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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를 떠나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온 후 아이들이 마딱뜨리게 된 것 중의

하나가 '죽음'이었다.

아이들과 죽음은 언뜻 관계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죽음은 어디나 있고

특히 자연속에선 매일 매순간 수없는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

 

여름내 울던 매미가 어느순간 말갛게 말라서 나무 아래 떨어져 있다거나

비  지나가고 해 나온 길가엔 어김없이 말라죽어가는 지렁이들을 보는 일은

너무나 흔했다.

어찌된 일인지 날개가 찢긴채 죽어 있는 잠자리나 살아있는 것 처럼 날개를

활짝 펴고 죽어 있는 나비를 보는 일도 있고 호박벌이나 말벌이 죽어 있는

것을 보는 일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죽는 곤충말고도 집에서 키우는 닭이 이웃집 개에게 물려 죽기도  했고

갓 태어난 병아리가 며칠만에 물통에 빠져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이웃집 개가 낳은 새끼들이 얼어 죽은 슬픈 광경을 본 일도 있다.

우리집에서 키우던 동물들이 죽었을때에는 처음엔 놀라고 슬퍼서 어쩔줄 몰랐지만

슬픈 감정이 가라앉은 후에는 좋은 곳을 골라 정성껏 묻어주며 진심을 담아

이별하는 법을 경험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강아지를 얻어 정을 듬뿍 주며 키우다가 5개월만에 급성 장염으로

죽었을때는 온 가족이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었다.

그러나 흰 천으로 개의 몸을 잘 싸서 동네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볕 잘 드는 윗밭에

묻고 아이들이 흙을 덮어주면서 우린 큰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사랑하던 생명을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형식과 예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배울 수 있었다.

 

저녁무렵 아이들과 언덕 아래 식당근처를 지나가다가 화단 돌틈 사이에

오색딱따구리 한마리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쩌다 이런곳에 이렇게 죽어 있게 된 걸까.

딱따구리 소리가 들리는 집이어서 좋다고 했던 아이들은 무척이나 맘 아파 했다.

길가나 집 근처에서 죽어 있는 새를 발견하게 되면 아이들과 나는 꼭 잘 수습해서

묻어 주곤 했었다. 이번에도 누가 먼저랄 것 도 없이 아이들은 주변에 떨어져 있던

광고지로 죽은 새를 잘 싸서 집으로 가져왔다.

 

새무덤만들기.jpg

 

잠시 묻을 곳을 의논하다가 뒷 밭으로 가기로 했다.

필규가 앞장서고 죽은 새는 이룸이가 소꼽 쟁반에 받쳐 들고 갔다.

 

언젠가 오색딱따구리가 앉아 있던 뒷밭 감나무 아래에 묻기로 했다.

필규가 모종삽으로 땅을 팠다.

죽은 새의 몸을 어림잡아 뼘을 재보고 넉넉하게 구덩이를 팠다.

목이 꺾이거나 구겨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새무덤 만들기4.jpg

 

구덩이를 다 판 다음에는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들을 꺾어 구덩이 바닥에 깔았다.

그 위에 딱따구리를 놓고 이룸이가 주워온 목련꽃잎들 몇 장을 겹쳐 목을 바쳐준 후

남은 꽃잎으로 몸을 잘 감싸주었다.

하얗고 큰 목련꽃잎들은 마치 비단 이불처럼 곱게 딱따구리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나서 흙을 덮었다.

 

새무덤 만들기2.jpg

 

작은 돌맹이를 주워와 무덤주변을 둥그렇게 표시하고 나서 나뭇가지를 꺽어

무덤 모양대로 땅에 꽂기 시작했다.

 

"그렇게 까지 할 필요 있어? 그냥 돌맹이 몇개만 놔도 표시는 되지 않을까"

"엄마, 오색딱따구리는 천연기념물이잖아요. 그것에 걸맞는 장례를 치뤄 줘야지요.

예의를 갖추어줘야 한다구요."

정색을 하고 말하는 아들앞에서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렇구나.. 귀한 생명을 묻어주는 일은 그에 맞는 정성과 예의가 필요하구나.

 

저물어가는 봄날 어스름속에서 아이들은 찬 바람도 아랑곳 않고 꽤 오랜 시간을

들여 나뭇가지로 무덤을 장식하더니 필규는  담벼락에 붙어 있는 담쟁이

덩굴을 조금 뜯어내 나뭇가지 두개를 십자 모양으로 엮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든 나무 십자가를 무덩 가운데 세워 주었다.

 

"이룸아, 꽃 좀 구해와봐. 무덤엔 꽃이 있어야지"

이룸이는 오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란 꽃다지 꽃 몇 줄기를 꺾어 왔다.

필규는 머위밭으로 가서 꽃다발처럼 소담하게 피어 있는 머위꽃을

꺽어 십자가 아래 놓아 두었다.

 

새무덤.jpg

 

오색딱따구리가 묻힌 무덤은 소박한 나무 십자가와 꽃들로 경건하고  아름답게 마무리

되었다.

 

"딱따구리가 좋아하겠다. 자기가 앉아 있던 감나무 아래에 묻혔고 무덤을 이렇게

곱게 꾸며주었으니...."

 

"이제 들어가자요"

 

아이들은 모종삽을 챙겨서 뒷밭을 떠났다.

저녁을 먹고 씻고 누운 다음에도 나는 오래 오래 죽은 딱따구리 장례에 마음과

정성을 쏟던 아이들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죽어가는 생명을 볼 때마다  마음아파하고, 죽어버린 생명을 잘 수습해서 묻어주는

일을 아이들은 지난 4년간 수없이 해 오고 있다. 처음처럼 크게 슬퍼하고

놀라는 일은 줄었지만, 대신 차분하게 좋은 장례를 치뤄주는 일에 마음을

모으게 되었다.

 

묻을 장소를 정하고, 땅을 파서 묻어주고 그 위를 때로는 돌맹이나 나뭇가지로

덮어주고 매번 그 계절에 피어 있는 꽃으로 장식을 해 주었다.

아끼던 개 '해태'의 무덤에는 윤정이가 감자꽃을 올려 주었지..

암탉 무덤에는 민들레꽃과 감꽃 목걸이가 놓이기도 했다.

어떤 죽음이든 잘 가라고 인사도 해주고 한마디씩 하고 싶은 말들을

꺼내곤 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배우게 된 것은 가슴 아픈 이별일수록 정성을 들인

장례와 이별의 의식이 꼭 필요하고 잘 떠나보내면 마음의 상처도

잘 아문다는 것이었다.

 

하물며 기르던 가축이나 자연속에서 만나는 곤충, 새들의 죽음도 이럴진대

목숨같은 자식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아직도  그 죽음이 조롱이 되고, 비난이 되고,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을

볼때마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그 슬픔과 비통함을 위로받을 수 있는

진실된 장례와 이별을 하지 못하고 있는 부모들이 떠오른다.

큰 슬픔일수록 큰 예의와 정성이 담긴 이별이 필요하다.

제대로, 잘 떠나보내야 상처입은 마음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다.

 

새 봄엔 무엇보다 그날의 죽음에 대한 깊은 애도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딱따구리를 묻어주며 죽음에 대한 예의를 생각해 보는 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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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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