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어. 꼭 거기서 만나.”
뽀뇨는 유노에게 스카이방방에서 만나자고 대답했지만 몇 시인지 정하지 않았고 마침 유노의 아빠가 말레이시아에 가는 통에 만날 수가 없었다. 다음 한 주 내내 뽀뇨는 나를 괴롭혔고 나는 마지못해 연락한 유노 아빠에게서 다음 달에 만나자는 연락만 받은 것이다. 뽀뇨는 유노가 왜 좋았을까? 좋은 데는 이유가 없겠지만 난 궁금했다. 친구 중에는 뽀뇨가 한때 좋아하던 성구도 있고 이웃 견우도 있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또 한 달이 무심히 흘러 우린 서귀진성에 놀러갔다. 당연히 유노 아빠에게 “형, 오늘 유노 꼭 데려 와야 해요. 뽀뇨가 기다리니까”라고 이야기를 해두었다. 내게 그 한 달은 무심했지만 뽀뇨에겐 그 한 달이 참으로 길었을 것이다. 지난 달 서귀진성에서 만나고 한 주 동안 뽀뇨는 어린이집에서 같은 반 친구였던, 당시 존재감이 없었던 유노의 어린이집 시절 율동영상을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복해서 지겹게도 보았다. 그러니 얼마나 유노가 보고 싶었을까.
 
우리는 오전에 도착하여 숨겨둔 보물도 찾으며 놀았는데 유노는 오후가 되어서야 아빠와 나타났다. 유노가 올 줄 알고 나는 뽀뇨 옆에 의자를 대령해 둘이 한 달 만에 만나 데면데면 하지 않게 배려해주었다. 근데 기껏 한 달 만에 데려왔더니 둘이 눈치를 보며 따로따로 놀며 쉽게 친해지지 않았다. 그게 부끄러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관심이 식은 건지 내 입장에서는 알 수가 없었다. 오후 4시가 끝날 무렵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 때 뽀뇨가 내게 마음을 내비쳤다.
 
“아빠, 나 유노집에 놀러가고 싶어.” 
 
참 신기한 게 평소에 ‘누구누구 남자 아이 하고 왜 같이 안 놀아’라고 물으면 ‘걘 남자잖아. 난 여자구’하며 선을 긋던 뽀뇨였다. 그런데 먼저 집으로 놀러가고 싶다니.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지난번에 유노가 ‘너 나 좋아하지?’라고 뽀뇨에게 물었대요. 그런데 뽀뇨가 ‘응’이라고 대답했대.  여자 마음을 그렇게 쉽게 보여주면 안 되는데.”
 
내가 잘 모르지만 어쨌든 어린이집 같은 반이었던 뽀뇨와 유노 사이에 특별한 감정교환이 있었던 것 같다. 이번 달 만남에선 “우리 다음 주말에 스카이방방에서 만나”라고 애프터를 신청하지 않고 그냥 다음 달 서귀진성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이들의 로맨스를 돕는 아빠들이라니…, 뭐 그것도 나쁘지 않다. 우리는 일요일 오후의 평화로운 일상을 즐길 수 있으니. 뽀뇨의 로맨스로 마무리 하나 했는데 이번엔 갑자기 유현이가 끼어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아빠, 미카엘라.”
“미.카.엘.라?”
 
나는 그 이름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으나 유현이가 부른 그 이름이 워낙에 달콤하여 눈치를 채고 물어보았다. “유현이, 그 누나 좋아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누나 좋아하는 거 엄마에게 얘기해도 돼?” “응.” 나는 아내에게 얘기하고 반응을 살폈다. 아내는 놀란 눈치였다.
 
역시나 유현이에게 왜 미카엘라 누나를 좋아하는지 물었다. 뭐라 뭐라 또박또박 이야기를 했으나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미카엘라 이야기로 유현이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고 아내의 눈치를 살필 수 있으며 우리 가족의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된 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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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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