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 차례의 거절을 경험했다.
한번은 상대 쪽에서, 또 한번은 내 쪽에서 거절의사를 전했다.
이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시 돌아보았다.
교사 시절엔 접하지 못했던 사람 관계에 대해
요즘 부쩍 많이 배운다.

 

첫 번째 거절은 잡지사의 지면 개편으로
내가 쓰던 칼럼을 중단하게 됐다는 통보였다.
이를 전하는 담당 기자의 메일이 어찌나 조심스러운지
오히려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1년 넘게 글을 쓸 수 있어서 영광이라는 생각과 함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마무리와 헤어짐의 품격에 대해 생각했다.

 

같은 시기에 한 출판사의 책 출판 요청에 대해
내 쪽에서 거절(?)의 메일을 쓰게 되었다.
그 출판사는 과거 몇 차례 내게 월간지의 원고 청탁을 하면서
믿음직한 편집 능력을 보여 주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단행본 발행을 하자는 권유를 받은 뒤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갑을’관계가 된 느낌?
출판사의 기획 방향과
내가 쓸 수 있는 내용에 차이가 있을 듯하여
이를 명료하게 정리해야 발행의 가부간 결정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내가 먼저 거절의 메일을 썼지만
알아서 물러나주길 바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받았다고나 할까?

 

요즘 같은 불황기에 새로운 저자를 발굴하여 단행본을 낸다는 것이
출판사 쪽의 큰 모험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명확한 의사 전달 과정이 부족했던 점은 크게 아쉬웠다.

 

관계 맺음을 시작하거나 끝낼 때
비록 공적인 일로 만나더라도
사람 자체로 귀하게 여기는 일,
스쳐 지나가는 관계에도 예의를 다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껏 나도 칼럼을 위해 취재 차 사람들을 만나곤 했는데
한 순간도 만남을 가벼이 여긴 적은 없다.
내가 쓴 칼럼과 함께 감사 메시지를 취재원께 보냈을 때
정성껏 응답하는 이와 무응답인 경우가 있었기에
이후 인연이 이어진 이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이도 있었다.

 

책과선물1.jpg » 취재 차 만났던 분이 보내온 책과 선물

 

나는 다엘이 공적이든 사적이든 만남을 가질 때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귀하게 여기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거절을 주고 받아야 할 때도
품격 있는 태도를 유지하길 또한 바란다.

 

어느 날 다엘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띠고 뭔가를 쓰고 있길래
들여다봤더니 내가 웰다잉 강의 때 사용하는 노트에
자신의 얘기를 써넣고 있었다.
다엘이 채운 빈칸의 내용은 이랬다.

 

“나는 아버지 (모르돌), 어머니 (모르녀) 사이에서
(모르)남, (모르)녀의 (모르)째 아들로 태어났다.”

 

다엘소원노트.jpg » 다엘이 쓴 웰다잉 노트의 기록

 

온통 모르는 것 투성이인 삶의 시작을,
해맑게 웃으며 쓸 수 있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봤다.
한편으론 다엘의 글이 특별하지 않음을 느낀다.
누구나 부모가 전하는 자신의 출생 스토리를 믿지만
확신을 갖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미지의 존재임을 인정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니까.

 

청년이 된 다엘이 혈연을 찾고자 결심했을 때
상대 쪽에서 거절의 메시지가 오더라도
너무 충격 받지 않기를 바란다.
만남이 성사된다면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이유는 비교적 명확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혼외출산이란
부당하고도 가혹하게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일이고
때로는 삶 전체가 위협 받을 수도 있기에
만남에 대해 거절의 가능성이 있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과거 내가 잘 몰랐던 시절,
눈 앞에서 거절하는 법을 알지 못해
상대에게 오히려 더 무례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어떤 상황에서 만나고 헤어지든
모든 사람의 본질적 가치를 늘 가슴에 담고 있어야
이런 우를 범하지 않는다는 걸 살아오면서 배웠다.

 

인터넷상에서 읽은 한 남자의 고민이 기억 난다.
배려심 많고 착한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참 좋은 사람이지만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아 고민이라고,
그러나 차마 헤어지자는 말을 못해 계속 시간을 끌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한 어느 네티즌의 명답은 이러했다.

 

빨리 그녀를 놓아주라고.
여자는 자신이 사랑 받지 못하는 걸 이미 안다고.
당신에게는 별로인 그녀가
다른 누군가에게 ‘송혜교’로 보일 수도 있다고.

 

거절의 품격을 아는 것은 인간관계의 기본을 아는 일이다.
나도 다엘도 이를 가슴에 새기고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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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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