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수업.jpg » 초등학교에서 영어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이정아 기자

 

* <한겨레> 육아웹진 `베이비트리' 생생육아 코너는 필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생생하게 쓰는 육아일기 코너입니다. 베이비트리(http://babytree.hani.co.kr)에는 기자, 파워블로거 등 다양한 이들의 다채로운 육아기가 연재됩니다.

 

딸은 언어 활동을 좋아한다.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한글 그림책도 좋아한다. 영어 동요도 신나게 부른다. 글 쓰는 것도 좋아한다.

 

딸이 다니던 어린이집에서는 영어 특별활동 수업이 있었다. 특별히 집에서 영어 관련 활동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어린이집 수업을 통해 영어에 노출이 되니 나로서는 ‘손 안대고 코 푸는’ 느낌이었다. 딸은 어린이집에서 하는 영어 동화 발표회 같은 것도 즐겼고, 영어를 또 하나의 언어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굳이 일찍부터 영어를 시킬 필요가 없고 우리말을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어린이집에서 한글 교육과 함께 영어 교육도 즐겁게 받고 있기에 나로서는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부터 영어 교육 관련 고민이 시작됐다. 어린이집에서 즐겁게 배우던 영어를 갑자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배울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아쉬움을 느꼈다. 초등학교에서는 3학년부터 영어 교육이 시작된다. 학교 방과후 수업에도 원어민과 함께 하는 영어가 있기는 했다. 워낙 인기가 있어 추첨제라고 했다. 딸과 친한 단짝 친구가 영어 학원을 다닐 계획이라며 함께 가자고 딸에게 제안했다. 방과후 수업과 영어 학원 중에 딸을 어디에 보낼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친한 친구와 같은 학원에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에 학원을 선택했다.  
 
딸에게는 난생 처음 가보는 학원이었다. 딸은 다른 친구들이 다닌다는 태권도 학원이나 피아노 학원조차도 다니지 않았다. 처음으로 학원 버스를 타고 학원이라는 공간에 가서 아이는 수업을 들어야했다. 학교라는 공간도 처음인데, 학원이라는 낯선 공간에 또 가야하니 아이로서는 부담이 됐을 것이다. 내가 당시 육아휴직중인 상태였으므로 처음 두 주 동안은 아이와 함께 학원 셔틀을 타고 학원에 갔고 아이가 공부하는 동안 학원 근처에서 기다리다 함께 돌아왔다. 과거 태권도 학원을 보내려고 처음부터 혼자 셔틀에 태워보냈다가 된통 고생을 한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두 주 정도 지나니 아이는 학원 생활에 적응하고 혼자 다닐 수 있다고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3월부터 아이의 첫 영어 학원 생활이 시작됐다. 학원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이가 어떻게 공부하는지 전화해서 알려주셨다. 선생님께서는 “봄이가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어요. 파닉스는 굉장히 잘 해요. 그런데 원어민 선생님과 대화하는 부분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가끔 질문을 했는데 대답을 못하면 훌쩍거리고 그래요. 봄이 같은 성격의 아이들은 자신이 틀릴수 있다고 생각하면 대답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그냥 좀 틀리더라도 자꾸 말하면서 언어를 배우는건데, 틀릴까봐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있지요.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되고 잘 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딸에게 “틀려도 괜찮으니 뭐든 말을 해보는 것이 좋다”고 말해주었고 기다렸다. 두세 달 정도 지나니 딸이 조금씩 자신감을 갖더니 다른 학교 친구들이나 언니, 오빠들과 친해지면서 학원도 즐겁게 다녔다.
 
영어 학원을 보내면서 학원 보낸다는 것이 보통 만만치 않은 일임을 나는 알게 됐다. 일단 학원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일주일에 두 번 가는데 90~100분 수업(원어민 수업 45~50분, 한국인 수업 45~50분)에 23만5천원을 지불해야했다. 30만원 이상 지불하는 학원도 있다고했다. 추가로 교재비도 2~3달에 한 번꼴로 내야했다. 두번째로 꼬박꼬박 학원 숙제를 해야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영어 시디 듣기, 영어 문장 5번 써가기가 숙제였다. 정기적으로 영어 노래 등을 알려주고 같은 반 친구들과 노래 부르는 행사도 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알림장 확인과 받아쓰기 시험 등도 있어 초보 엄마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아이 챙기는 일이 벅찼다. 그래서 나는 학원 숙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디 듣기는 아이에게 자율적으로 맡겼고, 영어 문장 5번 쓰는 것만 겨우겨우 남편과 번갈아가면서 챙겼다. 세번째로 테스트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매달 한번 배운 것을 확인하는 시험이 있었고, 3개월이나 6개월에 한번 정기 레벨 테스트를 거쳐 레벨 조정이 있었다. 직장에 복귀한 뒤로는 너무나 바빠 학원 시험은 아이에게 맡겼다. 나로서는 아이가 시험을 못봐도 상관없었고, 영어 학원에서 일주일에  두 번 영어에 노출되는 것에만 의미를 부여했다. 제발 영어만 즐겁게 배우라는 심정이었다.

 
6개월 정도 지났을까. 학원에서 정기 레벨 테스트가 있었다. 하루는 퇴근해 집에 들어가니 아이가 엉엉 울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번에 레벨 테스트가 있었는데 내 친구는 올라갔고 나는 못 올라갔어. 속상해. 어떻게 하면 레벨 올라갈 수 있는거야? 난 친구랑 함께 수업 듣고 싶단 말이야. 제발 알려줘. 어떻게 하면 레벨 올라갈 수 있어?”
 
잠자리에서 아이는 잠을 자지 않고 엉엉 울며 말했다. 친하게 지낸 친구가 영어를 굉장히 잘 했는데, 레벨 테스트 후 그 친구가 한 단계 위로 올라간 것이다. 딸은 친구와 자신을 비교해 “나는 영어를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나도 친구처럼 한 단계 올라가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다. 딸에게 “레벨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영어는 언어이고 꾸준히 익히고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아이에게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아이는 막무가내로 레벨만 올라가고싶다는 말만 했다.
 
내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영어 학원에서 정기적으로 레벨 테스트를 봐서 학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수준별 학습을 하는지도 잘 몰랐을뿐더러, 잘하는 친구와 자신을 비교해 딸이 그렇게 심한 열등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세상에, 자존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나 아닌가. 그저 친구랑 재밌게 영어 학원을 다니며 언어에 대한 감각을 잃지 말아달라는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이다.
 
‘학원을 그만 보낼까, 아니면 딸이 노력을 해서 레벨을 올라갈 수 있도록 도울까’
또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일단 딸에게 물었다. “네가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레벨 테스트에 대한 부담이 있다면 학원을 그만둬도 좋아. 언제든 학원은 다닐 수 있고,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아. 어떻게 할래?”라고 물었다. 딸은 “싫어. 난 계속 다닐거야. 그리고 레벨 올라갈거야.”라고 말했다. 그래서 일단 딸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학원 숙제도 잘 할 수 있도록 돕고 시디 듣는 것도 주말에 함께 하기도 했다. 딸은 내가 그렇게 도와주니 더 열심히 했다. 매달 있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도 거뒀다. 그렇게 좀 시간이 흘렀을까. 아이가 자꾸 내게 “엄마, 나 언제 레벨 올라갈 수 있어?”라고 물었다. 정기 레벨 테스트는 3개월이나 6개월 뒤에 있는데 아이는 자꾸만 영어 수업을 레벨을 올라가기 위한 목적으로 듣고 있었다. 오로지 ‘레벨’ 생각 뿐이었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아이가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게되지 않을까 우려됐다. 당장 열심히 해서 더 높은 수준의 반에 들어간다해도 딸보다 영어를 능숙하게 잘 하는 아이는 있기 마련이다. 아이 친구는 아이보다 영어를 잘 하기 때문에 또 딸보다 더 빨리 높은 수준의 반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렇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딸이 언어를 배우는 기쁨을 진정으로 느낄 수 없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주변 엄마들에게 조언을 구해보면 그래도 꾸준히 영어 학원을 보내면 적응하기 마련이라는 의견도 있었고, 다른 학원으로 옮겨보라는 의견도 있었다. 주변 엄마들에게 다른 학원에 대한 정보도 얻었다. 학교 방과후교실은 그런 스트레스가 없으니 방과후교실에 보내라는 의견도 있었고, 아예 그냥 그만두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아이를 보았을 때 지금은 영어에 대한 노출을 줄여서 영어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낫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 나중에 자연스럽게 아이가 영어를 접할 기회를 만들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최종적으로 남편과 아이의 영어 교육 문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랬더니 남편이 단칼에 “학원 보내지 말자”고 했다. “지금 영어 안해도 봄이에게 아무 일도 안생겨. 그동안 영어 교육시킨 것이 아까워 이런 식으로 학원 보냈다가 애 스트레스 받아서 병나겠어. 당분간 영어 하지 말라고 하자. 내가 봄이에게 말할게.”
 
남편이 그렇게 단호하게 말해주니 모든 것이 명쾌해졌다. 그냥 영어 학원을 그만두는 것이 최선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딸은 영어 학원을 8개월 정도 다닌 뒤 영어 학원을 그만두었다. 아이도 “영어 안해도 괜찮다. 대신 영어 안다니는 대신 네가 다니고싶다는 태권도 학원을 보내주겠다”고 하는 아빠의 말에 흔쾌히 태권도 학원을 선택했다. 딸은 태권도 학원을 즐겁게 다니기 시작했다. 영어 학원을 다니지 않으니 딸은 다른 하고 싶은 것이 늘었다. 학교 방과후 교실에서 바이올린과 요리 교실도 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하니 수업을 듣도록 했다. 아이는 요리를 만드는 기쁨에 대해 알아가고,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얼마전에는 방과후 발표회에서 연주회도 했다. 엄마도 아이도 모두 삶이 즐거워지고 고민도 없어졌다.  
 
아이를 학원에 보낼 때, 특히 영어 학원을 보낼 때는 좀 더 면밀하게 학원 시스템에 대해 알아보고 보내는 것이 좋겠다. 학원을 보낸다는 의미는 아이를 경쟁 시스템에 밀어넣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나는 미처 몰랐다. 영어 학원의 경우 또 워낙 비용이 비싸고 부모에게 학원을 보낸 성과를 보여줘야 하니 레벨 테스트와 숙제가 많아 아이가 견뎌낼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숙제는 어느정도인지, 무엇을 중시하는 학원인지 등 잘 알아보고 선택해야한다. 레벨 테스트 등에 예민하지 않고 그저 즐겁게 다닐 수 있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딸처럼 레벨 테스트 결과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고 다른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해 열등감을 느끼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니 아이들의 성격이나 기질, 성향 등도 잘 따져 학원을 선택할 때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오히려 딸과 같은 성격의 경우 학원을 다니는 것보다 집에서 영어 동화를 보여주거나 영어 동요를 함께 불러주거나 좋은 영어 교재를 선택해 시디나 영상 교재와 함께 공부를 하는 쪽이 나을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소규모로 그룹을 짜고 경쟁 체제 교육이 아닌 흥미 위주의 교육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딸은 학원을 그만둔 뒤 두세 달 정도 영어 그림책도 보지  않고 영어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두 달 정도 그렇게 지내다 최근 방학이 시작되면서 우리 부부는 딸에게 자연스럽게 영어를 다시 접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다 찾게 된 것이 교육방송 영어프로그램 초목달(초등영어목표달성)이다. 재미있는 영어 그림책과 우수한 강사의 동영상을 결합해 만들었는데 길지 않은 분량에 반복 학습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레벨 테스트를 본 뒤 자신의 실력에 맞게 교재를 선택할 수 있다. 

 

최근 두 주 동안 날마다 20~30분씩 영어 동영상을 보며 이야기책을 듣고 읽고 있는데, 아이는 너무 즐거워한다. 영어 학원에 대한 트라우마로 영어를 한동안 거부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그런 거부감이 싹 사라졌다. 그저 재밌는 이야기를 읽으며 즐거워한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한글을 알아갈 때처럼 조금씩 조금씩 아이가 언어를 듣고 읽고 쓰는 즐거움을 읽히는 방향으로 영어 또한 교육시켜보려고 한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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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현재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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