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녹색당의 대화 모임에 다녀왔다.
분노와 슬픔을 넘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마음들이 모인 자리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집회나 행사에 제대로 '참여'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나 '동원'되는 것에 대한 원초적인 반발심, 대학 때부터 카메라를 들었던 것은 그런 이유였을 지도 모른다.
취지나 구호에 공감하면서도 대오에 합류하지 않고 늘 조금 떨어져 사진을 찍었던 것이 용기없음인지, 타고난 '낯가림'인지, 한때는 꽤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지만 스스로 명쾌한 답을 얻진 못했다. 다만, 사진을 찍는 것도 함께하는 다른 방법이라고 생각해왔다.

밀양에 드나들며 탈핵과 에너지전환에 관심을 갖게 되고 녹색당에 가입했다. 소소하게 만나는 지역 모임에는 나갔지만, 서울시당에서 주최하는 '큰' 모임은 처음이었다.
우리의 분노와 슬픔이 ‘미안합니다.’ ‘'모두의 책임입니다.'라는 몇 마디 외침으로 희석되는 것 같아 답답했다. 어렴풋이 무엇이 문제인지 알겠으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막연했다. 뭉뚱그려서 '구조의 문제'라고 하지 말고 뭐가 문제고 어떻게 풀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답을 찾고 싶었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 그래서 대다수 정치인이 '튀지 않으려' 몸 사리는 상황이지만 그래서 더더욱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비통함과 문제의식을 담아낼 새로운 정치가 갈급하지 않나.

내용도 잘 모르고 김찬호 교수님의 강연이라 생각하고 갔는데 ‘tears in heaven’의 가사를 음미하며, 모두가 둥글게 모여 앉아 두서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의 형식이 참 좋았다.
판에 박힌 문구도 아니고, 어디서 읽고 들은 내용을 전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대상이나 감정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려고 선동하는 사람도 없었다.
각자 자신이 처한 곳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차분하게 털어놓았고 모두가 분노와 슬픔을 넘어선, 그 '다음'에 관하여, ‘무엇인가 하고 싶다.’, ‘해야겠다!’ 는 마음들을 포개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소소해서 부끄럽다는 고백에 함께 끄덕였고, 부끄러워 말고 용기를 내자고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고등학생에게 선거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부터 일상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보겠다는 다짐들이 터져 나왔다.

같은 슬픔과 같은 분노, 공감하고, 그리하여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자리였다.
그러나 한편, 이렇게 작고 사소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조직해낼 것인지, 그래서 과연 어떤 큰 흐름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함은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혔는데...
냉소와 무기력을 허락하지 않는 것, 포기하지 말고 견뎌내는 것, 포기하지 않는 마음들이 이렇게 모이는 것, 그래도 희망은 이것밖에 없지 않나.

 

자꾸 악몽을 꾼다.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집으로 들어오려는 기분 나쁜 목소리와 실랑이를 벌인다. 안돼, 들어오지 마! 아루야, 해람아, 피해! 도망가! 안간힘을 쓰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목구멍에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누구였을까, 무엇이었을까, 꿈에 나온 기분 나쁜 목소리의 정체를 떠올려 본다.
세월호 참사를 보며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생각났다. 예측 밖이라는 거짓말, 무책임하고 엉성한 사고 수습, 눈앞에서 버려진 생명들...

“구할 수도 있었던 많은 생명이 이렇게 버림받은 채 사라져 갔습니다. 당시 정부는 당장 건강에 피해를 줄 만한 일은 없다는 말을 주문처럼 반복했는데, 그러면서 왜 산 채로 묻혀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구조하지 않았을까요. 회의에 참가한 현지 대응 담당인 도쿄전력 직원, 경제 산업성 공무원, 보안원 관료들이 입을 모아 20km 권 밖은 절대로 안전합니다라며 설득했습니다. 그 때문에 강제 피난이 아니라 자율피난을 하기로 하고 회의를 정리했습니다. 이때 언론사들은 30km 권, 40km 권에 들어가지 말라는 회사 명령 때문에 현장에 기자를 한 명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정작 자기들은 멀리 도망쳐서 현장에 다가가려 하지조차 않았던 것입니다.“ (3,11 이후를 살아가는 어린 벗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분통 터지는 ‘가만히 있으라’는 체르노빌, 후쿠시마의 증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설계 수명 30년이 지난 노후 원전이 2개나 있다. 사용 연한을 10년 더 늘렸다가 고장으로 멈추었던 고리 1호기, 세월호가 침몰한 날 재가동이 승인됐다. 현재 월성 1호기의 수명연장 심사가 조용히 진행 중이다. (후쿠시마에서 폭발한 1호기도 설계 수명을 연장해 쓰던 노후 원전이었다.) 핵발전소를 돌려 부정하게 돈을 취하는 자들이 안전하다고 하는 말을 믿어도 될까? 원자력이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떠들어대는 그들이, 사고가 났을 때 맨 앞에 서서 끝까지 책임을 질까? 아루와 해람이를,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세월호를 통해 핵의 공포가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사고와 고장이 끊이지 않는 핵발전소, 밀집해 있어서 사고 위험도 높다. 피할 곳이 있을까? 30km의 경계가 어디쯤일까? 지도에 선을 긋듯이 30km만 넘으면 괜찮을 수 있을까?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새로 짓는 신고리 5,6호기 부지 승인 취소 소송에 참여했다. 나처럼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엄마들의 참여가 많았다고 한다. 원자력 안전 위원회 게시판에는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반대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만에서는 최근 97.5%나 공사가 진행된 원전 건설을 멈추기로 했다. 시민 사회의 힘, 미래 세대를 걱정하는 보통 엄마들의 연대가 이루어낸 성과라고 한다.
일본에 핵발전소 재가동을 반대하는 ‘백만 어머니 캠페인’이 있다. 사진작가 가메야마 노노코 씨가 후쿠시마 이후에 탈핵을 소망하는 아이와 어머니들을 찍은 ‘100명의 어머니’ 작업이 계기가 되었다.

세월호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적인 이윤추구가 지상 최대의 목표가 돼 버린 사회, 자본에 편입되어 공공성을 잃은 국가, 촘촘하고 견고하게 얽혀 있는 돈과 권력의 그물망, 그러나, 이것들이 결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하지 못했고 할 수 없었다.
밀양에는 이제 4개의 농성장이 남았다. 강제 철거의 위협 속에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고 있는 어르신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다. 그들의 정당한 싸움을 지키지 못할까 봐, 그래서 또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 괴롭다. 마음속으로 지지하고 페북으로 소식을 알리는 나의 미약한 힘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무기력해진다. 그래도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밀양에 함께 했던 의로운 마음들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

공감과 연대를 이야기하는 베이비트리의 글들도 가슴 깊이 와 닿는다. 타인의 고통을 아파할 줄 모르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들의 ‘국가 개조’에 무슨 희망이 있겠나. (‘국가 개조’라는 말이 삼청교육대 같은 발상이 아닐까, 섬뜩하다.) 내 아이를 잃은 것처럼 슬퍼하는 마음,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엄마들이 변화를 이끌어내자는 주장, 학교와 지역 사회에서 소통과 교류를 시도하는 노력에서 희망을 본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하지 않던가.

 

"정의를 위한 투쟁의 핵심 요소는 잠깐 동안만이라도,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동안이라도 한 걸음 나서면서 뭔가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심지어 가장 작고 비영웅적인 행동들이 불쏘시개로 쌓여나가다가 어떤 놀라운 상황에서 격렬한 변화로 점화될 수 있다."(하워드 진)
지난번 모임을 이끌었던 김찬호 교수님은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라는 책을 번역하셨다. 그 책에서 저자가 인용한 글을 옮긴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들은 서로 걱정하고 위로하면서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사람을 믿었다. 원래 사람 사는 게 이런 것이라고, 나 혼자 살 궁리를 하며 뛰쳐나가는 게 아니라고, 차디찬 물속으로 가라앉은 아이들이 전하는 이 유언을 헛되이 하지 않기를.
마주 앉아 이야기하자. 이 분노와 슬픔, 오래오래 기억하기 위해, 분노와 슬픔을 넘어 함께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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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두어 달 생각했던 ‘외도’가 길어졌습니다. 로그인하기가 귀찮아서 댓글은 못 남겼지만 늘 눈팅하고 있습니다. 베이비트리에서도 이야기 모임을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신년회 때처럼 장소는 하자 센터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고, 먹을거리는 더 간소하게 준비하면 좋을 것 같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옷이나 소품, 함께 나눌 음악이나 이야기를 간단히 준비하면 더 좋겠습니다. 금요일 저녁 6시,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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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진향
사진으로 만난 남편과 408일간 세계일주를 했다. 서로에게 올인해 인생을 두 배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둘이 넷이 되었고, 현재를 천천히 음미하며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돈 벌기 보다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아루(아름다운 하루), 해람(해맑은 사람)과 함께 자연과 사람을 만나며 분주한 세상 속을 느릿느릿 걷는다. 2012년 겨울, 49일동안 네 식구 말레이시아를 여행하고 왔다. 도시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사진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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