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 시험이 있던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물었다. 결과가 궁금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아니더라도 수행평가라는 이름으로 간단한 시험은 때때로 학교에서 이뤄졌다. 아이에게 질문을 해보니 질문은 상대를 향해 내 궁금증을 해소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시험을 보는 날엔 특히 더 그랬다. 질문을 하고 보니 그 질문 안엔 확인하고 싶은 나의 궁금증이 가득했다. 아이가 지적으로 잘 발달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었고, 하고 싶은 일 때문에 아이 숙제를 잘 돌보지 못한 것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질문이기도 했다. 그 질문은 건강이나 친구관계뿐만 아니라, 성적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빠의 모습도 담겨 있었다.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여러 명의 아이들을 만나며 배운 건 일등이나 꼴등이나 아이들은 모두 시험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성적을 간과할 만큼 용기는 없었다. 시험을 어떻게 보았니? 라는 질문 앞엔 네 성적이 아빠는 궁금한데 란 말이 생략돼 있었다.

 

아빠가 궁금해 하는 질문을 들은 아이가 오히려 아빠에게 물었다. 문제 하나를 틀렸다는 고백과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설명. 그 설명은 자신이 왜 틀렸느냐는 항의가 담긴 질문이었다. 아이가  책가방에서 시험지 한 장을 꺼냈다. 자신이 맞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듯했고 이해하지 못하는 걸 알고 싶어하는 생각도 있었을 테다. 문제를 같이 들여다봤다. 민호는 ‘다음 중 나머지와 다른 수를 고르라’는 문제에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다. 보기를 하나씩 살펴봤다. 첫 번째 보기엔 ‘예순아홉’이라고 쓰여 있었다. 두 번째 보기엔 ‘70보다 1큰 수’라고 나와있었다. 그러니까 1번은 69를 가리켰고 2번은 71이었다. 벌써 서로 다른 수가 나온 셈이었다. 세 번째 보기엔 ‘79보다 10 작은수’라고 적혀 있었다. 79보다 10이 작으면 69이니 답은 71을 가리키는 2번이었다. 나머지 보기도 살펴봤다. 4번 보기는 ‘68과 70사이의 수’라고 적혀 있었고 5 번은 ‘10개씩 6묶음과 낱개 9개인 수’였라고 적혀 있었다. 2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숫자 69를 가리켰다.

 

 민호가 물었다.
“아빠 내 답이 왜 틀려?”
“뭐라고 썼는데?”
“ 1번은 ‘예순아홉’이니까 69지”
“응”
“2번은 ‘70보다 1큰 수’라고 했으니까 71이지?”
“응”
“3번은 ‘79에서 10 작은 수’니까69, 맞지?”
“응”
“4번과 5번도 69야.”
“맞는데?”
“그런데 내가 틀렸대.”
“뭐라고 답을 썼는데?”
“71”

 

아이는 스스로 질문하고 설명을 했는데 아이 말 중에서 오류를 찾을 수 없었다. 아이의 시험지를 다시 들여다봤다. 민호는 객관식으로 답을 해야 할 빈 칸에 71이라고 썼다. 정답은 ‘2번’이었는데 숫자 ’71’을 적어 놓았다. 객관식으로 적어야 할 답을 주관식 서술형으로 적어 놓고선 자신이 쓴 답이 왜 틀렸는지 아이는 궁금해 했다. 아이가 써 놓은 숫자 ‘71’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자신이 왜 틀렸느냐 며 따지며 묻는 아이의 얼굴은 귀엽기까지 했다.

 시험지.jpg

  질문을 하는 아이의 모습은 심리학 수업을 하며 물었던 나의 모습과 겹쳤다. 지난 가을 내내 상대의 감정을 알아차리기 위한 실습수업 시간에 자주 했던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주는 관심과 칭찬에 둔감한 이유가 궁금하다는 물음에 교수님은 쉽게 답을 해주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몇 차례나 같은 질문을 되풀이 했지만,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던 답은 ‘스스로 찾아보라’는 말이었다. 그 질문은 지난해 가을에서 겨울을 넘길 때까지 계속되었고 봄이 되어서야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간직했던 질문과 시간이 걸려 찾았던 답은 가슴 깊이 남았다.

 

 아이가 질문을 할 때면 빨리 답을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쩌면 빨리 끝내야 할 설거지처럼 아이의 질문을 대할 때 나타났다. 설거지를 빨리 마쳐야 내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아이의 질문에 빨리 답을 해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아이의 질문에 빨리 답을 하게 한다. 아이가 궁금한 건 무엇인지 아이의 마음과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선 내 할 일을 멈추고 내 생각을 멈춰야 했다.
답을 말하는 것 대신 아이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민호야, 다른 문제에 답한 거하고 너가 틀린 답하고는 뭐가 다르니?”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스스로 답을 내놓기를 바라며 아이의 질문을 다시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질문으로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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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만들고 다듬느라 35년을 흘려보냈다. 아내와 사별하고 나니 수식어에 가려진 내 이름이 보였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기자 생활을 접고 아이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미뤄둔 사랑의 의미도 찾고 싶었다. 경험만으로는 그 의미를 찾을 자신이 없어 마흔에 상담심리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금 꼭 안아줄 것' '나의 안부를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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