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가장 고치고 싶은 습관이나 행동은 무엇인가요?
-화를 많이 내는 것입니다.
그 습관이나 행동을 고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그 습관이나 행동은 현재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습관이나 행동을 고치지 못하면 앞으로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우울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고치지 못하면 안 좋은 인격으로 삶을 마무리할 것 같습니다.
그 습관과 행동을 고치기 위해 본인이 지금까지 한 노력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책을 읽고 명상을 하고 글을 씁니다.
앞으로 그런 습관과 행동을 고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겠습니까?
-규칙적인 명상과 독서를 하겠습니다.
지금 본인에게 가장 힘든 일이나 고민은 무엇인가요?
-…….

 

며칠 전 템플 스테이에서 작성했던 ‘나를 돌아보는 명상’이라는 제목의 설문지다.
나의 답들은 피상적이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왜 나는 화를 많이 낼까?
내 영역에 누가 예고 없이 들어올 때 화가 난다.
심리학적으론 자아를 침범 당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살펴봐야 할지도 모른다.

 

성취욕이 유난히 강했던 어머니의 높은 기대치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 수준에 도달하기가 힘들어 팍팍했던 어린 시절.
공부 노동의 강도는 높아져 갔고 고등학교 시절엔 에너지가 거의 방전됐다.
나의 자아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어머니의 강력한 기대가 들어앉게끔
자신을 방치했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 영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니
공동체 안에서 나의 인간관계는 삐걱거렸고 쉽게 소진되었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는 데 대한 마음 속 저항은
내 영역을 지켜야 한다는 불안과 궤를 같이 한다.
고민하던 중 어떤 스님의 말씀이 위로가 되었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삶의 기준은 없으며
그저 각자에게 맞는 삶의 방식이 있을 뿐이라는 것.
그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평범하게 살다간 이들을 ‘독각승’이라 하는데
꼭 타인에게 베푸는 ‘보살행’만 깨달은 삶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다.
‘좋은 삶’, ‘좋은 사람’에 대한 표상으로부터 벗어나서,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춰 충실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공동체 안에서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생긴 대로 사는 걸 스스로 인정해 주기로 했다.
템플 스테이 할 때 숲 속 ‘명상의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나무에 써있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흥국사명상글1.jpg » 템플 스테이 숲길에서 만난 글귀

 

서울 근교의 절에서 이렇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조용히 눈을 감고 반가부좌 한 명상 시간을
다엘은 잘 따라주었다.
평소에 부족하나마 짧은 명상을 해온 것이 도움이 된 듯했다.
공양 후 설거지 할 때 다엘이 익숙하게 그릇을 씻자
옆에 계신 분이 칭찬했다.
“오! 자세 나오는 걸 보니 많이 해봤나 보네.”

 

최근 다엘과 나는 자신에게 가장 힘든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시각화 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분노를 가리켜 ‘미친 말’이라 했고
다엘은 두려움에 대해 ‘똥 거미’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나는 짜증이나 분노가 밀려올 때
이를 시각화해서 언어로 표현한다.
“미친 말이 갈기를 휘날리며 뛰어오고 있어.”
“따그닥 거리며 시동을 걸기 시작했어.”
“말이 날뛰며 눈을 부릅뜨고 거품을 물고 있어!”

 

그러다 보면 뭔가 속에서 뜨거운 김이 빠지는 느낌이 들면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 같았다.
말을 길들일 때 등에 담요를 덮어주면 온순해진다고 한다.
화가 날 때 요동 치는 말에게 맘 속으로 담요를 던지고 어루만져 준다.

“그래, 화 내도 괜찮아. 내가 담요를 덮어주고 위로해 줄게.”
그러다 보면 분노보다 아래에 있는 깊은 감정이 슬픔이란 것을 알 것 같다.

 

말1.jpg » 뉴질랜드에서 만난 담요 덮은 말

 

다엘은 두려움과 불안이 밀려올 때 말한다.
“똥 거미가 두 마리나 오고 있어. 아주 큰 놈이야!”
이렇게 우리는 말과 거미를 상대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여름방학을 마무리하면서 다엘의 성장에 한 몫을 한 건
아빠와 함께 했던 해변의 추억이기도 하다.
다엘의 기도에 응답해준 우주의 기운(?)에 감사 드린다.

 

바닷가1.jpg » 늦여름 서해안에서 아빠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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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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