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헤 웃고 다니는 얼굴이다 보니 인상좋다는 얘길 꽤 듣는다.

이런 인상도 불리할 때가 있으니 누군가를 찾아가 따져야 할 때다.

여자들이 감성적이라고 하는데 가계부를 쓰고 지출에 민감한 엄마가 한번 따질 때는

이성적 인간의 데카르트도 저리가라 할 정도다.

아내에게 ‘휴대폰으로 걸려오는 각종 판매전화들을 끊거나 회피할게 아니라

어떻게 내 정보를 알고 있냐고 따지며 삭제를 요구하라’는 조언을 듣고서 연습을 많이 했다.

 

‘화내지 말고 최대한 이성적으로 접근하여 상대방을 설득하기’.

 

오늘은 바로 이 미션을 수행할 적절한 타이밍과 기회가 왔다.

벌써 한달하고도 더 오래전, 우리집 압력밥솥이 고장났다.

워낙에 청소를 안하는지라 잠시 여행 차 제주의 우리집을 찾은 장모님이

그 밥솥을 깨끗이 물로 씻었다.

의도와 달리 물먹은 압력밥솥은 작동하지 않았고 곧 AS센터에 맡겼다.

 

중국 관광객이 자주 찾는 길거리,

차에서 내려 큰 밥솥을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 두 손으로 받들고 찾을 때만해도

결혼기념으로 어머니가 사준 고가의 가전기기니 만큼 별다른 문제가 없을꺼라 생각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친절한 응대와 자세한 설명을 듣고 밥솥을 찾을 때는 돈 몇 만원 수리비가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밥을 하는 도중 전원이 나가버린다.

며칠 수리 때문에 기다렸다가 오랜만에 밥을 한가득했는데 뚜껑도 열리지 않으니 머리뚜껑이 열리기 직전.

밥솥 한가득인걸 보고 AS센터 직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며칠 뒤 다시 찾아간 밥솥이 또 말썽이다.

마침 방송국에서 촬영차 왔고 아내에게 밥도 해먹여야 하는데 밥솥이 맛이 가다니..

어쩔수 없이 조그마한 냄비에 밥을 올렸다.

냄비밥이 익숙하지 않아 그날부터 거의 10일동안 설익은 밥이나 죽이 된 밥을 먹어야 했다.

 

드디어 오늘 AS센터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리비 24000원을 들고 찾으러 오라고.

마침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기저귀, 우유, 계란 몇 개를 사고 나니 가진 돈 5만원을 몇 천원 넘긴다.

수수료 1100원을 지불하고선 수리비를 뽑고 계산대에서 물렸던 우유 2개도 장바구니에 넣고는

이제 한 달이 넘게 씹어야 했던 냄비밥의 씁쓸함을 표정에 아로새긴채 AS센터로 갔다.

따지려면 시간이 필요하기에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는 치밀함까지 선보여주고선

문을 여는 순간 몇 명의 손님들이 밥솥을 찾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입니다”라고 이름을 대니 물먹은 밥솥이 나왔고 수리비 이야기를 하기에 사람들앞에서 따져 물었다.

 

“아니 어떻게 밥솥이 연달아 세 번씩이나 고장이 납니까.

지금까지 밥솥 고치러 왔다간 시간과 밥 못해먹은 것에 대해 누가 책임질 겁니까.

오늘까지 수리비만 8만원돈입니다.”,

 

 버티고 서있으니 직접 수리한 젊은 남자직원이 나와서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

결론적으로 부속품 3개는 다른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수리비가 들 수밖에 없고

그것은 AS센터에서 사입하는 것이기에 자신도 어쩔수 없다고.

 

옆에서 밥솥을 수리하고 가는 할아버지,

“그 돈이면 차라리 하나 사는데 낫겠네”라고 불을 지핀다.

3번 수리하고 다시 고장나지 않으란 보장이 없는 상태,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그 밥솥회사 고객센터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마찬가지로 ‘죄송한데 자신들이 별다른 도리가 없다’고.

고객센터에 “절대 이대로 물러나지 않는다. 홈페이지와 인터넷에 관련 내용에 대해 항의하겠다”라고 엄포를 놓고는

AS센터에 밥솥을 두고 나와버렸다.

24000원이 아까워서라면 수리비를 내고 찾아올 수도 있었지만 단돈 천원이라도 책임 있는 회사라면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집에 돌아오니 ‘왜 밥솥은 두고 왔냐’는 얼굴의 아내에게 “우리 새로 밥솥을 삽시다”라고 말했다.

아내도 자초지종을 듣고 약간 화가 났는지 원인제공을 하신 장모님께

 

"집에 있는 밥솥, 제주로 빨리 보내줘, 엄마. 우리 며칠째 밥도 제대로 못해먹고 있어"

 

라고 긴급타전을 날린다.

 밥솥을 안 찾아온 것이 못내 미안해 등을 돌린 채 김치볶음밥을 치열하게 볶는데 아내의 목소리,

 

“시어머님이 결혼선물로 준 고가의 압력밥솥을 사돈이 고장을 냈으니 어쩌냐”.

 

피식 웃음이 난다.

 그리고 AS센터에서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 ‘수리비를 안받을 테니 찾아가라고. 죄송하다고’.

아내는 우리 남편대단하다고 칭찬을 했지만 언제 고장날지 모르는 밥솥을 또 찾으러 가야하나,

그 때는 또 어떻게 화를 내어야 하나 걱정이다.

 

하지만 ‘화안내고 따지기’미션에 성공했으니 나 또한 제대로된 주부가 되어가는듯하다.    

 

<보란듯이 AS센터 직원앞에서 밥솥사진을 찍었다. 새해엔 할말 다 하고 사는 한해가 됩시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시면 새해 첫날 뽀뇨가족의 나들이 영상이 나옵니다. 서울이 설국이된날, 제주는?

 밥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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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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