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간담회를 앞두고
몸살과 장염으로 몸이 퍼져 버렸다.
입양법 전부개정안 발의 소식을 접한 후
입양부모들이 만든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일하며
국내법과 국제협약, 논문들을 읽고 보고서를 쓰느라
내내 달려온 탓이다.
내 평생 단 기간에 이토록 많을 글을 읽고 써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입양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 제기는
성인이 된 해외입양인들이 한국을 방문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입양인들의 혈연 찾기는
부실한 기록과 혈연가족의 거부 등으로 성공률이 극히 미미했다.
급기야 입양기관이 돈을 위해 아동매매를 했다거나
우리나라가 ‘고아수출국’으로 국제적 망신을 사고 있다는 기사가
여러 매체에 등장했다.
어떤 해외입양인은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이토록 잘 사는 나라가 어떻게 해외로 아이들을 입양 보낼 수 있냐며
분노에 차서 다시는 한국땅을 밟지 않겠다고 말한 경우도 있었다.

 

모든 오해는 입양을 경제적인 눈으로만 보는 데서 시작된다.
한국 사회는 참으로 독특한 현대사의 터널을 지나왔다.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하는 동안
사회복지와 인권 의식은 후진성을 면치 못했고
국가 발전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 했다.
공공복지 대신 가정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고
오로지 혈연, 정상가족만 인정하여 여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극심한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 혼외출산을 하면
가족 밖으로 가차없이 내치는 게 우리 사회다.


해외로 입양 보낸 아이들의 출생 기록이 부실한 것은
일차적으로 기관 책임이겠으나
근본적으로는 정상가족 내에 편입될 수 없는 아이들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사회 전체의 가혹한 배타성에 가장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해외입양인들이 이런 내막을 속속들이 알기는 어렵다.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기이한 혈연중심, 정상가족주의가
경제성장의 정도와는 무관하게
입양 주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입양가족들은 당위성이나 선언이 아니라
현상에 집중하고자 한다.
해외입양을 없애고 입양문턱을 높이면
미혼모의 양육이 늘어나겠는가?
혈연 집착의 우리 사회에서 주목할 점은
입양되지 못하고 시설과 임시위탁가정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미혼부 책임을 강화하는 법 제정하기,
미혼모 지원체제를 확실히 하기,
아동 양육의 공공성 확보하기,
이와 같은 디딤돌을 먼저 놓아야 하는데
입양법만 선진국 수준으로 덩그러니 허공에 올려놓겠단다.
이게 지금의 입양법 전부개정안 발의의 골자다.
여성인권과 아동양육의 사회 책임이 바닥인 상태에서
허울 좋은 입양법을 세우자는 시도는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예고한다.
그것도 어린 생명들의 온 생애가 걸린 부작용이라면
사회 전체가 이 문제에 진지한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내가 골몰하는 동안
다엘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엄마, 나한테도 관심 좀 가져줘.
맨날 전화하고 회의하고 카톡하고!
나도 돌봐야 할 것 아니야?”
한편으론 이 와중에도 다엘은 특유의 언어확장 능력을 보였다.
밥상 앞에서 할머니가 반찬을 골고루 먹으라고 하자 다엘이 답했다.
“네네, 더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제 보좌관에게 말해주세요.”
국회의원실에 전화하는 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정치계의 생리(?)를 금세 파악한 것이다.

 

해외입양인들과 모임을 가졌을 때 다엘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바로 찾아냈다.
소아과 의사이자 미네소타대학 부교수인 주디 엑컬리(Judith Eckerle)박사가
다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자 식사 후 일부러 그를 찾아가 인사를 청하기도 했다.
엑컬리 박사는 해외입양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소개하고
시설 아닌 영구적인 가정에서 아이들이 자라야 함을
다양한 연구자료를 통해 모임에서 발표했다.

 

국내외입양가족.jpg » 해외입양인들과 함께 한 다엘

 

 

다엘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자기 전에 짬을 낸다.
이전에 읽어주던 해리 포터가 다엘의 취향이 아니라고 해서
‘톰 소여의 모험’을 성대모사 동원하여 침을 튀기면서 읽어준다.
내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에도
비상대책위의 일로 동분서주하는 한 입양부의
국회 간담회 발언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제 아이가 넷인데 막내가 여덟 살이에요.
이 아이 생모가 출산 당시 열네 살이었어요.
혈연가족이 도저히 키울 수 없다고 해서 아이를 입양했는데
입양부모가 미혼모 아이를 빼앗아 오는 것처럼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어요.
저도 제 아이들이랑 놀아주고 싶고 ‘양육’하고 싶어요.
왜 제가 한달 째 집에도 못 가고 헤이그협약 공부를 해야 해요?”

 

자신의 생업도 접고 이렇게 발로 뛰는 이들이 있어
미안함이 가득하지만 한편으로 큰 위로를 느낀다.
나의 마음을 아는지
이 시국에도…아이는 자란다.

 

어묵볶음.jpg » 다엘이 경비아저씨께 드리려고 만든 어묵볶음의 완벽한 비주얼

 

 

요리.jpg » 셰프 차림(?)으로 요리에 정성을 다하는 다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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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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