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없이 살아가기’가 과연 가능할까?

기러기아빠에게서나 가능한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

설명절이 끝이 나고 아내는 출산을 위해 뽀뇨와 친정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출산까지는 아직 한달반이 넘게 남은 상황이고

출산후 산후조리까지 하게되면 아내가 집을 비우는 날은 적어도 3달이 넘을 듯하다.

 

가족을 남겨두고 처가에서 가방을 들고 나오려는데 아버님이 자전거 뒷좌석에 내 짐을 싣고

터미널까지 데려다 주신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안개가 끼어 항공편이 취소되고

다시 처가인 전주로 오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

 마치 입대를 해야 하는 날 휴가를 하루 더 받은 군인의 심정이랄까.

생각같아선 ‘나도 전주에 있고 싶어요’라고 얘길 하고 싶었으나

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 공항에 내려 다시 차를 몰고 1시간을 달려 새로 이사온 서귀포 집에 들어서는데

새집이다보니 낯설기도 하고 짐이 별로 없어 허전하기도 하고 온기가 없어서 그런지 내 집같지가 않았다.

‘여기서 몇 달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막막한 심정이다.

 

부엌에서 간만에 김치볶음밥을 하며 ‘아내없이 살아가기’라는 페이스북 일기를 써보는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글로 쓰자니 매일 ‘외로워 죽겠다’는 내용일 듯하고 저녁사진에 간단한 멘트를 덧붙인다.

며칠전에는 혼자 있는데 거실에서 인기척이 들리길래 작은 방문에 옷을 걸어서 잠궈두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옷이 떨어져 있다면 아마도 누군가 출입한 흔적이겠지’.

 

 아침에 일어나서는 일부러 크게 소리를 질러 내 마음속의 두려움을 없앴다.

그래도 마주하게 되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

침대맡에 아침이면 햇살이 비취고 누운자리에서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이지만

아침에 일어나 혼자 범섬을 바라보며 조리퐁에 우유를 먹어야 하는 신세라면 무인도나 다름없지 않는가.

 

외로워 못살겠다고 친한 형들한테 얘길했더니 ‘어떻게 남자가 자기 외롭다고 아내를 부르려고 하냐. 넌 너무 이기적이야.'라고 

욕을 엄청 해댔다. 생각해보니 결혼한 후에 친정집에서 편하게 지낸 적도 별로 없는 듯하고

출산을 하면 아무래도 남편보다는 엄마가 백배는 더 잘 할듯해서 “내 걱정 하지 말고 편히 있으세요”라는 말을 전했다.

 

남편이 잘 있는지 궁금했는지 아내는 며칠 전 “출산 전에 정리할 게 있어요”라고 말하고선 제주로 돌아왔다.

함께 가구도 고르고 이사후 여러 가지 정리도 하다보니 둘이만 있어본 것이 과연 얼마인가 싶다.

어제는 아내와 동네 맛집을 들러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정말 오랜만에 신혼으로 돌아간 것 같아요”라는 아내말에 공감.

곧 있으면 둘째가 태어나고 2명의 아이를 양육할 생각에 아내나 나나 쉽지는 않을듯 하다.

그 전에 아내에게는 아주 짧지만 휴식을 주고 나는 아이 둘과 함께 하면 못할 것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실행해볼 생각이다.

 

어떤 남편들은 아내 없는 자유를 만끽해보라고 얘기를 하는데

‘자유’는 하루면 족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틀’이면 ‘자유’를 말한 그 입에서 어떤 이야기를 꺼내게 될지 입장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김치볶음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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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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