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늦잠을 자고 있는 나를 아침부터 깨운다.

 

“자기, 이리 와봐요”

 

무슨 일인가 싶어 대문 밖으로 나와보니 배가 산만한 아내가

주인이 좋아 한달음에 뛰어오는 강아지 표정으로 와서는 가구를 하나 옮겨 달라고 한다.

무슨 일인가 싶어 아파트 복도 쪽을 보니 아내가 무거운 화장대를 하나 주워서

우리가 사는 층까지 옮겨다 놓았다.

 

잠옷 바람으로 복도에 나가기가 뭐해서

“에이, 나중에 옮겨다 놓을께요”했는데

누가 주워갈까봐 그런지 “얼른 옮겨다 주세요”하며 보챈다.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않고 누구 보는 사람 없지 하며

100미터 달리기 하듯 달려가 화장대를 번쩍 하고 드는데

번쩍하고 들리지가 않는다.

 

묵직한 화장대를 옷도 제대로 챙겨입지 않은 남자가 들고 가는 모양새가 여간 거시기 하지 않은지라

칼루이스처럼 들고 달렸는데 화장대 무게가 온 몸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무거운 걸, 어떻게 옮겼어요. 너무 무거운데..”,

 

“그러게요. 어찌어찌 가지고 올라오긴 했는데 도저히 무거워 옮기겠어요”

 

집안까지 겨우 들여놓고는 화장대를 살펴보는데 결혼할 때 가져온 화장대보다 그럴싸해 보였다.

“이런 걸 누가 버렸을까?”하며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슨 일이 있어요?”,

 

 “무거운 걸 들었더니 조산기가 있는지 배가 땡기네. 누워 있어야 겠어요”,

 

“그러게. 그걸 왜 들고 왔어요”.

 

아내는 방문을 열고는 급하게 몸을 침대에 뉘였다.

‘조산기’라는 말에 나 또한 긴장이 되고 ‘괜히 무거운 걸 들고와서는’하며 걱정스레 문을 여는데

아내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괜찮아요? 그러게 무거운 걸 왜 들고 왔어요. 배도 부른 사람이”라며 이불을 걷어내었는데

눈물을 보이며 아내가 목소리를 높이며 나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잘 사는 남자랑 결혼했으면 저런 거 안들고 오잖아요”

 

어떤 남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발끈하여 눈물을 흘리며 집을 나가기도 하고

또 다른 남자들은 자존심 상해 술을 많이 마시겠지만

나는 “쉬세요”라고 하며 문을 닫고는 그 대사를 친 아내가 너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아내의 스타일은 뭐랄까 베프(절친한 친구)도 이런 베프가 없는,

나와 찰떡궁합 스타일이고 나처럼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순둥이였기 때문이다.

 

‘늘 든든한 와이프도 애처럼 굴 때가 있구나’.

 

아내가 많이 속상해서 터져 나온 말이지만 나는 아내가 밉지도

그렇다고 내 마음을 다치지도 않았다.

다만 ‘조산기’라는 단어 때문에 속이 상한 아내 옆에서 눈치만 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나를 안절부절 못하게 하였다.

 

아내와 결혼한지 5년이 지났다.

그중 4년을 제주에서 아이를 낳고 살았다.

부족한 형편임에도 단 한번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은 아내가 고맙기도 하였지만

‘주워온 화장대’가 계기가 되어 아내의 또 다른 내면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어서 또 고맙다.

아내의 마음 한켠으로 들어가는 계기를 마련해준 ‘새 화장대’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그 이후 어떻게 되었냐고?

아내가 결혼할때 가져온 화장대.. 팔려고 내어놓았더니 아무도 사가지 않고

그냥 줄려고 해도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헐~~

 

<새로 온 화장대>

화장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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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블로그 : http://plug.hani.co.kr/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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