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는아이1.jpg » 엄마와 함께 정리하는 아들. 정리하면서 아이와 충분히 놀 수 있음을 경험했다. 양선아  

 

<한겨레> 육아웹진 `베이비트리‘ 생생육아 코너는 필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생생하게 쓰는 육아일기 코너입니다. 베이비트리(http://babytree.hani.co.kr)에는 기자, 파워블로거 등 다양한 이들의 다채로운 육아기가 연재됩니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깔끔함을 기대한다면 곤란하다. 수많은 장난감에 아이 책, 알록달록한 매트와 각종 잡동사니까지 정리와는 거리가 먼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지르기 대장’인 아이들은 어지르면서 놀고 놀면서 어지르기 일쑤다. 통일성, 규칙성, 단정함이란 아이 키우는 집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집안 정리를 포기하고 살았다. 일하고 집에 가서 아이들 눈맞추고 아이 상태 살피고 놀기도 바쁜데 정리까지 말끔하게 하려는 순간 내 자신이 스트레스를 너무 받을 것이 뻔했다. 입주 도우미가 청소를 하지만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청소나 수납, 정리를 잘 하려면 우리 부부가 간섭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하다간 육아 도우미와의 관계가 나빠질 수 있다. 그래서 정리는 적당히 하기로 마음 먹고 살았다. 너무 청결하면 아이의 면역력을 키울 수 없고 적당히 지저분한 공간에서 아이의 창의성도 발휘될 것이라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아예 정리를 안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2년 전 정리에 관한 책들(<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한 정리법> <하루 15분 정리의 힘>)을 읽고 정리에 발동이 걸려 다양한 시도를 한 적이 있다. (2년 전 정리 발동에 쓴 글 링크: https://goo.gl/m2Gqoa ) 그때부터 비로소 버리기의 중요성을 알고 ‘언젠가는 입겠지’ 하면서 장롱 깊숙이 쌓아놓았던 입지 않던 옷을 버렸다. 연령에 맞지 않는 장난감을 나누거나 중고 시장에 내다 팔았다. 각종 정리 관련 용품에도 관심을 갖게 돼 다이소 같은 매장에서 저렴한 정리 관련 용품을 사서 드문드문 수납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바쁜 일상에서 정리·수납을 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항상 나는 바쁘고, 시간에 쫓겨 살았다. 물건을 버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우리 집에는 각종 물건들이 쌓여갔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주말마다 다니는 청소년수련관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강연 제목이 있었다. ‘주거 공간은 넓게, 생활은 편리하게! 나도 이제 정리수납 전문가’ 

 


정리 컨설팅에 관련된 기사를 읽으면서 항상 정리수납 전문가들에게 컨설팅 한 번 받아보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내가 뭔가 정리를 못하는 이유를 전문가는 알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컨설팅 비용을 알아보니 생각보다 비싸 포기했다. 그런데 그런 전문가에게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라니! 토요일마다 4번씩 하는데 수강료가 저렴했다. 토요일 침대에서 늦게까지 뒹굴거리고 싶은 마음을 걷어차버리고, 아침 일찍 수업을 듣겠다고 과감하게 수강 신청을 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 10월과 11월 나는 토요일 오전마다 정리·수납 강연을 들었다.

 

 

정리수납 강연1.jpg » 거실 정리수납법에 대해 설명하는 김형복 정리수납 강사. 양선아
 
강연을 들으면서 내가 가장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바로 정리의 목적 그 자체에 대해서도 나는 방향을 잘못 설정하고 있었다. 애초 내가 생각했던 정리의 목적은 깔끔한 집안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이왕이면 말끔하게 정리된 집안이 보기 좋고, 뭔가 더 쾌적하고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티비나 잡지에 나오는 예쁜 집처럼 꾸미고 살고 싶은 마음도 나도 모르게 있었다. 그런데 강연을 들어보니 그것보다 더 우선인 것이 있었다. 바로 집에 사는 가족들의 편리한 생활과 시간 절약이었다. 궁극적으로는 그런 편리함과 시간 절약으로 온 가족이 더 행복해지는 것이 목적이라고 정리수납 강사는 강조했다. 이 집을 사는 사람들이 좀 더 물건들을 편리하게 이용하고, 어떤 물건들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면, 그로 인해 절약된 시간으로 다른 의미있고 행복한 시간들을 가족끼리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과 양육을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에게는 체계적인 정리·수납 시스템이 엄청난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까지 확장됐다. 가사와 양육을 할 때 체계적인 정리·수납 시스템으로 두 번 할 일을 한 번만 해도 되고, 라벨링을 잘 하면 꼭 내가 아닌 다른 가족들과 가사를 분담하기가 편해진다. 그렇게 절약된 시간들을 모아서 워킹맘들은 다른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워킹맘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시간' 아니던가.

 

또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과 더 행복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물건이 집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집의 주인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사가 강조했는데, 우리 집을 둘러보니 물건들이 이미 공간의 주인이 된 모양새였다.

 

이런 것들을 깨닫고 나니 내 시야가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정리가 무척 어렵게 느껴지고 뭔가 노하우를 알아야 할 것만 같았는데, 오히려 내게 가장 편리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정해진 답은 없다고 생각하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솟아났다. 내가 좀 더 편리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엄청난 동기 부여가 됐다. 더는 잡지에 나오는 집처럼 꾸며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갖지 않게 됐다.  

 

첫번째 강연은 거실과 현관 정리에 관해서 진행됐다. 그 날 강연은 내게 엄청난 자극을 주었고, 강연을 들은 직후 나는 바로 거실과 현관 정리 실천에 나섰다. 강연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했던 정리의 원칙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핑거존의 원칙: 내가 자주 사용하는 것은 내 손이 닿는 곳에, 내가 사용하지 않는 것은 높이 멀리 둘 것.
2. 원터치의 원칙: 모든 것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하라. 딱 한 번 보고 가족 누구나 알 수 있게 정리하라. 그러면 가사와 양육도 가족들과 분담 가능하다. 
3. 총량 규제의 원칙: 70~80%만 채워라. 공간을 빡빡하게 채우지 마라. 어떤 물건 하나가 들어면 하나가 나갈 수 있도록 총량을 규제하라. 내가 어떤 물건을 봤을 때 설레고 행복한 물건들만 남기고, 더는 설레지 않거나 이용하지 않거나 필요 없는 물건은 과감히 버리거나 나누라.
4. 무조건 세우고 라벨링을 하라: 물건이 누워 있으면 찾기 불편하다. 세우면 찾기 쉽고, 사용하기 편리하다. 물건을 세워서 정리하되, 라벨링을 해서 이름을 붙여주어야 찾기 쉽다.
5. 끼리끼리의 원칙: 뭐든지 끼리끼리 분류하라. 운동화는 운동화끼리, 구두는 구두끼리, 슬리퍼는 슬리퍼끼리.. 분류의 개념을 활용하면 정리수납하기 편하다. 물건을 갖다놓을 때 제자리에 가져다놓을 수 있도록 연상될 수 있도록 하라.

 

신발정리.jpg » 정리의 기본은 버리기. 안신는 신발, 더는 설레지 않는 물건들을 버렸다. 양선아

 

 김형복 정리수납 컨설팅 강사는 이러한 원칙들을 설명해주면서 실제로 여러 집들의 정리 전후 거실 사진과 현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약 상자를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신발장은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등 세부적인 것들을 꼼꼼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우유팩이나 페트병, 옷걸이들을 활용해 어떻게 정리수납할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굳이 수납 용품을 사지 않고도 재활용품을 이용해 수납을 할 수 있으니 환경도 생각하고 정리도 하는 일석이조 방법이었다.

 

    신발정리대.jpg » 옷걸이를 활용한 신발정리대. 양선아

 

    신발장정리뒤.jpg » 정리 뒤 신발장 사진. 양선아

 

화분 활용.jpg » 안쓰는 화분을 우산꽂이로 활용하니 우산 수납도 편하고 훨씬 깔끔하다. 아주 작은 아이디어만으로도 정리를 잘 할 수 있다. 양선아

 

김 강사의 강연을 들으며 나는 많은 생각들을 했다. 집안에 굴러다니는 화분이 많은데, 그런 화분들을 우산꽂이로 활용할 생각은 왜 한 번도 안해봤을까? 세탁소에서 주는 옷걸이를 활용해 신발 정리대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왜 몰랐을까? 우유팩 하나로 이렇게 다양한 수납 용품을 만들 수 있다니! 감탄사를 연발하며 몰입해서 강연을 들었다.


 

정리하는 아이들2.jpg » 아이들과 함께 정리한 필기구 넣어두는 서랍. 끼리끼리 종류별로 분류해서 편리하게 필기구를 편리하게 찾아쓸 수 있도록 했다. 양선아  

우유팩 정리함.jpg » 우유팩만 활용해도 정리수납함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양선아

 

아이들만든것.jpg » 아들이 과자 박스와 마스킹 테이프를 활용해 만든 수납상자. 아이들이 직접 만드니 아이들도 애정을 갖고 정리를 했다. 양선아

 

정리전.jpg » 정리 전 약 상자 상태. 마구 넣어놓은 물품들이 뒤섞여 있다. 양선아

 

정리뒤.jpg » 바구니를 활용하고 끼리끼리 물건들을 정리하고 라벨링을 해서 약 상자를 정리했다. 양선아

 

집에 돌아와 거실과 현관을 아이들과 함께 정리했다. 아이들 서랍부터 정리했다. 볼펜, 싸인펜, 연필, 색연필 등 그냥 무턱대고 한 서랍에 넣어뒀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분류하기 시작했다. 볼펜은 볼펜끼리, 연필은 연필끼리, 색연필은 색연필끼리 등등. 아이들은 놀이를 하듯 분류하기를 즐겼다. 그리고 우유팩으로 수납 용기를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다. 아이들은 자르고 꾸미고 테이프를 붙이는 작업들을 즐겁게 했다. 아이들과 놀면서 정리도 실천하니 일거양득이었다.

 

정리꽝 엄마에서 정리 사랑 엄마로 거듭나는 과정.

내가 좀 더 편해지는 과정이라 이 여정이 즐겁고 행복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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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현재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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