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뒷좌석에 앉은 민호가 물었다.
“아빠는 어떤 차가 제일 좋아?”
 아이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뜬금없다 란 의미를 배운다. 아이는 아무때나, 예고없이, 어느 순간, 갑자기 툭, 물어보고 싶은 걸 물어본다. 아이들이 길을 걷다가 문득 작은 자갈 하나를 풀숲에 던지는 것처럼 민호도 내 귓가에 대고 질문 하나를 ‘툭’ 던지곤 했다. 뜬금없는 질문엔 그냥 순순히 대답하는 게 아빠 정신 건강에 좋았다. 질문을 한 의도를 묻거나 그 질문이 왜 지금 생각났느냐고 물어보는 건 뜬금없는 질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아빠는 지금 이 차가 제일 좋은데.”
 “왜?”
 “민호랑 추억을 간직하고 있으니까.”

 

 대답을 해 놓고 으쓱했다. 먼저 아빠는 돈보다는 추억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걸 그렇게 드러냈다. 아빠는 또 민호와 추억이 다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는 의미를 전했으니 아이도 따뜻한 기분을 느낄 것만 같았다.
 “그런 거 말고.”
아이는 착각에 빠진 아빠를 깨웠다.
 “아빠는 어떤 차가 제일 좋냐구?”
 민호는 책에서 본 듯한 문장을 정답처럼 내놓으며 으시대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으라는 투로 다시 물었다. 비싼 차를 사지 못하는 현실을 고상한 생각으로 덮으려고 했던 아빠의 숨은 의도를 아이가 알아차린 것도 같았다.
 “글쎄.”
 

그래도 한편으로는 진심이기도 했다. 지금 이 차는 오랫동안 아이와 나의 발이 되어주었고 추억을 담는 장소를 찾아 함께 동행해 준 고마운 차였다. 아빠의 심정을 몰라주는 아이가 야속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빠의 심정을 드러내기에 아홉 살은 너무 어렸다. 대신 답답함을 담아 아이에게 물었다.
 “민호한테 좋은 차 기준이 뭔데?”
 “새 발자국 같은 거.”
새 발자국. 아이는 좋은 자동차의 기준을 새 발자국이라고 했다. 그것도 새도 아니고 새 발자국이었다. 이야기는 미궁으로 빠졌다. 아이의 대답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이번에는 아빠가 새 취급을 받을 것만 같았다. 새 발자국과 자동차. 새 발자국과 자동차. 아 모르겠다. 그냥 솔직하게 물었다.
 
“민호야, 미안한데 아빠가 새 발자국 자동차가 뭔지 잘 모르겠거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아빠만 모르는 양 아이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진짜 몰라? 이제 아이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 나이가 먹어도 아는 게 없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말한 차는 맨 앞에 동그라미가 있어. 동그라미. 그리고 그 동그라미 안에 새 발자국이 있어. 동그라미 안 새 발자국. 이젠 어떤 차인지 아빠 알겠어?”
 아이 말을 자세히 들어보니 아이는 독일 자동차 ‘벤츠’를 가리켰다. 벤츠라는 단어를 알지 못하는 아이는 벤츠를 새 발자국이라고 설명했던 셈이었다.

 

 순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추억을 간직한 차라고 말한 고상한 아빠는 온데 간데 없었다. 아이가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면 일단 부모는 그동안 아이에게 잘못한 행동이나 언어는 없었는지를 살핀다. 평소에 나도 모르게 벤츠라는 말을 아이에게 한 적이 있었는지, 혹시 나도 모르게 외제차가 지나가면 고개를 돌리고 쳐다봤는지를 살펴봤다. 아직 열 살도 안 된 아이에게 어느새 좋음의 기준이 비싼 물건이나 상표가 되었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웠다.

 벤츠.jpg

 ( 사진 자료 : Pixabay )

 

 그러고보면 아이를 키우면서 ‘돈’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최근 1년 전부터였다. 시작이란 말은 그 이전과 그 이후를 구분짓는다. 아이를 키우기 전에 난 부끄럽게도 인터넷 뱅킹조차 할 줄 몰랐다. 생활비에 아이 교육비까지는 괜찮았는데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학비 부담이 컸다. 심리학에서 어른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어른은 부모의 품을 떠나 ‘물리적인 독립’을 해야 하고 두 번째 조건으로는 ‘경제적으로 독립’을 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심리적 독립’을 했을 때 비로소 홀로 서는 어른이 된다고 했다. 부모님께  용돈을 챙겨야 할 나이에 대학원을 다닌다며 경제적인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도 이젠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니까.

 

 기자 생활을 할 때면 돈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이기적일 것만 같았고, 자기뿐이 모를 것 같았으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는 귀를 닫고, 어렵고 힘든 서민들에게서는 눈을 돌리는 사람들일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보니 가계부를 들여다보지 않거나 아이 학원비나 각종 세금과 보험료가 얼마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만이 세상 걱정을 하는 사람들일 것만 같았고, 남을 생각하지만 가족은 돌보지 않는 사람 같았으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엔 귀를 열면서 정작 가족들과 대화 시간엔 귀를 닫을 사람들일 것만 같았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혼자서 돈을 벌다보니 40년 가까이 무심했던 돈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필요성을 인정하는 순간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 욕심도 함께 생겨났다.

 

 돈 생각을 하기 시작한 내 모습과 추억이 담긴 차가 소중하다는 말 사이에는 간격이 컸다. 으쓱했던 내 어깨는 당혹감으로 짓눌렸다. 아이의 새발자국 말 한 마디에 오래된 물건을 좋아하고 차가운 숫자보다는 따뜻한 언어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아빠는 더 이상 없고 돈 걱정 가득한 아빠로 남은 느낌이었다. 내 기분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아이와 대화를 의도적으로 붙여 나갔다.

 “민호는 새 발자국 자동차가 왜 좋아?”
 “새 발자국 자동차는 비싸니까.”
 “민호는 비싼 자동차가 좋은 자동차인 거야?”
 “비싸면 좋은 거지.”
 

 아이는 부모 가슴에 어떻게 비수를 꽂는지 잘 안다. 아이의 말은 막힘이 없었다. 맑고 청량한 목소리로 비싼 물건이 좋은 물건이라고 한 아이의 말 앞에 다시 할 말을 잃었다. 이번엔 비싼 물건일수록 디자인과 품질이 좋은 물건이라는 아이의 말을 아빠도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 다른 질문 하나를 떠올려야만 했다. 상처받은 아빠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대화를 끝낼 수는 없었다.
 “민호야 그러면 아빠는 얼마야?”
 이번에는 잠깐 생각을 하다가 대답을 했다.
 “아빠는 빵 원.”
 그러더니 깔깔 웃어댔다. 아이가 부모를 난감하게 하는 방법을 아는 건 본능이다.

 

 어쩌면 아이의 지나가는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건 아이 생각때문이 아니라 최근 외제차를 타고 싶은 '공상'을 들킨 것 같아서였다. 차를 바꿀 시점이 되자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혼자서 자동차를 타는 공상을 하곤 했다. 살 수는 없어도 공상은 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다른 남자들보다 마트를 자주 가면서 여러 물건들을 볼 기회가 많았던 탓에 물건을 보면서 어느새 물건과 물건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여러 새 물건을 사고 싶은 욕망도 점점 차올랐다. ‘난 나이기’보다 멋진 자동차를 타는 나를 상상했는지도 모르겠다. ‘난 나이기’보다 멋진 가방을 맨 나를 상상했을 수도 있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은 나를 떠올렸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난 나로서 인정하기보다 눈에 익은 미술품을 거실에 걸어 놓은 나를 통해 세상에서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건 아닌지 되돌아 봤다. ‘인간은 거울 앞에 선 자신을 보지 못하고 쇼윈도 진열장 안에 선 자신을 본다’고 한 보드리야르의 말이 최근 나를 설명하는 듯 했다.

 

 자신의 내면이 공허한 사람은 물건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상표는 나를 대신하지 못한다. 자신의 본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발에 자동차 브랜드를 신기고, 자신의 손에는 시계의 브랜드를 차고, 자신의 피부엔 옷 상표를 걸친다. 물건을 통해 자신을 남들과 구분짓고 우월할 수 있다는 착각은 오히려 자신이 자신을 어둡고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들어 돈 욕심이 생기고 새 물건을 사려고 했던 나의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선 혹시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따져봐야 했다.

 새발자국이란 단어가 문득문득 생각나 나를 괴롭힐 즈음 아이가 1학년 때 아프리카 한 아이에게 보낸 편지를 우연히 읽었다.

 

루푸타에게,

루푸타야 숯을 만드느라 힘들지? 열심히 일한 돈으로 학교에 다녀. 그리고 숯이 잘 팔리기를 기도할게. 힘든 일도 익숙해져서 쉽게 팔면 좋겠어. 할머니도 한 달에 3만원씩 보내고 있어. 그러니 힘을 내. 파이팅~
나도 커서 한 달에 3만원씩 아프리카에 보내줄게. 너도 커서 꼭 운전사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해봐. 나도 돈을 막 쓰지 않고 저축해서 많이 모으면 보내줄게. 너네 어머니 아버지도 좋은 직장을 구해 돈을 잘 벌었으면 좋겠어. 하루라도 빨리 잘 사는 대륙으로 이사해서 잘 살기를 나도 원해. 많이 덥기도 하고 춥기도 하지? 나는 과천시 부림동 주공아파트 000동000호에 살아. 먹을 것도 별로 많이 없지? 손도 까지고 발도 아프다며 그러니 나도 가슴이 뭉클해져. 그러니 제발 이런 글은 보내주지마~ 알았지. 내가 나한테 재미없는 장난감 보내줄게.

 

관문초등학교 1학년 4반 41번 이름 강민호.

민호 편지.jpg

 

아프리카 한 소년에게 자신이 마음 아프니 속상한 편지를 보내지 말라는 민호의 글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마 당시 민호는 3만 원이란 돈의 가치를 알기보다는 할머니가 기부하는 액수에 맞춰 기부금액을 정했을 것만 같았다. 특히 날씨가 나쁘지 않느냐는 질문과 배고프지 않느냐는 물음에선 상대를 헤아리려는 맑은 마음을 느낄 수있었다. 저축을 많이 해서 가난한 아프리카 친구에게 보내주겠다는 문장을 읽으며 ‘새 발자국’ 자동차로 인한 걱정은 조금씩 누그러졌다.

 

언젠가 민호가 이 글을 읽으며 3만 원을 기부한다는 문장 속에서 '3만 원'이란 돈보다 '기부하겠다'던 자신의 마음의 크기를 읽었으면 좋겠다. '많은 돈을 보내줄게' 라는 말 속에서 ‘많은 돈’이라는 구절보다 ‘보내줄게’라는 서술어 속에서 자신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아프리카 친구의 부모가 돈을 잘 벌기를 바란다는 문장 속에선 상대를 생각하는 따뜻함을 느끼면서 자신을 다독였으면 좋겠다. 민호가 가난하게 살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돈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한 사람과 그 사람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사람으로 크기를 바랐다. 그런 아이를 키우기 위해 아빠부터 겉으로 들어난 상표나 돈의 크기에 잠시 흔들렸던 자신을 되돌아보고 살폈다. 그러면서 상품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 글이나 내 목소리나 내 생각이나 내 느낌을 통해 나를 드러내자고 다짐했다.

 

오늘 4호선 지하철 역에서 여름에 지낼 신발 하나를 만 원에 사며 아이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새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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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만들고 다듬느라 35년을 흘려보냈다. 아내와 사별하고 나니 수식어에 가려진 내 이름이 보였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기자 생활을 접고 아이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미뤄둔 사랑의 의미도 찾고 싶었다. 경험만으로는 그 의미를 찾을 자신이 없어 마흔에 상담심리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금 꼭 안아줄 것' '나의 안부를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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