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핸펀 알람이 울린다.
으악, 벌써, 버얼써 아루님 데리러 갈 시간이 되었구나.

엊그제 아루가 한 말이 생각난다.
아루: 엄마, 똑같은 시간인데 시간이 너무 안 갈 때도 있고 너무 빨리 휙 가버리는 것 같을 때도 있어.
나: 그치? 언제 그렇게 시간이 더디가는 것 같았어?
아루: 할머니가 저녁에 오실 때. (할머니 기다리는 것이 지루했다는 말씀)
나: 그럼 시간이 빨리 휙 가버릴 때는?
아루: 엊그제 정은이랑 어린이 회관에서 놀았을 때. 체험관 시간이 후딱 끝나 버리더라.

그래, 같은 양의 시간이지만 제 마음에 따라서 아주 다르게 느껴지지...
근데 미안한 말씀이지만, 아루가 유치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네 시간이 내게는 왜케 짧고 아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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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마당에서 너를 기다린다.
매일 되풀이하는 일상이지만 이 자리에 서서 네가 나오는 곳을 바라보고 있으려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늑장부리는 해람이를 재촉해서 서둘러 집을 나설 때만해도 귀찮음으로 가득찼던 마음이 어느새 싹 비워지고 설레임으로 가득찼다.
오늘은 뭘하고 지냈을까? 누구랑 같이 놀았을까? 밥은 잘 먹었는지, 반찬이 너무 맵지는 않았는지, 궁금한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지만 애써 지운다. 서로 떨어져 있던 시간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먼저 꼬치꼬치 캐 묻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 멀리서도 알아보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너.
세상에서 가장 기쁜 얼굴로 한껏 안아줄 수 밖에.
 
 
2.
이부자리에 누워

아루vs나, 1회전

아루: 엄마, 닭질이 뭐야?
나: 헛수고했다는 뜻인데 그런말은 대체 누구한테 들었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거늘 나는 한점 부끄럼이 없다. 나? 내가 그런말을?? 아이들앞에서 예쁜말만 쓰는 고상한 언어 생활자라구!
아루: 엄마가 그랬잖아
나:정말? 내가 언제 그런 말을? 나, 아니야!
아루: 엄마가 그랬어. 양평 비발디파크 갔을때. 으하하하
...

여름에 비발디파크 갈때 네비를 잘못 찍어서 홍천이 아니라 양평에서 헤맨 적이 있다. 정황상 나도 모르게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왔을 가능성, 아주 높다.

그랬군. 그랬구나...

아루vs나, 2회전

아루: 엄마, 해람이 카메라 진짜 버렸어?
나:그럼, 버렸지!
요즘 방정리하는 문제로 아이들과 대치중이다.
순간의 욕구에 충실한 아이들에게 그때 그때 하던 것 제자리에 정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껏 어질러진 방에서 무릎으로 기어다니며 조각들을 찾아내고 분류하다보면 부아가 치민다.
몇 번의 협상끝에 나름 합의점을 찾았으나 이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방을 어지르는 원흉인 놀잇감을 하나씩 버리거나 줘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 엊그제 해람이가 재활용 상자로 만든 카메라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아루:내가 정리 안하면 내 것도 버릴거야?
나:당연하쥐!
아루:뭐 버릴건데?
나:글쎄, 생각 안 해봤는데... 젤 소중한 걸 버릴까보다. 그럼 다음부턴 정리 잘 하지 않을까?
아루:그럼 나도 엄마가 내 말 안 들어줄 때 엄마 노트북 부숴야겠다. 으하하하

아루에게 2연패!

부모가 아이를 훈육하면서 무의식적으로 협박을 일삼는다는 것을 깨달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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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진향
사진으로 만난 남편과 408일간 세계일주를 했다. 서로에게 올인해 인생을 두 배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둘이 넷이 되었고, 현재를 천천히 음미하며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돈 벌기 보다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아루(아름다운 하루), 해람(해맑은 사람)과 함께 자연과 사람을 만나며 분주한 세상 속을 느릿느릿 걷는다. 2012년 겨울, 49일동안 네 식구 말레이시아를 여행하고 왔다. 도시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사진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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