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C02062.JPG



‘이번 설에는 꼭 할머니한테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제주도에서 부산까지 택시, 비행기, 버스, 지하철을 타고

6시간이 걸려서 할머니 집에 가는 동안 나는 신이 나서 힘이 넘쳤다.

 

도착하니 “왔나? 아이고, 고생했제?” 하며 할머니가 우리를 반겨주신다.

참, 변함이 없는 할머니의 사랑이

역시나, 좋다.


아이들을 풀어놓고 할머니의 밥을 먹고 할머니가 데워놓은 자리에 누워서 쉬고

수다를 떨었다.

명절 며칠 전에 가서 여유 있게 쉬고, 먹고, 집에 없는 TV도 보고 놀았다.

나와 아이들을 충분히 사랑하고 돌봐주는 할머니가 계시는 그 집은

나에게 천국이었다.


명절이 되어서 온 가족이 모여 왁자지껄 먹고, 놀고, 자고, 즐겁게 지내다가

큰산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로 돌아왔다.

 

갑자기 외롭다.

아이들은 다시 만난 장난감이 반가워서 신나게 노는데

나는 하나도 신이 안 난다.

할머니의 품이 그리울 뿐이다.

 

할머니 밥도 더 먹고 싶고

할머니랑 몸 붙이고 TV도 더 보고 싶고

“좀 누워서 쉬라.”, “더 묵으라.” 하는 잔소리 같은 챙김도 받고 싶다.

그냥 그 집에 있고 싶다.

 

그리운 마음 앓이를 하룻밤 하고난 다음 날

할머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을 꼬박 할머니 그림을 그렸고

두 번째 날 밤에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 안정숙.

손녀 최형주가 그렸습니다.’ 라는 글을 그림 옆에 쓴 후 붓을 놓았다.

 

홀린 듯 그려나간 그림은

약간 살이 빠지고 미용실을 다녀온 할머니의 모습이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꽃 모양의 귀걸이를 하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파르스름한 색깔의 한복을 입었다.

우리 할머니, 예쁘다.

 

몇 달 전에 제주도 여행을 하고 돌아가시면서

“나중에 내 영정 사진 네가 그려조.” 라고 하셨는데

이번 그림이 영정 그림의 기초가 될 것 같다.

 

86세인 할머니는 “너무 오래 살면 우짤꼬, 걱정이다.” 하셨지만

그것만큼 섭섭한 이야기가 없다.

할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 나의 천국인 할머니 집에 더 자주 가고

내 아이들에게도 나의 할머니가 얼마나 따뜻하고 멋진 사람인지 더 알게 해주어야겠다.

 

할머니는 내 마음의 고향.

내가 언제나 돌아가 쉴 수 있는 곳.

그런 할머니의 존재는 하늘이 나에게 준 엄청난 선물이다.

 

고마워요, 할머니!

사랑해요, 할머니!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최형주
20대를 아낌없이 방황하며, 여행하며 보냈다. 딱 30세가 되던 해 충남 금산 대안학교로 내려가 영어교사를 하다가 남편을 만나 지금은 여섯 살 바다와 네 살 하늘과 함께 네 식구가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 베이비트리 생생육아에 모유수유를 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그림으로 표현한 ‘젖 이야기’를 연재 완료하였다.
이메일 : vision323@hanmail.net      
블로그 : https://blog.naver.com/jamjamlife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1703308/025/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70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우리의 소중한 야성 본능 imagefile [1] 최형주 2017-02-09 5680
»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내 마음의 고향, 할머니 imagefile 최형주 2017-01-31 5317
68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엄마 곧 돌아올게 imagefile 최형주 2017-01-20 5231
67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부슬비 내리는 날, 김치 배달 imagefile [5] 최형주 2017-01-04 7024
66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고마워요, 고마워~ imagefile [2] 최형주 2016-12-16 8537
65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하늘이의 하늘 imagefile [1] 최형주 2016-12-10 7388
64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여섯 여자 imagefile [1] 최형주 2016-12-02 9900
63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가장 먼저 사랑을 해 imagefile [1] 최형주 2016-11-10 7314
62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춤은 나의 밥, 춤바람 났다 imagefile 최형주 2016-10-31 9731
61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이제 진짜 베이비시터 imagefile [2] 최형주 2016-10-17 7925
60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엄마의 남자사람친구 imagefile [3] 최형주 2016-10-08 15855
59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담배가 준 시원한 생각 imagefile [1] 최형주 2016-08-07 7059
58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엄마를 너라고 부를 때 imagefile [1] 최형주 2016-06-20 8847
57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제주의 새벽 imagefile [2] 최형주 2016-04-29 7292
56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커다란 나무 아래 작디작은 바다 imagefile [6] 최형주 2016-04-18 6293
55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사랑이야 imagefile [2] 최형주 2016-04-08 5888
54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복 받아라! imagefile [6] 최형주 2016-04-01 5778
53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둘이 함께 멋진 공감 imagefile [2] 최형주 2016-03-22 9117
52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야생의 자연이 일상 imagefile [8] 최형주 2016-03-14 6403
51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하늘이를 안고 벤치에 누워 낮잠을 imagefile [10] 최형주 2016-02-22 6541

Q.아기가 자기 머리를 자꾸 때려요

지금 15개월 들어가는 딸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심한 건 아닌데 하루에도 몇번씩 자기 머리를 자꾸 때려요 어떻게...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