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Christian Fregnan)
여성이라는 존재의 특별함을 본격적으로 인식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갔을 때였다. 내 첫 직장은 은행이었는데, 우리 기수에는 남녀 비율이 1 대 4 정도로 여자가 월등히 많았다. 그러나 신입 행원 연수를 갔을 때 우리를 가르친 ‘교수님(실은 선배 행원들인)’들은 모두 남자였고, 우리를 인솔한 교관이나 각 팀의 리더, 연수의 책임자들도 모두 남자였다. 연수 도중 유난히 총명한 눈빛을 발하던 여자 동기 하나가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왜 저희를 가르치는 분들이 모두 남자인가요?” 그 말을 들은 교수는 당황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여기 계시는 여성 행원들이 훌륭하게 성장하여 나중에 이 자리에 교수로 서시라”고 답했다. 이후로 나는 여러 직장을 전전했고, 어느 곳에서나 낮은 직급이거나 단순노동으로 분류되는 자리는 여자가, 대표성을 띠거나 고위직으로 보이는 자리는 남자가 차지하는 장면을 당연한 일인 양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비단 회사나 일반 사회조직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직장에 다니던 어느 해 여름,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템플 스테이에 3박 4일로 참여했던 적이 있다. 강원도 깊은 산골에 있는 단아한 절에 들어섰을 때,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젊은 남자 스님이 우리를 맞았다. 수행을 주관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해주실 담당 스님이었다. ‘속세의 때가 묻지 않았다는 말은 이런 사람을 보고 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맑은 눈과 선한 미소를 지닌 스님이셨는데, 설법 도중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다. “돈하고 여자를 조심해야 해. 항상 그 두 가지가 문제야.”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저는 여자인데요? 어떻게 여자가 여자를 조심해요?’ 설법 중간에는 여자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고, 참가자 대다수가 여자인데도(총 인원 열다섯 명 중 열 명이 여자였다) 주어를 남자로 설정한 천편일률적인 설법은 3박 4일 내내 한결같이 이어졌다. 스테이를 마친 뒤 고속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그 눈빛이 맑은 스님의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눈앞에 수많은 여자들이 앉아 있는데 그들을 향해 여자를 조심하라는 말을 그렇게 여러 번 하면서 단 한 번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게… 어떻게 가능하지? 내가 그 스님이었다면 가능했을까? 눈앞에 수많은 남자들이 앉아 있는데 그들을 향해 설법을 하면서 돈과 남자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이 물음에 답이 될 만한 안이 한 가지 있으니, 여자는 너무 투명해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나 투명해서, 그게 너무나 자명하고 익숙해서, 누구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 이를 깨닫게 되자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던 뉴스 속 언어나 생활 규범, 서사 속 인물들이 얼마나 남성 위주로 짜여 있는지를 인식하게 되었다. 내 안에도 당연한 듯 ‘사람’을 ‘남자’로 가정하는 경향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도.
그런 인식은 평화롭던 내 일상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그때까지 제도권 교육에서 배웠던 지식들이 근저에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커다랗게 한 무리를 이루었던 주위 사람들이 갑자기 두 갈래로 나뉘며 범접할 수 없는 위화감을 형성했다. 한쪽 성에 속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인식하며 고통과 혼란 사이를 거칠게 통과해가면서, 나는 여성을 화두로 하는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문화’에서 나온 <새로 쓰는 성 이야기>, <새로 쓰는 사랑 이야기>, <새로 쓰는 결혼 이야기> 등을 읽으며 그동안 당연시 했던 세상의 모습이 하나하나 깨져나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관습들이 깨지면서 그 저변에 놓인 인류의 카르텔과 정면으로 맞닥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