카리나야! 피아노는 여름방학 때 배울래.”
“그래, 잘 생각했어. 봄아, 우리가 살면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어. 엄마도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많아. 일도 하지만 너희와 여행도 더 많이 다니고 싶고, 재즈댄스도 배우고 싶고, 운동도 하고 싶고, 피아노도 치고 싶고 우쿨렐레도 배우고 싶고 그래. 이 외에도 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지만 엄마가 그것을 다 하겠다고 하는 건 아니잖아.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은 하루 딱 24시간이잖아. 밥 먹고 잠자고 학교 다니고 친구들과 노는 시간 빼면 정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안 돼. 그래서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맘껏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어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거지. 항상 선택과 포기를 해야 해. 무엇을 선택하면 어떤 하나는 포기하는 거야. 그것을 네가 배우는 과정이란다.”
 
봄이는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집중해서 잘 들었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고, 선택과 포기를 해야 한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잘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만 혼자 피아노를 못 친다’는 생각은 교정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다른 친구들이 피아노를 배울 동안 오카리나를 배웠고, 나는 오카리나는 잘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제 더이상 `나만 혼자 피아노를 못 친다'고 울상을 짓지는 않는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가 있다. 봄이 같은 아이들 말이다. 호기심도 많고 욕심도 많은 아이들이다. 부모들로서는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아이들보다는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들이 반갑고 키우기 훨씬 편하다. 그러나 항상 과유불급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일수록 부모가 훨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부모 귀가 팔랑팔랑해서 아이나 주변 사람에게 휘둘리면 아이는 빽빽한 스케줄 속에서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그래서 항상 나는 아이가 뭘 하고 싶다고 할 때마다 한 번 더 생각한다. 주변에서 뭘 교육시켜야 하지 않냐고 할 때마다 한 번 더 생각한다.
 
‘과연 아이의 발달 상황에 적합한 교육인가?’

‘혹시 아이에게 과부하를 발생시키거나 무리한 교육은 아닌가?’

‘아이에게 멍 때릴 시간이나 쉴 시간, 놀 시간이 있는가?’ 등을 따져본다.
 
이렇게 한 결과, 봄이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로 존재한다. 무리하게 많은 것을 배우지 않으니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부모가 큰 방향에서 아이에게 적절한 교육 방향을 설정해주되, 아이는 큰 틀 안에서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선택해 배우고 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나의 이런 양육 방식에 스스로 만족한다. 본질적인 것을 중시하다가도 가끔씩 무심코 뱉는 다른 사람들의 발언에 귀가 팔랑팔랑대 불안감이 불쑥 찾아올 때도 있지만.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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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현재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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