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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읽게 되었다.

"생리컵이 더러운가요?"라는 제목의 글이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의 집에 예비 신랑이 찾아왔다가 싱크대 위에 올려져있던 생리컵을 보게 된다. 이게 뮈냐고 묻는 예비 신랑에게 여자는 용도와 기능을 설명한 후 끓는 물에 소독해서 말리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인다. 남자는 갑자기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한다.

"너는 이런 물건을 몸 속에 넣느냐? 네 몸은 아무 것이나 넣는 곳이냐?"고.

 

여자가 "생리컵은 이상한 물건이 아니야.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매우 편리하게 잘 쓰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남자는 더욱 펄펄 뛰며 이런 물건을 몸 속에 넣는 것이 정상인지 아닌지 자기 엄마에게 가서 한 번 물어보자고 했단다. 여자는 그러기 싫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남자는 "너도 사실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시어머니한테 물어보기 싫은 것 아니냐"며 공격한다. 남자는 이어서 "이렇게 더러운 물건을 소독한 냄비에는 이물질이 묻을 수 도 있는데 불쾌하고 찝찝하다. 더이상 쓰지 말라"고 화를 낸다.

 

온 가족이 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우선 아들에게 "이 글 속에 나오는 남자의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또라이같은데요"

열다섯 살 아들은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어떤면에서?"

"아, 생리를 지가 하나..."

"윤정아, 너는 어때?"

"생리컵을 쓰던 안 쓰던 그건 생리하는 여자 마음이잖아요. 그걸 남자가 쓰지 말라고 하면 안되죠"

"생리컵이 뭔데요, 엄마?"

이 와중에 여덟 살 막내가 묻는다.


"생리혈을 받아내는 조그만 컵이야. 말랑말랑한 고무같은 걸로 만드는데, 몸에 쏙 들어가서 자궁벽이 흘러내리는 걸 그 안에 모아줘. 생리혈이 다 차면 작은 손잡이 같은 것을 잡아 당겨서 몸 밖으로 빼낸 다음 물로 헹궈서 다시 쓰거나 끓는 물에 소독해서 계속 사용할 수 있지"

"와, 신기하다"

"자, 아까 이야기하던 내용으로 돌아가면 필규 표현이 정확히 맞아. 생리라는 건 여자들이 겪는 큰 사건이고 중요한 일이야. 10대 후반부터 시작해서 최소한 40년 이상을 매달 며칠씩 겪어내는 큰 일이지. 생리를 어떻게 경험하느냐는 여자의 몸과 마음에 많은 영향을 미쳐. 일상 생활에도..그래서 어떤 생리대를 사용할것인지, 내 몸에 잘 맞고, 편하고, 내 생활과 가치관에도 맞는 생리도구를 찾는 일도 중요하고... 그 것을 전적으로 생리를 하는 여자가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문제야. 가족이나 친구들이 조언을 하거나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결정권은 여자에게 있는거지. 엄마는 오랫동안 펄프 생리대를 썼어. 할머니도, 이모들도 다 그걸 쓰고 있었으니까 엄마도 사용했지. 그때는 다른 방법은 없는 줄 알았어. 그런데 펄프 생리대를 쓰는 동안 엄마는 자주 염증이 생겼고, 가려움증 때문에 고생했어. 나중에 어른이 되고나서 펄프 생리대를 만드는 과정에 수십 가지의 화학약품이 들어가고 그게 엄마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천 생리대를 쓰기 시작했어.

그런데 놀랍게도 그 후로 염증과 가려움증이 싹 사라졌지. 지금까지 천 생리대를 쓰고 있지만 너무 좋아.세탁하기가 번거롭긴 해도 돈도 안 들고, 쓰레기도 안 만들고, 무엇보다 몸에 좋으니까 대 만족이지. 그 예비신랑의 말 속에는 많은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들이 들어 있어.

 

첫째는 '생리는 더럽다'는 생각이다.

생리혈은 몸 속에서 나오는 피야. 절대 더러운 이물질이 아니야. 만약 수정이 되었다면 내 아이의 바탕이 되었을 수 도 있는 건데 더러울리가 있나.엄마가 읽은 책 속의 어느 호주 원시부족은 여자의 생리혈을 가죽 주머니에 모았다가 찐득하게 굳어지면 다친 상처에 바르는 특별한 약으로 쓰기도 한대. 생리혈을 신성하고 귀하게 여긴다는거지. 생리혈을 감춰야 하고, 더럽고 냄새나는 것으로 만든 것은 생리대를 만들어내는 자본들이 전략이었어. 그래야 여자들이 비싼 돈을 주고 냄새도 안 나게 하고 생리혈도 감쪽같이 흡수하는 생리대를 구입할테니까..남자들은 여려서부터 그런 광고들을 같이 보며 자라니까 생리가 불결하고, 생리혈이 더럽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거야. 집에서도 아들들에게는 생리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쳐 주지 않으니까..


엄마가 윤정이, 이룸이 뿐만 아니라 남자인 오빠에게 생리에 대해 설명해주고 생리대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해 주는 것은 니가 생리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야 니가 만날 파트너에 대해서 더 잘 배려해 줄 수 있기 때문이야. 또 하나는 "너는 거기에 아무거나 넣는 여자냐"라고 비난하는 대목인데.. 엄마는 이 말에서 "네 질은 내 성기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내 성기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들어갈 수 없다"라는 뜻이 읽혀졌어.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내 여자의 몸 속에 내가 모르는 물건인 삽입된다는 것에 대한 불쾌감인데 말하자면 여자의 질이 자기의 소유인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은거야.


생리컵에 대해서 잘 모를수도 있고, 낮설거나 이상해보일 수는 있어. 그런 마음을 파트너에게 표현할 수 도 있고.. 그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러나 딱 거기까지지. 모르면 물어보고, 이상하면 설명을 듣고, 낮설어도 받아들이려고 노력 해야하는 문제지 왜 이런 걸 쓰느냐, 더럽다, 이상하다, 쓰지 말아라 하며 비난하고 화낼 문제는 절대 아니거든.

 

그것은 여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 자체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를 드러내는 말들이고, 여자의 몸에 대한 결정과 선택의 역사에 대한 관심보다 자기의 불쾌감이 더 중요하다는 의도를 드러내는 표현이야. 게다가 시어머니한테 가서 물어보자니.. 다 큰 성인이  생리도구로 기저귀를 쓰든, 생리컵을 쓰든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을 가지고 시어머니한테 가서 물어보자는 말은 정말 그 남자의 사고방식의 수준을 의심하게 하는 제안이거든"


"그런 사람하고는 결혼 안 하는게 낫겠어요"

"그러게... 결국 그 예비신부는 결혼을 취소했다고 하더라. 남자가 생리컵에 대해서 잘 모르는 건 당연하고 이상하거나 기분 나쁘게 여길 수도 있는 문제를 가지고 결혼까지 취소하는 건 말도 안된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신뢰'라는 것은 크고 중요한 계기들로 쌓여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아주 작고 사소한 결들일 모여저 다져지는 거거든. 이 사람의 판단, 가치관, 신념, 행동들의 수많은 결들 가운데에 자연스럽게 쌓여가는 건데, 한 인격의 가장 밑바탕인

'나'를 돌보고 보살피는 노력과 행동을 부정당하게 되면 전체가 다 흔들려버리지 않을까? 아마 그 여자는 남자의 행동에서 그런 균열을 느꼈을거야. 그래서 취소했겠지."


"엄마는 10년 전에 생리컵을 사용해본적이 있어. 이웃이 권해줘서..그런데 그때는 주변에서 생리컵을 쓰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엄마가 받은 생리컵이 엄마 몸에 잘 맞지 않아서 한 번 써보고 돌려줬는데 이번에 생리대 유해물질로 큰 사회문제가 되면서 수많은 여자들이 안전한 생리컵을 쓰게 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어. 그래서 마침내 국가에서 정식으로 안전한 생리컵을 수입하게 되었대. 물론 10년간 제품도 훨씬 더 나아졌겠지. 엄마도 판매가 되면 주문해보려고.."

"엄마, 우리한테도 보여주세요. 전 꼭 보고 싶어요"

"물론이지. 같이 보고, 만져도 보고, 엄마가 써 본 다음에 어떤지 얘기도 해 줄게. 윤정이는 내년에 열두살이 되니까 언제든 생리를 시작할 수 있어. 엄마가 천 생리대를 잘 준비해 두었다가 도와주겠지만 생리컵을 써 보고 싶으면 써보면 돼. 뭐든 니 몸에 잘 맞고, 편한 것으로 쓰면 되는거야. "


"생리는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감출 일도 아니고, 더러운 일은 더더욱 아니야. 그래서 엄마가 생리하는 것을 너희들한테 감추지 않고, 너희들 보는 앞에서 생리대를 빨아 널잖아. 다른 사람들한테야 보일 필요가 없지만 가족들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서로 챙겨주면 되지. 다음에는 생리컵을 직접 보면서 얘기해보자."

 

오늘 수다는 여기서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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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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