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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코 앞이다.

1년 중 내 스트레스 치수가 최대치로 상승하는 기간이다.

12년째 겪고 있지만 설을 지내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나이가 들어 저질체력이 더 심해진 탓이려나..


무려 4박5일을 강릉 시댁에서 지내고 오기 위해서는 

떠나기 전부터 준비해야 할 일들이 어마어마하다.

우선 무엇보다도 빨래를 잔뜩 해야 한다. 

다섯 식구가 5일을 지낼 옷 가방을 싸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자주 입는 옷들과 꼭 가져가야 할 옷 등을 

미리 세탁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필 이룸이가 한 이틀을 장염을 앓느라

버려놓은 옷들이 많아서 세탁은 더 늘어났다.

겨울이라 빨리 마르지도 않는 빨래들을 잔뜩 해 놓고 그 다음엔

다섯 개의 옷 가방을 싸야 한다.

겨울 옷은 두껍기 때문에 아무리 줄여도 한 사람당 옷 가방이 하나다.

그나마 막내가 다섯살이 되어서 옷에 실례를 하는 일이 줄어서 큰 다행이다.

더 어릴때는 갈아입을 옷까지 챙겨야 해서 짐이 더 컸다.


내복, 속옷, 겉 옷, 설에 큰 댁에 갈때 입을 반반한 옷 (이 옷들은 옷걸이에 걸어

따로 보관해서 실어 가야 한다), 한창 힘이 넘치는 큰 아들이 옷을 더럽힐 것을 대비해서 

바지같은 것도 넉넉히 챙겨야 한다. 신발도 한 켤레씩 더 챙겨야할 지 고민이다. 

만약 바다에라도 가게 되면 분명 파도에 신발을 적실것이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옷 가방만 해도 한 짐이다. 식구들 선물에 과일 상자도 하나 넣어야 하니

32만 킬로를 뛴 남편의 낡은 9인승 차도 늘 비좁다.


빨래를 하면서 부지런히 집도 치워야 한다.  냉장고도 비워야 하고, 쓰레기들도 내가야 하고, 

돌아와서 힘들지 않을만큼 집안도 정리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엄마의 스트레스엔 상관없이 떠나는 그 순간까지 집을 어지르겠지.


마당도 손 봐야 한다. 담이 없는 우리집이니 나와있는 세간살이들도 적지않아서

모두들 어딘가에 잘 치워둬야 하고 수북히 쌓여 있는 개똥도 치워야 한다.

마침 올 설엔 날이 춥지 않다하니 땅이 녹았을때에 개똥무더기며 이런 저런

지저분한 것들을 말끔히 정리해 놓고 가야 한다.


세 마리 개들과 열 마리 닭들 건사가 가장 큰 일이다.

매일 얼지 않은 물과 사료를 주어야 하는데 

늘 부탁하던 앞집 할머니가 이사간 후로는

부탁할 이웃이 마땅치 않다. 

친정 엄마도 한 번 쯤은 들려주시겠다고 했지만

설엔 친정 자매들도 한번씩 들리는 터라 시간 내시기가 쉽지 않으실 것이다.

닭장은 물이며 사료외에도 알도 꺼내줘야 한다. 

집안에서 키우는 물고기들과 잉꼬새 한 쌍도 있구나.. 

잉꼬새야 물과 사료를 수북히 넣어 주고 간다고 쳐도 물고기들은 어쩌나..

정말 어쩌자고 이렇게 집안에 목숨붙이들이 많은 것일까. 어흑..

집을 비울때는 이것들이 신경쓰여 멀리 여행도 못 갈 판이다.


두 딸들은 통에 더운 물 받아 목욕도 시켜야 하고, 머리도 감겨서 가야 한다.

(할머니 집에서는 절대 머리를 안 감는다. 게다가 시댁은 목욕탕 하나로

매번 열 네명의 식구들이 몸을 씻어야 하니 늘 간단하게 씻고 나오기도

벅차다) 떠나는 날 오전은 애 셋 씻기는  일로도 허리가 휘겠다.


이렇게 할 일이 많은데도 써야 할 글들도 있다. 하하.

정말 일 복이 터지는구나.


오랜만에 식구들을 만나서 만두를 빚고, 세배를 하고, 제사를 모시고,

웃고 이야기하는거야 즐겁지만 매 끼니마다 열 네명이 먹을 음식을 차리고

치우는 일은 해도 해도 고되고, 밤마다 식구들이 벗어 놓은 빨래를 해야 하는 것도

고스란히 며느리의 몫이다. 

명절에 시댁에만 가면 걸리는 며느리성 변비도 있다. 

생전 변비라고는 모르고 사는 나도 

화장실 하나를 열네명의 식구들과 사용하다보면 변비가 안 걸릴 수 없다.

변의가 왔을때 화장실이 비어있을 확률을 기다리다 못해 지난번 시댁에 갔을땐

시댁 근처 도서관에서도 볼일을 봤고, 강릉 시청에 아버님 모시고 갔다가

시청 화장실에서 큰 일을 해결하기도 했다. 

끼니때마다 나오는 기름진 음식이며, 내 생체리듬과 전혀 상관없는 새 리듬으로

5일간을 살아야 하는 것과, 그 5일 내내 집안에 있는 시간엔 항상 켜 있는

텔레비젼 소리를 견뎌야 하는 것도 내겐 힘든 일이다.


산소에 오르고 친인척 집을 방문해서 새해 인사를 올리다보면 설 하루가

고되게 지나리라.


그래도 아파트 옆동에 있는 할머니 집에 가는 설날보다 

대관령 넘어 멀리 멀리 가는 할아버지 집이 있으니 내 아이들의 유년시절은 복되구나.

바다도 보고, 산도 보고, 새로운 풍경과 경치를 만날 수 있으니

질박한 강원도 사투리를 들어가며 집안의 어르신들을 만나면

1년동안 애들 많이 키웠다고 덕담들을 들려주실 것이다.


그러니 힘을 내야지.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미리 챙기시고

애써줄 형님과 동서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노력해보자.


설날이다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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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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