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를 빼버릴까?

 

연이틀 밤중에 깨서 아이와 전투아닌 전투를 치르다보니 아침에 든 생각이다.

사연은 이러하다. 뽀뇨는 가로로 잠을 잘 때가 많다. 자다 깨서 다시 세로로 가지런히 눕혀놓는데도

다시 가로로 잠을 자게 된다. 세로로 된 침대인데 4살 아이가 가로로 자면 함께 자는 부모도 방향을 비스듬히 누워야 한다.

그 정도 불편은 감수를 하겠는데 아이가 자다가 발에 무엇인가 닿다보니 발로 차게 되는데 임신을 한 엄마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아내가 자다가 뽀뇨 발에 차이게 되면 본인도 본인이거니와 혹시나 뱃속에 아이한테 영향이 있을까봐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뽀뇨, 엄마가 발로 차지 말라 그랬지”.

 

바닥에 자고 있던 내가

 

“우리, 자리 바꿔서 자요”

 

하고 침대로 올라가는데 이 틈에 잠을 깬 뽀뇨가 울기 시작한다.

어찌어찌 침대에 자리 잡았는데 아이 발길질에 눈탱이를 맞다보니 눈에 번갯불이 번쩍.

안되겠다 싶어서

 

“뽀뇨, 발로 차지 말라고 했지”

 

하며 오른손으로 다리 쪽을 때렸는데 뽀뇨가 아팠는지 발로 차지는 않고 울기만 한다.

 

자는 밤중에 아이가 어떤가 싶어서 우선 불을 켜고 실눈을 뜨고 보는데

뽀뇨도 아빠가 무서웠는지 한참을 얼굴을 돌리고 울고 있다가 살며시 나를 쳐다 보았다.

‘발로 차는 것이 얼마나 아빠, 엄마를 아프게 하는지 직접 느끼게 해줘야 돼’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빠도 ‘사람’인지라 ‘‘펑’소리만 나게 때렸어야 되는데 너무 쎄게 때린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잠을 뒤척인다.

 

‘회초리를 절대 들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긴 했지만

아이가 점점 성장하다보니 발길질, 주먹질, 머리카락 움켜쥐기 등등 애교와 장난을 넘어

이제 슬슬 격투기가 되어간다.

‘자기방어’를 위해 비슷한 수준으로 ‘심한 장난으로 되돌려주기’도 하지만

가끔 잠결에 당하는 발길질에는 솔직히 인내가 바닥이 된다.

 

문제는 다음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다운되는데

 아이를 너무 쎄게 때린 것에 대한 죄책감과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까하는 난감함,

아이가 아빠를 무서워하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나를 엄습한다.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 대한 폭력’에 부들부들 떨고 그 부모들을 비판하게 되는데

어제밤에는 아이의 다리를 내리치는 내 손마디의 힘과 근육에 나도 놀라버렸다.

순간 패닉상태로 빠지게 되었는데 아이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때리는 강도 그 이상으로 부모가 상처를 받는구나’라고.

 

아이를 다른 방에 재워야 하는 건가, 아니면 잠을 재우고 나서 일을 해야 되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침대자체를 없애서 방안의 공간을 넓혀야 하는건가 이런 저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괜시리 작은 아파트와 작은 침대에 사는 우리 가족의 처지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과연 어떤 해결책이 임신한 아내와 몸부림이 심한 아이,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아빠에게 편안한 잠을 선물해줄까?

 

오늘 아침에는 아빠 머릿속이 패닉상태라 엄마 혼자 뽀뇨를 어린이집에 배웅했다.

이따가 저녁에는 엄마 없이 아빠 혼자 뽀뇨를 맞이해야 하는데 어제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떻게든 수습을 해볼 생각이다.

 

 “뽀뇨, 아빠가 어젯 밤에 세게 때려서 미안해. 뽀뇨가 편하게 잠 잘 수 있도록 아빠가 엄마랑 얘기해서 방법을 찾아볼게”

 

<무등을 태우고 걷다>

회전_무등.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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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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