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서 쿨쿨 잘 자다 눕히기만 하면 자동 작동 “응에~~~”

낮엔 초롱초롱한 천사, 밤이면 악마 돌변 ‘니 눈이 무서워’



요즘도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옛날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인형 중에 눕히면 저절로 눈이 감기고 일어나면 눈이 떠지는 인형이 있었다. 유달리 반짝거리는 유리 눈과 긴 속눈썹이 강조된 인형이었는데 어릴 적 조카들은 유독 이 인형을 무서워했다. 눈이 떴다 감아지는 걸 제 엄마가 “신기하지?” 말하면서 보여주면 자지러질듯이 울곤했다.





91b34818ca71c970ab8913401ae2a21c. » 눕히기만 하면 까무러칠듯 울게 만드는 아기의 '등센서'는 엄마들의 공포 대상이다.



그런데 아기들이 싫어하는 이 인형과 아기들의 공통점이 있었으니 바로 ‘등센서’. 등이 바닥에 닿으면 작동하는 센서기능이다. 다만 한가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인형은 바닥에 눕히면 눈이 감기는 참으로 ‘인간적인’ 센서기능을 가지고 있는 반면 아기들의 경우 엄마 품에서 눈을 꼭 감고 ‘인형처럼’ 귀엽게 잠을 자다가도 바닥에 눕히기만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는 참으로 반인류적이고, 수면부족의 엄마에게는 패륜적인 기능이기조차 하다.



물론 사이보그도 아닌 아기의 등짝에 무슨 기계가 삽입돼 있을리 만무지만 품에서 내려 눕히기만 하면 감았던 눈을 뜨고 발악하고 우는 아기들의 사악한 습관을 엄마들은 ‘등센서’라고 부른다. 활용예를 보자면 ‘두 시간 동안 안고 자장가 2백여곡을 부르며 간신히 재웠는데 침대에 눕히자 마자 빌어먹을 등센서가 작동했다’ 등등.



남들 하는 건 한가지라도 빼먹으면 안된다고 결심했는지 우리 아기 역시 생후 한달 정도 지나자 분노의 등센서 탑재 인증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품에서 잠이 들면 쾅 소리가 나면서 문이 닫혀도, 벨소리가 울려도, 누가 큰 소리를 쳐도 잠시 움찔할 뿐 쌕쌕거리며 잘 자던 아이가 눕히기만 하면 반짝 눈을 떴다. 그나마 컨디션이 좋을 때는 30분 정도 누워서 자주는 하해와 같은 아량을 보여주시기도 했으나 심기가 불편하면 눕히기 위해 침대 앞에서 몸의 각도를 45도만 구부려도 자지러질듯이 통곡을 했다.  



그렇게 새벽 3시 정도가 되면 아이의 등센서는 잠시 멈춤 상태가 되곤 했는데 잠시 멈춤 상태 없이 작동하는 등센서 탑재 아기의 엄마들은 그렇게 밤새도록 안고 먼 동이 트는 것을 관람하기도 한다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위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서서히 등센서의 분화 내지 진화를 목도하게 되었다. 징징대는 아기를  안고 서서 달래다가 잠시 소파에 앉았더니 분노의 폭발음이 터지는가 하면 볼일을 보기 위해 아기를 띠로 안고 밖으로 나와 걷다가 잠시 서기만 해도 곡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러다가는 아기를 품에서 내리고 싶다는 생각만 해도 아기의 등센서가 작동하는 지경의, 그러니까 외계에서 온 아이들이 마을 사람들의 정신까지 조종한다는 어느 에스에프 공포 드라마의  현실화가 이뤄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어쩐지 ‘두 얼굴의 사나이’ 아니 ‘두 얼굴의 아기’를 보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밝은 대낮에 아기의 눈을 보면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이 바로 천사의 표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더니 남들 다 자는 밤 시간에 눕히자 마자 동그랗게 떠지는 아기의 눈망울에서는 사악한 악마의 기운이 느껴졌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우면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이라는 퀴즈를 낸다면 정답은 바로 아기들의 눈망울일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친정엄마는 나를 키우면서 낮에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애기”라고 물고빨고 하다가 등센서 초민감의 밤만 되면 큰소리로 저주를 퍼붓는 날들을 반복하며 이웃들에게 정신 나간 여자라고 욕먹을까봐 외출까지 기피하게 됐다고 한다.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공포의 등센서로 인해 어깨 허리 무릎까지 안쑤시는 데 없는 늙은 엄마에게 요즘의 염원은   ‘16강의 기적’이 아니라 ‘백일의 기적’이다.  “등센서 언제쯤 꺼지나요?”라는 애끓는 질문들에 경험있는 엄마들이 백일을 전후해서 꺼진다는 위로 섞인 희망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는 이제 막 백일을 넘겼다. 아직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한가지 희망의 불씨는 아기가 자는 시간이 조금씩 당겨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백일의 기적은커녕 돌 때까지 나를 포대기에 업은 채로 엎드려 잤다는 친정엄마의 살벌한 증언으로 볼때 백일의 기적, 요원해보인다. 그래도 ‘꿈은 이루어진다’는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고 있지 않은가. 두손 모아 소망해본다. 남들이 ‘대~한민국’ 외칠 때 나는 ’등~센서끝’을 외치는 그날이 조만간 다가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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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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