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일한 당신, 휴가를 떠난다구요?
금쪽같은 휴가를 어디서 어떻게 보낼지 고민이라구요?

 

야자수와 흰 모래사장 펼쳐지는 열대의 바닷가에서 나른한 휴식을 취하고
잘 꾸며진 숲길, 나비들이 노니는 정원을 걸으며 자연의 숨결을 느껴요.
풍경은 좋지만 불편하고 촌스러운 건 질색이라구요?
걱정마세요, 여기는 세련되고 럭셔리함이 철철 넘치는 도시랍니다.
시크한 티 살롱에서 우아하게 애프터눈티를 마시고
아늑하고 편안한 리조트에서 최고급 서비스를 받아요.
지친 몸과 마음이 어느 정도 힐링되었다면
영화 속으로 뛰어들어 지구를 구하는 모험은 어때요?
아찔하고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에 올라 짜릿함을 맛보고
곳곳에서 벌어지는 뮤지컬, 쇼, 쇼, 쇼타임도 놓치지 마세요.
먹을거리 천국에서 무얼 먹을지 고민을 끝냈다면
로맨틱한 야경을 바라보며 칵테일 한 잔!

 

여행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맞춤형 놀이 왕국.
완벽한, 너무나 완벽한 휴가를 꿈꾸는 이곳은 최고급 리조트 단지와 테마파크, 아쿠아리움, 박물관, 볼거리, 즐길 거리로 가득한 복합 관광단지, 센토사 섬이다.

싱가포르 본토의 남쪽 해안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이 섬은 옛날 옛적엔 작은 어촌 마을이었고 1800년대 영국군이 들어와 요새로 썼다. 1967년 영국으로부터 섬을 돌려받은 싱가포르 정부가 관광 휴양 단지로 개발을 했단다.

 

sB1046655.jpg

 

sP1040055.jpg

 

케이블카? 모노레일? 버스나 택시?
섬에 들어가는 방법도 여러 가지,
뭘 하면 좋을까?
각종 놀이 시설과 체험을 알리는 광고판이 화려한 사진과 현란한 문구로 유혹한다. 다양한 어트랙션 앞에서 어리둥절한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맞춤형 패키지 상품들도 있다.

 

보다 기억에 남을 휴가를 위해서라면 빌딩숲을 출발하여 바닷가 항구와 센토사섬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케이블카를 타야겠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으므로 패쓰,
버스보다는 모노레일이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아 하버프론트역에서 모노레일을 탔다.

 

한 가지씩만 해보자
한 웅큼 들고온 브로셔들을 펼쳐놓고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걸 하나씩 고르게했다.
바닷가 물놀이!
아루는 센토사 섬에서 가장 저렴한(돈 안 내도 되는) 선택을 했고
언더워터 월드!
해람이는 수족관을 골랐다.

 

 

sP1040093.jpg

 

세 개의 해변 중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실로소 비치로 GO, GO!
물속이 훤히 비칠 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민 바닷가 풍경이 나쁘지 않다.

 

sB1046674.jpg

 

sB1046691.jpg

 

물속으로 풍덩~
큰아들과 따님은 물가에 내놓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알 논다. 센토사 섬에 도착해 이른 점심을 먹고 오후 늦게까지 놀았다.

 

sP1040140.jpg

 

오늘도 해람이는 모래밭에서 꼼지락 꼼지락~

 

sP1050457.jpg

 

이튿날은 장소를 옮겨 팔라완 비치에서 놀았다.
실로소 비치와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실로소 비치가 젊은 언니, 오빠들이 비치발리볼, 써핑(파도타기 체험을 위한 인공 시설이 있단다)을 하며 익사이팅하게 노는 곳이라면 팔라완 비치는 가족적이다. 조그만 웅덩이 같은 유아풀도 있고 미끄럼틀 있는 놀이터도 있다.

 

sB1057414.jpg

 

‘바닷가에서 하루 실컷 놀았으니 오늘은 안 해도 되겠지?’ 싶어 물놀이 준비를 안 해 왔는데 참새들이 방앗간을 지나칠 수가 있나, 팬티 바람으로 뛰어들었다.

센토사섬에서는 뭘 해도 다 돈이 드는데 섬 안을 도는 버스, 비치 트램은 무료다. 모노레일도 섬 안에서 타는 것은 공짜^^

 

sP1050466.jpg

 

평범한 바닷가처럼 보이지만 사실 센토사 섬의 이 해변들은 특별하다. 원래부터 있었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존한 것이 아니라 인공으로 만들어내었다는 것! 동서를 잇는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이름난 나라답게, 이 모래들은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한 것이다. (바닷가 한쪽에 모래를 쌓아두고 계속 퍼 나르는 모양이다.)
바닷가의 바위들도 일부러 가져다 놓은 것이고 줄지어 늘어선 야자나무들, 그럴듯해 보이는 오두막, 모두 ‘연출’된 것이라는.

 

팔라완 비치는 필리핀의 아름다운 섬, 팔라완의 이름을 따온 걸까? 워터파크 ‘캐러비안베이’가 카리브 해에서 이름을 따온 것처럼. 그러니까 이 해변도 진짜 팔라완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테마파크의 한 부분인 것이다. 그런데 진짜 같은, 너무나 진짜 같은!
바닷가 근처에는 으리으리하고 극도로 깨끗한 샤워실, 탈의실, 화장실이 있다. 열대의 바닷가 체험이 끝나면  재빨리 분주한 도심, 다른 체험장에 적합한 차림으로 변신!할 수 있다.

 

sB1057126.jpg

 

sB1057152.jpg

 

sB1057164.jpg

 

해람이 바람대로 ‘언더워터 월드’, 수족관에 갔다.

 

sB1057197.jpg

 

sB1057174.jpg

 

엄마, 가오리 좀 봐, 얼굴이 이렇게 생겼어!

 

싱가포르의 수족관이 세계 최대라고 광고하는 걸 봤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았다. 삼성동 코엑스 아쿠아리움보다도 작은... 그래도 관광객이 붐비지 않아 구경하기는 좋았는데 알고 보니 불과 한 달 전쯤 새로 생긴 또 다른 수족관이 있었다. 어쩐지 썰렁하더라니.

어마어마하게 큰 수조에 800종 이상의 해양 생물을 풀어놓았다는 새로운 수족관은 리조트 월드에 자리하고 있는데 어느 호텔은 객실 한 벽이 수족관 창으로 돼 있어서 침대에 누워 수족관을 감상할 수도 있단다.

와! 한쪽 벽이 수족관이라면 바닷속에 들어간 느낌이 들겠지?
물고기들도 밤에는 잠을 잘까?
수족관을 배경으로 침대가 놓인 사진을 보며 아이들과 그 황홀한 방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 ‘이런 방은 하룻밤에 얼마나 할까? 얼마, 얼마면 되겠니?’

 

sP1040155.jpg

 

전날 실로소 비치에서 모노레일 타러 가다가 리프트가 보여 멈춰 서서 구경을 했다. 리프트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 루지를 타고 내려오는데 재미있어 보였다.
타려고 했는데 비가 쏟아져 못 탔던 루지, 8회권을 사서 좌린과 아루는 세 번씩 타고 나는 두 번. 해람이는 나랑 같이 타다가 마지막엔 좌린과 한 번 더 탔다.

sB1046768.jpg

 

리프트를 타고 올라간다. 루지보다 나는 이게 후덜덜, 더 무섭다.

 

sB1057277.jpg

다른 그림 찾기! 숨은 좌린 찾기!

 

sP1040235.jpg

 

sB1047055.jpg

 

모노레일을 타고 다시 하버프론트. 음식 종류가 너~무 많아 뭘 먹어야할지 고민스러운 대형 푸드코트에서 저녁을 먹고
화려한 불빛에 취해 할 일 없이 서성거렸다.

 

 

sB1046961.jpg

 

love it or loathe it,
사랑하거나 혐오하거나,
론리플래닛 싱가포르 편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서울보다 조금 큰 이 도시국가는 커다란 테마파크 같다. 휴가를 두고 우리가 욕망하는 모든 것들을 다 가질 수 있다고 유혹한다. 온갖 즐거움과 낭만이 여기에 있다고, 손쉽게 얻을 수 있다고(돈만 있으면!).
그러나 결국 테마파크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지 않나. 실제가 아닌 모방 혹은 가상이라는 것, 짜릿한 쾌감의 뒤끝은 어딘가 허전하고 씁쓸했다.
그리고 뭐든지 다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소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불편한 진실.

지갑을 열어라, 활짝, 더 활짝, 더 큰 재미와 감동을 위해! 주머니 사정에 따라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의 정도가 다르게 매겨지는 분위기에 반발심이 일었다.

즐거움이나 낭만 같은 감정이 돈으로 사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사실 아이들은 놀이기구에 몸을 맡기지 않고도 어디서나 잘 논다. 숙소 근처의 패러파크 지하철 역, 출입구에서 개찰구까지 걸어가는 길의 바닥 타일에 무슨 광고인지 초록, 파랑, 빨강, 주황, 검정색 말풍선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지하철역에 갈 때마다 이 바닥 그림을 밟으며 참 재미있게 놀았다. 보도 블럭에서 특정 색깔의 블럭을 밟으면 되니, 안 되니, 서울에서도 길 가면서 많이 하던 놀이의 연장이다.

 

초록색은 풀밭이야. 밟으면 철퍼덕 주저 앉아야 해.
파랑색은 바다니까 어푸어푸 수영을 하고 (수영하듯이 팔을 젓고)
빨간색은 딸기야. 오물오물 맛있게 먹고...(먹는 시늉하며)
주황색은 오렌지! 새콤달콤 맛있다.(아이셔~ 표정을 짓고)
엄마, 엄마, 조심!! 검정색은 밟으면 안 돼. 폭탄이거든. 빵~! 밟으면 그동안 모은 거 다 잃어버리고 처음 시작한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구.

 

“저기, 저기 딸기!! 딸기 먹으러 가야지.”
“나는 오렌지 세 개나 먹었는데”
어느새 아줌마도 체면 따위는 잊어버리고 아이들 따라 말풍선 그림을 밟고 동작을 하곤 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서 테마파크를 찾지만, 비싼 돈 내고 얻는 테마파크의 재미란 것이, 자발성과 창의성이라는 놀이 정신에 비춰 본다면 지하철 타일 밟기 놀이보다도 못한 게 아닐까?

 

일상에 작은 균열을 만드는 휴가, 뭐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시나? 그냥 재미있게 놀면 되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런데 문득,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목적으로 인간들이 고안한 것이라는, 누군가 짜 놓은 각본에 몸을 맡기고 상술에 놀아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면 혼란스러워진다.
너무 진짜 같지만 또 너무 작위적이라서 센토사 섬이 영화 트루먼쇼의 세트장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고
영화 매트릭스처럼 단지 꿈이 아닐까,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지? 하는 의심이 들 법도 했다.

그리고 이 인공 구조물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해갈까?  낡고 삐걱거리는 콘크리트, 철조 시설들을 수십 년, 수백 년, 계속 손 보며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럴려면 또 얼마나 많은 자원이 필요할까?  그러다 어느 순간 사용할 수도 폐기할 수도 없는 채로 버려지는 건 아닐까?  현재, 찰나적인 쾌락과 욕망 위에 세워진 이 놀이 왕국의 미래가 그리 아름답지 않을 것 같다.

 

sP1040190.jpg

 

sB1046850.jpg

 

실로소비치에서 스콜을 만났을 때 우리는 일회용 비옷을 입고 장대비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빗속에서 신나게 뛰어 다닌 것은 너무나 이상적으로 잘 짜여진 이 놀이 왕국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미칠 듯 퍼붓는 빗줄기가 주변의 풍경을 집어 삼켰다. 놀이기구들이 작동을 멈춘 그 순간, 예외적인 그 순간이 내게는 오히려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 섬의, 이 땅의 맨얼굴을 본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이 도시를
사랑하거나
혐오하거나
어느 쪽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실컷 잘 놀고 이렇게 말하기가 조금 민망하지만) 아무래도 전자보다는 후자인 것 같다.
다시 또 오고 싶냐고 묻는다면
글쎄.

지금으로서는 두 번, 세 번, 다시 와보고 싶은 마음이 들것 같지는 않다.

 

혹시,
누가 공짜로 보내준다고 하면
한쪽 벽이 수족관인 방을 잡아주고
그 유명한 초고층 옥상 수영장에서 실컷 놀아 보라고 한다면
기꺼이 생각해보겠지만^^

 

 

sP1050404.jpg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빈진향
사진으로 만난 남편과 408일간 세계일주를 했다. 서로에게 올인해 인생을 두 배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둘이 넷이 되었고, 현재를 천천히 음미하며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돈 벌기 보다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아루(아름다운 하루), 해람(해맑은 사람)과 함께 자연과 사람을 만나며 분주한 세상 속을 느릿느릿 걷는다. 2012년 겨울, 49일동안 네 식구 말레이시아를 여행하고 왔다. 도시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사진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
이메일 : babytree@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beanytime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134459/aa9/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58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어느날 남편이 말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24] 빈진향 2013-11-25 66174
57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끝은 새로운 시작, 오션월드의 추억 imagefile [9] beanytime 2012-08-30 42783
56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말레이시아 게임 하다 진짜 말레이시아로! imagefile [9] 빈진향 2013-04-19 34449
55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낯선 도시와 친해지기, 대중교통, 시장, 길거리 식당, 그리고 헤매기 imagefile [1] 빈진향 2013-04-26 33453
54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촘백이 만든 평상에 놀러 오세요. imagefile [1] 빈진향 2013-05-24 33344
53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타만네가라, 정글 속에서 네 식구 함께 한 작은 모험 imagefile [4] 빈진향 2013-05-22 33058
52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페낭 힐, 푸니쿨라타고 벌레잡이 식물을 보러 가다. imagefile [7] 빈진향 2013-07-17 32420
51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새 공원과 이슬람 예술 박물관 imagefile 빈진향 2013-05-07 28104
50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푸트라 모스크의 분홍 양파지붕 imagefile [2] 빈진향 2013-05-10 27615
49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엄마, 이 세상을 누가 만들었어? imagefile [6] 빈진향 2014-01-13 26007
48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보르네오 섬, 물루 국립공원,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을 가다. imagefile [1] 빈진향 2014-01-06 25570
47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팔자 좋은 며느리의 추석맞이 imagefile [4] 빈진향 2013-09-19 25467
46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제란툿, 터미널에서 삶을 돌아보다. imagefile 빈진향 2013-05-14 25178
45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서울에서 쿠알라룸푸르, 35도의 차이. imagefile [8] 빈진향 2013-04-23 24885
44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일곱 살 아루, 여행의 길동무, 인생의 스승! imagefile [1] 빈진향 2013-07-12 24498
43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말레이시아 국민 여행지, 카메런 하일랜드(Cameron highlands)를 가다 imagefile 빈진향 2013-05-31 24467
42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리얼 정글맨 페난족,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imagefile [3] 빈진향 2014-01-23 23661
41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아침에는 논에서, 저녁에는 밭에서 노는 서울 아이 imagefile [10] 빈진향 2014-06-03 22845
40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사랑을 내려놓다. [4] 빈진향 2013-12-05 22573
39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KLCC 공원에서 주말 나들이 imagefile [2] 빈진향 2013-04-30 22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