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에 전주를 이렇게 많이 오게 될 줄 몰랐다.

아내가 둘째를 낳기 전인 2월달에 처가로 향했으니 4개월째 거의 매주 전주를 오가고 있다.

서귀포에서 제주, 군산에서 전주까지 제법 이동을 해야 하는데 가는 시간은 왜 이리 먼지,

오는 시간은 또 왜 그리 슬픈지.

 

둘째가 아니었으면 전주는 1년에 두 번, 그것도 길면 이틀정도 잘까 말까한 명절나들이용 도시였다.

아이와 함께 차로 이동해야 하다 보니 경남 창원에서 진주로,

다시 대전간 고속도로에서 포항-익산간 고속도로로 빠져 한참을 달리고서야 전북 전주에 도착했다.

아내를 만나기 전에 단감을 납품하려는 아버지를 따라 딱 한번 전주를 간 적이 있는데

그때는 고속도로가 없어 섬진강 굽이굽이를 따라 가야 했다.

 

어쩌다 전라도로 장가를 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어머니는 총각이었던 나에게 신부감으로

2부류는 안된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크리스찬, 그리고 전라도 출생(참고로 나는 이 두가지를 극복하고 아내와 결혼했다).

 

어머니가 개인적인 성격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분명히 나를 앉혀두고 그렇게 다짐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경상도 시골 지역에선 이 2가지가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어떤 것이었던 것 같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전라도 지역에서도 경상도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에 전주 처가에 갔을때 아내에게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불편했다.

장모님이 “절대 경상도 남자와는 결혼을 안 시켰을 것이다”라고 내게 말씀을 하지는 않았지만

‘경상도 사람은 어떠냐’, ‘경상도 음식은 참 맛이 없다’등등 경상도와 전라도를 나누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아마 내가 장모님께 느낀 감정을 내 아내도 어머니에게 느꼈을 텐데 며느리 입장에서 그 강도는 더 심했을 듯하다.

 

결혼을 하고 보내드린 크루즈여행에서 장모님과 어머니가 여행내내 불편한 관계로 지내다보니

그 이후 모든 감정소모와 불편함을 나와 아내가 다 뒤집어 쓰게 되었다.

왜 사돈지간을 한 배에 태워 원수로 만들었나 하고 후회가 막심했지만 어쩌랴,

이미 엎질러 놓은 물인 것을.

 

설추석때 가게 되는 불편한 처가였지만 사실 기대되는 것이 있었다.

이건 매우 놀라운 일이자 경험이었는데 매끼 식사때 ‘전’을 부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보통 ‘전’이라고 하면 설명절, 그것도 제사를 모시는 큰집에서도 부칠까하는 것으로,

나는 커오며 ‘전’을 먹기는 커녕 구경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부터 밥상에 귀하디 귀한 ‘전’이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사윗감이 인사하러 와서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결혼하고도 아내는 본인이 먹고 싶으니 ‘동태전’ 부쳐놓으라고 장모님께 전화를 건다.

 

‘쪽파강회’는 또 어떤가. 쪽파를 살짝 삶은 후에 모양을 보기 좋게 만들려면 손이 이만저만 가는게 아니다.

사위가 좋아한다고 해서 장모님이 직접 만드셨는데 정작 장모님은 파를 못드신다고 한다.

식사 때마다 매번 겉절이 김치가 상에 올라온다.

‘도대체 이건 무엇인가’ 할 정도로 정성이 가득한 음식들이 매번 상에 올라와서 ‘백년손님’이라 그런가 했는데 일상의 음식이 그 정도였다.

 

불편한 감정으로 오가기 시작했건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장모님의 정성과 솜씨에 탄복을 하였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한 음식솜씨하시는 장모님덕분에 전국 최고의 한식도시인 전주에서 제대로 된 외식을 못해보았기 때문이다.

 

장가 온지 몇 년이 지났지만 전주에서 그 흔한 콩나물국밥을 못 먹어보았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믿을까?

 

<전주 막걸리집의 밑반찬 포스, 경상도 사위는 눈이 뒤집어진다>

막걸리집.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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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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