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쓰레기 분리수거대에서 또 인형을 주워왔다.
없으면 없는 데로 쓰면 되는데 왜 아내는 아이 장난감을 주워올까?
1년에 5만원을 주면 얼마든지 장난감을 빌릴 수 있는 도서관에도 가입이 되어 있고
여기저기서 지인들이 보내오는 옷이며 장난감도 많은데 말이다.
사실 아이를 낳고 나서 우리 부부가 구매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첫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크면 몇 개월 못 쓰고 동생을 주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줄 것이라는 생각에
정말 아무것도 사질 않았다.
한번은 뽀뇨를 낳고 나서 일산에 있는 아는 형에게
엄청난 양의 땅콩기저귀와 옷, 여러 가지 물품등을 받은 적이 있다.
너무 고마워서 한라봉 한박스를 보냈는데
이 형이 강화도의 어떤 주소를 알려주며 돈을 줄테니 거기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알고보니 일산의 형은 강화도의 지인 집에서 아이옷을 물려받고 있었는데
우리처럼 고마움의 표시를 한라봉으로 했던 것이다.
강화도의 어떤 집은 또 대전의 누구에게 받은 것이라고 하니
뽀뇨가 애기 때 입은 옷은 대전, 강화도, 일산을 거쳐 제주까지 왔다.
가히 전국적인 대물림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아끼고 나누고 바꿔쓰고 다시쓰는 '아나바다'정신은
환경도 살리고 자원도 재활용한다는 점에서 좋기는 한데
누가 썼는지도 알 수 없는 때 묻은 인형까지 가져올 필요가 있나 싶다.
옆구리가 터져 솜이 삐져나온 인형 두 개를 집에 가져온 아내.
점심을 먹으며 나머지 분리수거대에 있던 인형을 가져와야 될지 고민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들은 시어머니가 '얼른 가져오라'고 했다고..
헐. 가족이 어찌 이렇게 죽이 잘 맞는지.
세탁기에 넣고 빨아놓으니 마치 새것인양 색깔도 모양도 원상태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내와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데
쓰레기 분리대에 샛노란 물체가 보이는게 아닌가?
아내는 보자마자 "저거 올 때 뭔지 확인해보고 가져와야지" 하길래
"우리 동네가 부자동네도 아니구 같은 임대아파트 사는 사람들인데
괜찮은 물건이 나왔겠어요? 다른 사람 보는 눈도 있고 한데 이제 그만 가져옵시다"
점잖게 말을 하고 집에 돌아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려고 분리대 쪽으로 가는데
마침 샛노란 물체가 아직 거기에 있는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뽀뇨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완소 아이템, '실내 그네'였다.
왜 버렸는지, 뭐가 부서졌는지 상관없이 그네를 집어들었다.
경비실 아저씨가 보건 말건 누가 가져갈 세라 부리나케 집으로 향하는 아빠.
집에서 맞춰보니 안정장치도 빠져있고 한쪽 줄도 없다.
그런데도 마냥 좋아서 앉아서 노는 뽀뇨.
그리고 '남편도 별수 없다'는 듯 웃는 아내.
결국 다시 쓰레기 분리대로 향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아빠의 아줌마 근성이 탄로난듯하여 심히 씁쓸하다.
<망가진 그네에 앉아 귀여움을 한껏 발산하고 있는 뽀뇨>
*아래 사진을 누르시면 '전화 신동'뽀뇨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