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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큰 손님을 치루었다.

양주에 살고 있는 큰 조카가 제 친구 열 다섯명을 데리고 우리집에서 1박 2일 나들이를 다녀간것이다.

고2인 큰 조카 현기는 고등학교에 들어가 만난 친구들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 친구들과 함께

이모네 집에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주말에 참여할 수 있는 친구들을 모으니 열다섯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나는 기꺼이 이 제안을 반겼다.

내 아이나 다름없는 친정 조카들인데다 큰 아이 필규에게 요즘 가장 필요한 존재는 바로

멋지게 잘 크는 형들이었기 때문이다. 남편도 돕겠다고 했다.

친구 열다섯에 조카 둘, 말같이 먹어대는 사내 아이만 열일곱명이 오게 되었다. 나를 돕기 위하여 쌍둥이

자매도 이 여정에 함께 하기로 했다. 우리 식구까지 총 스물세명이 주말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

마당 있는 집에 이사와서 5년째 수없는 손님들을 치루었지만 이번 모임은 그중 최고가 될 듯 했다.

 

열 여덟살, 다 큰 사내아이들 열 열 여섯명을 재우기 위해서 겨울 내내 먼지만 쌓여있던 2층을

말끔히 치우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평소에 먼지와 짐만 쌓여 있던 곳을 정리해서 쓸고

닦느라 이틀을 꼬박 매달렸다.

이부자리 챙기고 1층도 구석 구석 치우고, 주방을 정리하고나니 이사를 한 번 더 한 것 마냥

힘이 들었다. 덕분에 2층에 아주 넓고 근사한 공간이 생겼다. 제대로 치우고보니 멋진 공간이었다.

 

쌍둥이는 작은 차에 가득 장 본 음식과 기타 준비물들을 싣고 운전해서 먼저 도착하고

두 조카와 친구들은 양주역에서 모여 전철로 대야미까지 와서 우리가 '짜장로드'라고 부르는

산길을 걸어 도착했다.

 

후드티를 눌러쓴 키 큰 사내아이들 열 여섯명이 들어서는 모습은 마치 조직의 큰 형님 댁을

찾아온 행동대원들 같이 보여서 웃음이 났다. 막상 만나고 보니 발랄한 소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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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다 짐을 던져둔 아이들은 여기 저기 흩어져 마음대로 즐기기 시작했다.

일부는 남편에게 도끼질을 배워 장작 패는 일에 도전하기도 했는데 성공할때마다

지켜보던 친구들은 "와'"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를 보내주었다. 골프선수를

응원하는 갤러리들 같았다.

 

몇 몇 덩치 큰 아이들은 힘이 너무 세서 산책도 잘 못 시키는 우리집 큰 개 두 마리를

번갈아 산책줄에 매어 저수지를 한바퀴씩 달리기도 했다.

윤정이와 이룸이를 귀여워 해주는 오빠들은 2층 베란다에 있는 트렘폴린위에서

두 아이를 안고 재미나게 뛰어 주기도 하고, 들고 온 스피커 볼륨을 크게 해서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가며 마당 여기 저기를 어슬렁 거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쉬거나, 일을 돕거나, 개와 놀거나, 어린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어떤 일을 해도 좋았다.

 

아이들은 명랑하고 밝았다. 아직 큰 아이가 열 세살인 내게 열 여덟살 사내아이들은

낮설 수 도 있었는데 겪어보니 여전히 귀엽고, 재미있고, 듬직한 아이들이었다.

성적이 반에서 꼴찌를 맴도는 아이도 있고, 2년 후면 대학은 커녕 군대를 먼저 갈지도

모르는 아이도 있었지만 공부 잘 하는 조카가 이렇게 다양한 아이들 모두와 친구가 되어

서로 좋아하고 아끼며 지낸다는 것이 참 대견하고 흐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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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명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제일 큰 일이었지만 다행히 식당을 하고 있다는

조카 친구의 부모가 고기를 넉넉히 보내 주었다.

남편이 아이들 두어명과 함께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고, 나와 쌍둥이는 밥과 반찬을

장만하고, 나르고 차리는 것은 모든 아이들이 도우니 착착 준비가 되었다. 

3월의 저녁 바람은 아직 싸늘했지만 모처럼 참나무 장작불에 구운 고기는 기막히게

맛이 있었고 먹성 좋은 아이들은 10인용 밥솥으로 세번 지은 어마어마한 밥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몰려온 오빠들 덕에 윤정이와 이룸이도 내내 즐겁고 신이났다.

 

저녁상을 치운 후에는 마당에 커다란 모닥불을 피웠다. 아이들은 불가에서

음악을 듣고, 떠들고, 이야기를 하면서 밤 늦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층을 통째로 내어주니 어른들 눈치 볼 것 없이 떠들고 놀 수 있었고

아무데나 뒹굴며 쉴 수 있었다.

아이들은 게임을 하면서 신나게 놀다가 음료수를 사러 한 시간을 걸어

시내에 다녀오기도 했다.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해도 싫다는 것이다.

그냥 인적 드문 시골의 밤 길을 걸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마음, 이해할 수 있다. 어둠속으로 즐겁게 몰려간 아이들은 한 시간 쯤 후에

양 손 가득 음료수를 들고 땀을 흘리며 나타났다.

오빠들을 따라갔던 윤정이도 신나는 모험을 즐긴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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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아이들은 일찍 일어났다.

수탉우는 소리때문에 늦잠을 잘 수 도 없다고 귀여운 투정을 하던 녀석들 중 몇은

아침도 먹기 전에 또 다시 개를 데리고 산책을 떠나고 다른 아이들은 번갈아 큰 상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하루를 같이 지내고 보니 모두가 다 내 아이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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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다시 뒹굴며 놀던 아이들은 2층을 말끔히 치우고 이부자리를 정리해 1층으로

날라주고 나서 분리배출 할 쓰레기 봉투들까지 챙겨 정오 무렵 씩씩하게 걸어 역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마당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그새 오빠들과 정이 든 우리집 세아이들은

너무나 아쉬워했다.

 

중간고사 끝나면 다시 오라고, 앵두가 익을때 꼭 놀러 오라고, 언제든 오고 싶으면 와도 된다고

가는 아이들에게 일러 주었다. 아이들은 불러주시면 꼭 다시 오겠노라며 남편과 내게

깍듯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 언덕길을 내려갔다.

 

중2들도 무섭고, 고등학생들은 더 험하다는 말들이 넘쳐나지만 내가 만난 아이들은 하나같이

이쁘고 밝았다.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넓은 마당과 기대와 설레임으로 도전할 수 있는

약간의 모험들과 그리고 이 아이들을 따듯하게 지켜봐주는 부모가 아닌 어른들이다.

넓은 자연의 품이 있고, 감정을 나눌 동물들이 있고, 함께 할 친구들과 그냥 신나게

놀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고, 애정으로 돌봐주는 어른들이 있다면 난폭해질 아이들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공부와 성적으로 힘든 아이들일 수 록 가끔씩이라도 모든 것을 다 잊고 즐겁게 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 공간이 없으니 pc방이나 술집, 노래방들을 기웃거리게 된다.

 

내 집은 아니지만 지금 나는 큰 집을 얻어 살고 있고 넓은 마당도 있다.

개와 닭들도 있고, 도끼와 장작과 호미와 삽도 있다. 손님에게 내어줄 수 있는 큰 방도 있고

푸성귀들이 자라는 텃밭도 있으니 가끔은 이 모든 것을 마당과 모험과 휴식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꺼이 내 놓는 것이 마땅하다.

 

예전에 마을 공동체가 살아있던 시절에는 아이들이 혹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마을 안에 그 아이들을 거두는 다른 손길들이 있었다. 넉넉한 이웃 아줌마들과 이웃

삼촌들과 형들과 누이들이 있었다. 누군가 다르게 봐주는 시선들이 있었다.

아이를 키울 때 이런 존재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13년째 나는 겪고 있다.

서로 의지하고 보여주고 기대고 돕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 살고 싶었고, 그런 마을을

만들고 싶어 애쓰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런 이모가 되고, 그런 이웃이

되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마흔 여섯의 내 꿈은 손 큰 동네 이모다.

아파트에 살면서 마음껏 못 뛰어 노는 동네 아이들, 우리집에 불러 마음껏 놀게 하고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조카 친구들 불러 한 번 실컷 놀게 하고

살림과 세상살이에 지친 이웃들 불러 고기 한 점 구워 먹으며 세상 시름 잠시 잊게

하고 다시 힘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그런 이모 말이다.

 

언젠가 이 집을 떠나게 되면 지금처럼 손 크게 사람들을 부르고 재울 수 없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또 다른 것으로 나누면 될 것이고 일단 이 집에 사는 동안

내 집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즐겁고 편안하고 행복한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애쓰고 싶다.

남보다 크고, 남보다 좋은 집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맡아야 할 몫이다.

 

동네마다 편안하고 즐거운 집, 하나씩 있으면 좋겠다.

마음놓고 찾아가고 머물 수 있는 이모네 집 하나씩 있으면 참 좋겠다.

내가 작은 집게 살더라도,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가끔씩 이웃들을 부르고

소박한 음식도 나누며 내 아이처럼 옆 집 아이도 챙겨가며 사는 사람들이 늘어야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질 테니 말이다.

 

조카 친구들이 한 번 다녀갔고, 다음엔 큰 아이 반 친구들이 우리집에 오고 싶단다.

지난해 하룻밤 신나게 보냈던 기억이 즐거웠나보다.

스물세명도 치루었는데 큰 아이 반 친구는 고작 열 세명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 중에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라는 책이 있다.

뭐든지 손으로 다 빨아버리는 그 엄마는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좋아, 내게 맡겨!"

 

나도 그런 엄마가, 그런 이모가 되고 싶다.

즐겁고 행복하고 싶은 사람, 다 와!

내게 맡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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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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