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자전거.jpg

 

올 봄 다시 만나게 된 전남편은
자전거 매니아가 되어 있었다.
마침 자전거에 푹 빠져있던 다엘과 맘이 맞아서
두물머리에 같이 자전거 타러 가자는 얘길 했었다.

 

더위가 한풀 꺾이길 기다려 지난 토요일 약속을 잡고
두물머리를 향해 출발했다.
인근 전철역에서 내려 라이딩 시작.
나는 걷고 두 사람은 자전거를 타다 서다 하며 갔다.

 

마침 신순화님의 글에서 두물머리와 관련된 시를 접하여
여기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임을 알게 됐다.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이토록 가까운 곳에
산과 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는 게 고마웠다.

 

가을 강가를 뚜벅이 처럼 혼자 걷는 기분도 좋았다.
잔잔한 강물을 보면서 마음 속에 되뇌던 말이 떠올랐다.
요동 치는 감정을 잠 재우고 깊은 강의 고요와 평화를 닮을 수 있기를.
꽃과 나무와 강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
그림 같은 집들, 카페와 식당이 간간이 보였다.
그 와중에 격차사회가 생각났지만 마음 속 사치성을 따라 풍경을 즐겼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있으니
다엘의 아빠가 한 손에 핫도그 네 개를 쥔 채 자전거를 타고 왔다.
그 앞에서 다엘이 함박웃음을 띠며 자전거에서 내렸다.
두물머리의 명물 연잎 핫도그란다.
한 개만 먹어도 배부를 만큼 크다. 바삭하다. 맛있다.

 

강변자전거.jpg

 

나는 자전거를 타본 적이라곤
대학 시절 혼자 연습하다가 겨우 균형 잡는 데까지만 성공한 후,
‘내가 할 수 없는 일’의 목록에 밀쳐 둔 게 전부다.
그런데 이번에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자전거 동호회의 수많은 사람들을 목격하니 부러움이 밀려왔다.

 

이 참에 자전거를 타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엄마한테 자전거를 가르쳐 줄 수 있냐’고 다엘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니, 이 아들이 귀찮아 하는 게 아닌가?
흥. 너한테 또 부탁하면 내가 성을 갈 것이야.
나는 삐침이 발동하여 ‘성인 자전거 배우는 곳’을 검색하기로 했다.

 

웰다잉 강의를 하면서
노년을 위해 ‘하자, 주자, 배우자’의 3원칙을 새기게 됐다.
그 중 첫 번째로 자전거 타기를 나의 ‘하자’ 목록에 넣었다.
남들에겐 쉬운 일이 내겐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두물머리 여행은 그렇게 나의 풍성한 노년을 알리는 예고가 되었다.

 

어쩌면 못 다 이룬 ‘흔한 가족’의 꿈이
자전거족에 끼고 싶은 소망으로 나타난 건지 모른다.
이유야 어떻든 건강한 취미생활이 코 앞에 와있다.

 

예전에 전남편과 다시 가족이 되려는 노력을 한 적이 있지만
이제 그런 생각을 멈추자 평화가 찾아왔다.
각자 자신의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현재의 삶이 편안하고
서로 다른 일상을 사는 것도 자연스럽다.

 

결혼 생활을 잘 이어가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따로 살면서 서로 배려하는 삶을 사는 것도 괜찮다.

 

다엘은 아빠를 더 자주 만나고 싶고, 같이 살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나는 대답했다.
“같이 산다고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니야.
서로 떨어져 살면서 더 배려하고 존중할 수도 있거든.
엄마는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좋아.”

 

다엘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우리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그간의 아픔을 밀쳐두고
함께 하는 하루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생겼다.

 

돌아오는 전철에서 다엘에게 물었다.
“오늘 있었던 일 중에 뭐가 제일 좋았어?”
“핫도그 먹은 거!”
아빠와 함께 자전거 탄 것도, 멋진 풍경도 아닌
‘핫도그’가 다엘의 답이었다.

 

단순한 대답이 다엘의 심정을 잘 말해주는 게 아닌지.
어른에겐 특별한 하루였지만
다엘로서는 일상에 금방 녹아 들었던 시간인 듯하다.
오직 특별한 건 빅사이즈의 핫도그였던 거다.

 

요즘 나는 예전에 상상도 하지 않았던
노년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럼에도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걱정하는 마음은 없다.
운명이나 숙명 같은 말도 가슴 속에서 사라졌다.
다엘을 키우면서 생긴 자신감이다.

 

자식을 맞이한 부모가 비바람을 견디며 사람이 된다는 말이
그래서 맞는 것 같다.

 

두물머리가는길.jpg » 따로 또 같이. 지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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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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