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와 내가 언제부터 친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집과 집앞 놀이터, 무릉리만 오가던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 4살이니

아빠와 친구가 된 것도 아마 그쯤일 듯하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게 시작하였다.

아이와 놀기도 하고 책도 읽어주려다 보니 혀 짧은 소리를 내게 되었고

아이의 수준(?)에서 대화를 시작했다.

 

아무런 연고가 없이 제주에 내려오다보니 엄마아빠의 사회적 관계가 좁은 편인지라

아이가 만나는 관계들도 좁아지는 것이 신경 쓰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농촌마을에서 나이든 어른들과 만나는 것이 아이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아내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것도 이때였던 것 같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36개월 동안 아이를 돌보았고

그 이후에야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가까이 지내는 또래 친구가 별로 없이 36개월을 부모와 함께 보내고

동생이 생기지 않으면 얼마나 외로울까라는 생각에 나는 어린 딸의 친구가 되었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첫째는 드디어 내게 “아빠는 왜 아이처럼 말해?”라는 피드백을 주었다.

“아빠는 원래 이렇게 말해”라고 성의없는(?) 대답을 했고 그 이후 첫째는 나를 ‘개구쟁이 아빠’로 생각하는 것같다.

 

‘친구처럼 대하기’가 얼마나 장점이 많은지는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심심해서 같이 놀고 이야기하고 약속하고 함께 장난감을 치운다.

잠자리에 드는 것을 빼고는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다.

다만 단점이 하나 있으니..

 

친구처럼 대하기가 ‘아빠 놀리기’나 ‘아빠 괴롭히기’로 발전하는 경우다.

아내와는 서로 존대를 하지만 아이와는 서로 반말을 하다보니
“야, 너 그러면 어떻게해”라며 언성을 높이기 일쑤다.

주로 밥상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아내가 “아빠에게 ‘야’, ‘너’라고 하면 어떻게해”라고 아이를 혼낸다.

그러면 첫째의 입이 삐죽 나온다.

다른 사람이 있으면 서로 곤란할 상황이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다.

아이가 버릇 나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아이와 친구로 지내서 더 좋은 점이 아직은 많다.
친구로 지내며 서로 조심스레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감정에 솔직하고 표현에 서투른 아이이기에 당연한 것 아닐까.

매번 첫째를 혼내고 남편을 혼내지 않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 있기는 하다.

요즘 첫째가 여섯 살이 되다보니 활동이 많아졌다.

몸무게도 제법 나가서 안으면 무거울 정도가 되었다.

 

“아빠, 심심해”라고 격하게 안기거나 어깨위로 올라타거나 등 뒤에서 목을 조른다.

 

 “뽀뇨, 아빠 힘들어”라는 대사의 빈도수가 잦아지고 “홍해솔”이라고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어제는 첫째 옆에 누워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언제쯤 친구사이를 졸업하게 될까’라고.

곧 2살인 둘째가 세 살이 되면 자연스레 친구가 될 것이고

나또한 ‘친구모드’에서 ‘친구같은 아빠모드’로 조금은 변모해 있지 않을까.

막상 졸업을 하려니 동심의 세계에서 졸업하는 듯한 서운한 감정도 들지만

언제까지 ‘피터팬’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일.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조기졸업’하게 되면 아직 두 살인 둘째가 ‘친구사이’ 아빠를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

뭐 어쩌겠는가, 둘째 하나의 운명인 것을.

 

<4살 딸아이에 이끌려 성산일출봉에 올라 찰칵. 친구사이 인증사진 ㅋ>

뽀뇨와 성산에 오르다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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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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