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 사진 자료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케이티를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우리 외할매.
아흔의 우리 외할매.
우리 외할매가, 떠난다.
둥둥, 바람에 날려, 한 줌 먼지가 되어, 떠난다.
우리 가족을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했던 사람.
내 힘들었던 유년기, 수 십 통의 '연애편지'로 소식을 전하며 내게 위로가 되어 주었던 사람.
부지런하고 섬세한 손놀림을 가졌던 사람.
그 손놀림으로 덧신부터 원피스, 커튼까지 모두 손뜨개로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나누었던 사람.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던 사람.
그래서 내 이야기의 원천, 내 생애 최고의 이야기꾼이었던 사람.
일제 시대에 여학교를 다녀 본래 이름 대신 '고가네 요시꼬'라는 창씨개명한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여자. 위안부 징집을 피해 도망쳐야 했던 여자.
전쟁통에 첫 남편과 헤어져 끝끝내 남자의 생사도 모르고 살아야 했던 여자.
피난길에 등에 업힌 갓난 아이가 죽은 줄도 모르고 있다 뒤늦게 발견해 울며 강가에 아이를 묻고 돌아서야 했던 여자.
휴전 후 혼란기에 만난 두번째 남편도 갑자기 세상을 떠나 혼자 아이 셋을 키워내야 했던 여자.
여자 혼자 아이 셋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고아원, 보육원을 전전하며 내 아이를 전쟁 고아들과 함께 키워야 했던, 그래서 고아들이 내 아이인지 내 아이가 고아인지 그저 다같이 품어 키워야 했던 여자.
그런 사람이, 간다.
먼지가 되어, 둥둥.
너무 멀리 있어 발 동동 구르며 울고만 있을 막내 외손녀를 위해,
오래전 여읜 두번째 남편 옆에 묻히기보단 바람결에 흩날리길 원했나보다.
바람 타고 둥둥, 한번도 와 본 적 없는 이 미국 땅까지 날려와 내 볼에, 내 손에
그 내음, 그 체온, 그 손길 한번 전해주고 가려고. 내 아이 재롱 한번 보고 가려고.
당신 떠나면 내가 제일 많이 울 거라며, 내 새끼 내 강아지 막내 외손녀가 제일 많이 울 거라며
입버릇처럼 말하던 우리 외할매. 그걸 알아서, 마지막 가는 길엔 외손녀 꿈에도 들르지 않고 그렇게 훌쩍 가버렸나보다. 가족에게조차도 민폐 끼치는 일 같은 건 없어야 한다고 믿었던 우리 할매, 의식 잃어 '때가 되었다'는 의사들 말에 응급실,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 병실로 옮겨진 지 30여 분 만에 편안히 눈을 감았다는 우리 할매. 그 마지막 순간에 그녀를 편안하게 만들어 준 기억은 과연 언젯적, 어떤 기억이었을까. 나는 아직 다 못 들은 이야기가 많은데, 그 많은 이야기를 지고서 둥둥, 내게로 건너오는 중일까.
기어이 오고 만 이 순간이,
나는 못내 원망스럽다.
이럴 줄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면서도, 내 생애 처음 맞는 영원한 이별의 순간을
어떻게 매듭지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엉엉, 소리내어 울다가도 아이가 곁에 와 재롱을 부리면 피식, 웃게 되는,
아이가 있어 밥도 먹어야 하고 기저귀도 갈아야 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놀기도 해야 하는 이 일상 속에서 나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엄마가 된 막내 손녀가 할매를 떠나 보내는 일.. 참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 세대를 낳아 기르고 있으니 앞선 세대를 기꺼이 보내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 모두 '태어나 살고 죽는' 인간의 삶을 살고 있음을, 그래서 할매가 가고 나도 언젠가 가고 내 아이도 언젠가 가리란 걸 알면서도,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어렵고 힘들다. 여기 멀리 앉아 울다 웃다 하며 글로 할매를 떠나보내는 의식을 치르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어렵고 힘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