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이의 입학.jpg 

 

3월 3일, 둘째 윤정이가 입학했다.

마흔 다섯살의 나이에 다시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가 된 것이다.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혹여나 나이들어 보일까봐 옷 입는 것 부터 신경쓰였던

입학식이었지만 딸은 내 조바심을 모두 날려버릴만큼 의젓하게 입학식을 치루었다.

 

먼저 입학했던 오빠를 따라 수없이 와 본 학교인탓에 도서관이 어디인지

화장실이 어딘지 익숙하고,  좋아하는 동네 언니들이 많이 다니는 터라

학교 안에서도 익숙한 얼굴들을 만날 수 있으니 긴장보다는 설렘이 더 많았다.

4년만에 다시 아이의 입학을 마주하는 우리 부부의 감회는 남달랐다.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 아이 손을 잡고 들어섰던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아들을 지켜보며 마음고생을 하다가 2년 만에 그 아이 손을 잡고 학교를 나왔던

일이 여전히 생생한 것이다.

공부를 잘 하기보다 학교를 좋아해주기를 바랬을 뿐인데 아들에겐 그것이 어려웠다.

아들은 결국 대안학교를 찾아갔지만 딸 만큼은 제도권 학교에 잘 적응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다행스럽게 딸은 유치원을 안 다닌 만큼 학교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남달랐다.

입학을 손꼽아 기다렸고, 긴장보다는 신나는 마음으로 입학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첫 아이를 교실에 들여보내 놓고 안절부절하는 초보 엄마들 사이에서

나는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으로 즐거워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6학년 언니들에게 사탕 목걸이도 받고, 학교에서 준비한 입학 선물도 받으면서

딸은 신나게 입학을 즐겼다.

 

그리고 다음날 드디어 첫 등교였다.

큰 아이 대안학교는 등교시간이 늦어서 이제껏 다른 엄마들에 비해

게으른 아침 시간을 보냈던 나도 새로운 리듬에 맞추어 부지런해져야 했다.

등교시간이 빠른 둘째를 위해 한 시간 정도 더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리고

둘째를 먼저 차로 학교까지 데려다 준 다음 다시 집으로 와서 첫째를

내보내야 했다.

딸아이의 긴 머리를 매일 매만져주는 일도 큰 일이 되었다.

첫 등교날은 나도 꽤 긴장을 해서 일찍 일어났고  딸아이는 깨우자마자

벌떡 일어나 씻고 옷을 입었다. 12년째 아침이면 더 자려는 아들을 깨우는

일로 지쳐있던 내게 짜증없이 바로 일어나 씻으러 가는 딸아의 모습은

선물같았다.

 

밥도 먹이고, 머리도 빗기고 모든 준비를 다 끝낸후에도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나는 흐믓한 마음으로

'첫날부터 지각하는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 앞으로 매일 이렇게 여유있게

준비하자?' 딸 아이를 격려했는데 학교에 데려다 주려는 순간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자동차 키가 안 보이는 것이다. 늘 두는 곳과 있을만한 데를 다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차로 5분 정도 가면 되는 곳이라 여유를 부리고 있었는데 등교시간이 가까와오도록

키가 보이지 않자 나는 세 아이를 다그쳐가며 온 집안을 뒤져야 했다.

결국 등교시간 10분을 남기고  둘째와 막내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버스라고는 한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우리 마을에서 택시도 없고,

근처에 도움을 받을 이웃도 없는 상황에 걸어가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그동안 엄마를 따라 많이 걸어본 아이들이라 씩씩하게 길을 나섰다.

 

여덟살, 다섯살 두 아이 손을 잡고 비장한 표정으로 걸었다.

저수지를 따라 논과 밭을 지나는 길엔 이른 아침에 걷는 사람이 없었다.

엄마가 서두르니 어린 딸들은 뛰다시피 하며 걸어야 했다.

저수지를 지나서 포도밭을 지나서 퇴비를 쌓아놓은 비닐하우스를 지나려니

'아니, 이 길을 애들하고 걸어서 학교에 가요?' 하며 할아버지 한 분이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물으셨다.

우리가 사는 윗동네에서 아랫동네 학교까지 걸어 다니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서둘러 걷는 우리 뒤로 동네 강아지들 네 마리가 따라왔다.

아이들이 뛰니 강아지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달려왔다.

집을 나선지 30분만에 아이를 교실에 들여 보낼 수 있었다.

잊지못할 첫 등교였다.

 

 

 윤정이의 입학 2.jpg  

 

나는 교문앞에서 파김치가 되어 9시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난데없이 혼자 등교 준비를 해야 했던 아들은 나와 이룸이가 내린 그 버스에 올라 학교에 갔다.

그리고 나서야 막내와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자동차 키는 전날 입었던 웃옷 주머니에서 발견되었다. 늘 두는 의자에 걸어 두었는데

아침엔 왜 안보인건지, 당황하면 시야가 좁아진다는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렇게 덜렁대면서  아침마다 두 아이를 각기 다른  시간에 다른 학교로 다른 준비물을 챙겨

보낼 일이 까마득하다.

힘은 더 들겠지만 늦게 낳은 아이들 덕분에 늙을 새가 없으니 이것도 복이겠지.

막내는 내 나이 오십에 초등학교를 보내야 하니 늙는 것은 고사하고 어디가서

회춘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바쁘고 고단하고 정신없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당분간 새로운 리듬에 익숙해지려면 고생은 하겠지만 학교를 좋아하고

스스로 준비할 줄 아는 딸과 경험할 새날들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5학년 첫째와 1학년 둘째, 그리고 하루 반나절은 엄마와 둘이 지낼 다섯살 막내도

모두 모두 힘내서 새학기, 잘 지내보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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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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