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바루, 세나이 공항.

엄마, 근데 우리 비행기 타고 어디 가?
미리 가지.
그러니까 미리 어디를 가냐고?
물루케이브(Mulu caves)를 가기 위해 미리, 미리(Miri)에 가는 거라구.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보르네오섬의 미리 Miri 라는 도시이다. 물루 국립공원에 가기 위해서 여기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미리 가자, 미리 가야지, 미리 가는 거야!
아이들과 비행기를 기다리며 계속 말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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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의 날씨는 참 드라마틱하다.
오전에 리조트에서 물놀이를 할 때는 완벽하게 파란 하늘,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 머릿속으로 그리던 열대의 휴가를 즐길 수 있는 날씨였는데 짐을 챙겨 공항에 왔더니 갑자기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우르르르르 쾅, 천둥 번개와 함께 빗줄기가 무섭게 쏟아졌다.
태초의 하늘은 어땠을까? 수천 년, 수만 년, 수억 년 전의 하늘은 어땠을까? 태고의 자연이 보존된 곳, 열대의 에덴이라고 불리는 보르네오의 정글로 떠나려니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그 오래전에도 하늘은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 같은데. 오랜 세월 그대로인 것 같지만,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고 시시각각 변하는 게 바로 ‘하늘’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여전히 한낮의 스콜이 갑작스럽고 당황스럽지만, 나날의 일상으로 자리 잡은 현지인들에겐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나 보다. 우리가 창가에 매달려 구름이 몰려오고 사라지는 걸 바라보며 변화무쌍한 하늘에 감탄하고 눈길을 떼지 못하는 동안 그들은 대합실 의자에 무심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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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람이는 어쩜 저렇게 탈것에 관심이 많을까?
내가 하늘과 들판을 볼 때 해람이는 유리창에 달라붙어 비행기와 각종 화물을 실어나르는 차들을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면 레고로 공항에서 본 차들을 만들어 보겠노라고.
엄마, 봐, 저 차는 이렇게 생겼어!
엄마, 봐~를 외치며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지만, 하늘에 정신이 팔린 나는 자꾸만 건성으로 대답한다.
해람아, 미안하지만 엄마는 차보다 하늘에 관심이 많단다. 그래서 네가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해도 네가 말하는 그 차의 특징들이 어느새 하늘로 날아가 버려.
하지만, 네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지는 못해도 네가 탈 것에 열광하는 태도, 그것이 내겐 큰 관심거리이고 네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단다.
창가에 나란히 서 있지만 서로 다른 걸 바라보는 엄마와 아들, 관심거리의 차이.

 

 

 

오후의 햇살이 낮게 드리울 때 미리 공항에 내렸다.
미리(Miri)의 숙소를 미리 알아보지 않아서 물어물어 공항 맞은 편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갔다. 거주 목적의 마을이 아니라 항공사 등 공항 관련 업무를 보는 사무실들이 있는 곳, 저녁이 되어 사람들이 퇴근하고 나니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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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연 식당을 찾지 못해 주차장 한켠에서 트럭을 세워 놓고 국수를 파는 노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차꿰이뜌(Char Kway Teow)는 말레이시아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볶음 납작 쌀국수.
Kway Teow kecil
Kway Teow besar
kecil 과 besar의 차이를 물었는데 영어가 안 통해서 그냥 하나씩 시켰더니 똑같은 국수가 나왔다. 가만보니 하나는 양이 적고 다른 하나는 양이 많다. 아하, 대/소를 구분하는 말이었구나.
kecil?
besar?
손가락으로 가리켜 kecil과 besar 뜻을 배운다.
kecil 은 작다, besar는 크다.
국수를 먹고 있는 발밑으로 들고양이 한마리 찾아든다.
아이들이 남긴 새우를 모아 주니 허겁지겁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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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숙객이 우리가 전부인 텅 빈 게스트하우스 거실에서 책 읽고 그림 그리고 놀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별 네 개짜리 리조트, 전용 수영장에서 놀던 오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오늘의 하늘만큼이나 큰 변화인 것 같다.
가운데가 푹 꺼진 써금써금한 매트리스에 빈대(bed bug)를 조심하라던 숙소 리뷰를 떠올리며 몸을 누인다. 리조트의 바삭한 침대 시트가 떠오르지만 아쉽지는 않다. 불편하고 부족한 가운데 나아가는 것, 그것이 여행이 아닐까. 그저 하룻밤 머물 수 있음에 고마워하는 겸손한 여행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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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9시 20분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물루 Mulu로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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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입구 흔들다리에서 내려다본 나루터
자, 이제 동굴, 정글 탐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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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진향
사진으로 만난 남편과 408일간 세계일주를 했다. 서로에게 올인해 인생을 두 배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둘이 넷이 되었고, 현재를 천천히 음미하며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돈 벌기 보다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아루(아름다운 하루), 해람(해맑은 사람)과 함께 자연과 사람을 만나며 분주한 세상 속을 느릿느릿 걷는다. 2012년 겨울, 49일동안 네 식구 말레이시아를 여행하고 왔다. 도시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사진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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