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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것도, 낯선 장소에서 봄을 맞는 일도 확실히 ‘두 번째’는 수월하구나 싶다.
아이와 계절의 공통점을 하나 들어보자면 그들이 변화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건데, 봄이 품고 있는 생명력의 힘은 어찌나 대단한지, 아무 생각 없이 넋 놓고 있다가 문득 달라진 풍경을 깨닫고는 깜짝 놀랄 때가 여러 번이다.

 

봄이 왔다, 는 신호를 제일 먼저 보낸 건 벌레들이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지네, 거미, 발이 수십 개 달린 정체 모를 벌레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곧 개미떼와 말벌들, 이따금 뱀이 온 마당을 들쑤시고 다닐 테다.
그것들과 마주칠 일이 없어 평온하고 행복했던 계절. 아, 겨울이 떠나가고 있다.

 

뒤뜰을 호령하는 개, 따식이와 여덟 마리 닭들도 봄맞이 작업이 한창이다.
제 새끼를 보호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낳지 않는 것이 어미 닭의 모성일까. 겨우 내내 알 낳기를 거의 멈추었던 암탉들이 다시 생산 활동을 시작했고, 그 암탉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때문인지 뭔지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수탉들의 합창도 더욱 극성맞아졌다.
우리가 서울을 떠나 산골마을로 이사 오던 재작년 가을에 태어났으니까 따식인 올해로 세 살이다. 봄은 역시 사랑이 피어나는 계절인지, 지난 해 가을, 서투르게 첫 연정을 품고 이별을 경험한 뒤 한껏 의기소침해 있던 놈이건만. 준영이가 옆에 서 있는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제 성기를 열심히 핥아댄다.

 

50가구, 거주민 100명 남짓인 작은 동네라 사실 봄이든 겨울이든 할 것 없이 한산하다.
그래도 봄은 봄이다. 특히 논밭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봄은, 생기가 돈다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그러니까 약간 번잡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아침 일찍 경운기나 뒤에 작은 수레를 매단 오토바이, 트럭을 몰고 농협 마당에 모인 할매 할배들. 퇴비며 비료, 사료, 씨앗을 사러 왔다가 안부를 나누고 일터로 향하는 이들의 뒷모습은 느리지만 흔들림이 없어서, 가끔 누구든 붙잡고 그 비결이 무언지 듣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우리 동네의 꽃은 단연 중학생들이다.
교복 입은 아이들에 눈이 가면 나이 든 거라나 뭐라나. 아무튼, 아침저녁으로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이 우리 집 담벼락을 지나며 재잘거리는 소리는 새벽 수탉의 울음소리나, 이른 아침 새들의 지저귐과는 다른 빛깔의 감동이다.

변성기를 지나는 수다스러운 남학생의 시시껄렁한 농담에 까르르르 웃음보가 터진 여자아이들. 얼굴에 하얀 분도 바르고 입술도 빨갛게 칠하고, 바지든 치마든 몸에 딱 달라붙게 줄여 입는 건 도시 학생들이나 똑같지만, 시골 특유의 친근함과 촌스러움 같은 향토적 기질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나는 그게 참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할 수만 있다면 오래오래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작 그들은 이런 말을 듣는 걸 무척 질색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어린 시절 시골에 살던 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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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찬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벌레들과 벌일 사투를 생각하면 아득하지만, 난 그 어느 때보다 이번 봄을 기다렸다.
이사 오자마자 둘째를 임신하고 낳고 기르느라 산골마을을 맘껏 즐기지 못한 아쉬움을 말끔히 씻어낼 기회가 온 것이다.

 

일단 텃밭을 제대로 가꿔볼 참이다.
지난 일 년 반 동안 가장 자주 했던 생각은 되도록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재료를 우리 손으로 직접 재배하고 싶다는 거였다.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보고 오직 ‘마당과 텃밭이 딸린 집’으로 이사를 온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작년에는 그저 손을 놓고 있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전적으로 남편이 한 일이지만) 자주 왕래하며 지내는 수의사 할배 네에서 친환경 퇴비를 얻어와 열심히 뿌리고 서리태 같은 각종 콩 종류와 감자, 고구마, 상추, 대파, 참깨, 오이, 호박, 고추, 옥수수, 땅콩에 생강까지 심었다. 지주대를 몇 개 새워두니 꽤 그럴듯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초보에겐 100평 남짓한 텃밭도 벅차더라.
유기농법이랍시고 나 몰라라 했더니 봄이 끝나기도 전에 이건 당최 풀밭인지 채소 밭인지 모를 만큼 풀숲이 졌다. 고구마는 싹만 무성히 우거지다 말았고, 감자농사는 싹 하나도 못 틔운 채 막을 내렸다. 제때 털어내지 못한 콩들은 누렇게 말라갔다.
반대로 열매가 너무 잘 맺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는데, 가지와 고추는 여기저기 퍼주다가 나중에는 모르는 척 말려 죽이는 패륜을 범하고 말았다.

 

“아따 풀 좀 뽑으쇼! 나는 출근하기 전에 피를 싹 뽑고 오는디.”
밭이 황폐해질수록 주변의 ‘애정 어린’ 참견도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남의 일에 웬 잔소리들이냐”고 무시할 수만도 없는 게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내 일도, 남 일도 모두 내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건, 땅과 자연, 생명의 이치를 배우고 조화롭게 살아보겠다는 우리의 신념과도 어긋나는 일이었다.

어쨌든 올해는 농사일지도 쓰고, 아침저녁으로 물도 잘 주고, 잡초도 잘 뽑고, 사랑과 정성을 쏟아 부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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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식이와 꼬꼬 닭들과도 좀 더 친해지고 싶다.
아이나 동물이나, 자기 배를 채워주는 대상에게 충성하는 법. 남편이 뒤뜰에 나타나면 개는 천방지축 이리저리 날뛰고 오줌을 갈겨대며 반가워하고, 여덟 마리의 닭은 마치 왕을 호위하는 무사처럼 구구구구 그의 주변으로 모여든다.
반면, 나는 거의 찬밥 신세다. 어쩌다 한 번씩 먹다 남은 뼈다귀나 고깃덩어리를 던져주며 수작을 부려보지만, 이 똑똑한 놈은 금방 눈길을 거둬가 버린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수탉들.
마당에 풀어놓은 날, 가까이 좀 다가가려고 하면 푸드덕 내 쪽으로 쏜살같이 날아와 금방이라도 쪼아댈 자세를 취한다. “옴마야!” 소리를 지르며 몇 발자국 물러서는 찰나, 그들에게 나는 낯선 사람, 아니 ‘만만한’ 낯선 사람이라는 것이 미안하고, 무안하고, 치욕스럽다.

 

그래도 요놈들아, 네놈들을 잡아먹자는 걸 극구 뜯어말리는 것도, 너희들이 부화기에서 나오던 날 밤새 삐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함께 있던 것도 바로 나거든!

 

이상적인 수탉 대 암탉의 비율은 1:10 정도라는데, 우리 집 닭 성비는 1:1. 수탉이 많아도 너무 많다.

암탉 네 마리 중 시부모님이 장에서 사 온 두 마리는 거의 찬밥 신세고, 한 마리는 외국 애완 닭이라서 그 짝으로 들인 외국 수탉하고만 어울린다. 결국, 우리가 부화시킨 암탉 한 마리, 깃털이 유난히 하얗고 매끄러워서 “예쁜이”라고 부르는 것에만 온 수탉들이 달려드는 통에 여덟 마리 모두가 불행한 처지이긴 하다.

 

“이번 설에 두 마리 잡아서 우리 집, 전주 집(우리 친정이다) 한 마리씩 떡국에 말아 먹자!”
김장하던 날, 시어머니가 아예 날을 잡으셨지만, 다행히 아직까진 모두 무사하다.
날이 좀 더 풀리면 다시 부화시키든가 좋은 암탉을 얻어오든가 해서 우리 닭들의 평화로운 생존권을 보장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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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은 건, 이제 30개월에 들어서는 네 살 첫째 아이와 바깥 활동을 실컷 할 수 있다는 거다. 젖먹이 동생도 웬만큼 자랐고, 관절이 삐걱 대긴 하지만 엄마도 뛰어놀 준비가 됐다.


학교 놀이터에 가서 언니 오빠 구경도 실컷 하고, 그네도, 시소도 맘껏 타고, 빙글빙글 달팽이 집을 그리며 신나게 달음박질을 하자. 어른들이 밭에서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땅 위를 기어 다니다, 흙을 물에 개어 밥을 짓고, 돌멩이와 풀로 반찬을 만들어 우리를 대접해 주겠지.
그러다 보면 어느새 봄이던가 했더니 여름이 왔군요, 하는 날이 금방 닥칠 것만 같다.

 

써놓고 보니 올봄 나의 계획들은 특별한 게 없다.
아이들, 함께 사는 동물들, 내가 키워야 하는 식물들과 내 주변에 최선을 다하고 조금 더 친절하게 굴며, 사랑을 베푸는 것. 그 사랑이 다른 이들에게 흘러흘러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
어쩜, 1년 반년 전 서울을 떠나올 때, 아니 어젯밤 잠들기 전의 다짐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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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하던 지난 주말, 집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심한 독감에 젖몸살을 앓고 난 다음 첫 외출이었다.
울창하게 나뭇잎이 우거져 있을 때는 몰랐던 새 둥지가 눈에 들어왔다.
회색 가지들만 남은 겨울에야 볼 수 있는 풍경. 나에겐 지난 6개월이 그런 시간이었다.

 

(다음번에 써볼 작정이지만) 둘째를 낳고 갑작스레 두 아이 전업 육아를 맡게 되면서 나는 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화려하고 아름다운 녹색 이파리들을 걷어내야 했다.

 

아, 애들 둘 키우는 일이 이토록 고된 일이었던가.

대단한 워커홀릭도 아니었건만, 왜 하필 이 시점에서 일로 성과를 내고 싶은 욕심이 이렇게나 커진단 말인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과 친절하고 바람직한 엄마 사이를 갈등하며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원망을 쏟아 붓던 날들. 급기야 내가 엄마가 되는 일이 가당키나 했나, 자책하며 울부짖었던 야만적인 시간.

 

보잘것없고 초라한 나의 진짜 모습, 깊숙이 숨겨져 있던 거칠고 이기적인 내면의 밑바닥을 확인하는 작업은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고독하고, 비참했다. 

하지만 앙상한 가지 덕분에 새 둥지를 분명하게 볼 수 있던 것처럼, 난 비로소 삶의 시련의 의미를 조금, 아주 조금 알게 되었다. 어떤 것도 진실되게 담아내지 못했던 마음에 그제야 조금씩 온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만일 <무탄트 메시지>에 나오는 참사람 부족이었다면 이 겨울이 다 가기 전, 나 자신의 성장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고 새 이름을 지어주었으리라.

 

앞으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갈까.
내 삶은 무엇으로 채워지게 될까.
서른다섯 살의 봄. 다시 시작이다. 참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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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숙
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이메일 : elisabethah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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