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막 돌이 지났을 무렵, 목욕탕에 갔다가 생긴 일!!!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와 내가 단 둘이 탕에 들어앉아 있었다. 워낙 작은 탕이다 보니 자꾸 어색한 시선이 부딪혔고 결국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돌쟁이 엄마이며, 아직도 젖을 먹이고 있다고 했더니, 아주머니가 하신 말씀, “이제 젖 끊고 (몸매) 관리해야지... 남편이 바람 피면 어쩌려구!!!”



75cb1f339093681dabdf831433497cd4.아주머니의 진심 어린 충고(?)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자연스럽게 젖을 찾지 않을 때(두 돌 무렵)까지 젖을 먹였다. 심지어 수유를 시작하고 얼마 후부터 나는 노브라 차림의 원시적 삶을 살고 있다. (그 아주머니가 들었으면 펄쩍 뛰었을 노릇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수유간격 신경 안 쓰고, 아기가 원하는 대로 젖을 자주 물리다 보니 귀찮아서 아예 브래지어를 벗어버리게 됐는데, 그렇게 지내다보니 너무 편해서 적어도 집에서는 노브라로 지내게 됐다. 



나만 원시적인 게 아니다.  남편은 빤스 바람, 아기는 기저귀 바람. 에어콘 없는 우리집 여름 패션은 아주 가관이다. 그래서 갑자기 집에 손님이 오거나, 밖에 나갈 때는 옷을 챙겨 입느라 난리가 난다. 노브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아직 너그럽지 못한 지라 외출할 때는 꼭 챙겨 입는데, 깜빡깜빡 잘 하는 내가 혹시라도 까먹을까봐 나보다 더 불안해하는 남편이 수시로 복장점검(!)을 하곤 한다.



이렇게 완전무장(!)을 하고 나가면 꼭 사달이 난다. 1시간도 안돼(이 시간도 점점 단축되고 있는 상황^^) 명치 끝이 아프고, 끝내 체하거나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집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처음엔 그냥 평소에 안 하다 하니까 답답해서 그러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라 이제는 이 '브래지어'라는 존재를 한시도 못 참는 지경이 되고 말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심지어 자동차에 올라타면), 훌훌 벗어버려야 살 것 같다. 아… 이제 나는 영영 문화인(?)의 삶을 살기 어렵게 된 걸까?



노브라를 위한 괜찮은 변명, 아니 그럴 책임까지 생겼다. 언젠가 SBS 스페셜에서 브래지어 착용과 유방암 발생과의 상관 관계에 대한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브라와 유방암의 관계는 1995년 미국의 의학인류학자 시드니 로스 싱어와 그의 아내 소마 그리스마지어 (Singer & Griesmaijier)가 <Dressed to Kill(아주 죽여주는 옷차림->사람 잡는 옷차림)>이라는 책을 펴냄으로써 처음으로 공론화되었다. 이들은 유방암 병력이 있는 2056명의 여성과 건강한 여성 2674명의 브라 착용 습관을 인터뷰해서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하였다



- 하루 24시간 브라를 착용하는 사람은 유방암 발병율이 3/4이다.



- 하루 12시간 이상 브라를 착용하지만 잘 때 착용하지 않으면 유방암 발병율이 1/7이다.



- 하루 12시간 이하 브라를 착용할 때는 유방암 발병율이 1/152이다.



- 브라를 거의 착용하지 않거나 전혀 착용하지 않는 사람은 유방암 발병율이 1/168이다.



49f03f16498e4025ef8db990c0fe7341.이들의 연구 결과를 요약·정리하면, 24시간 브라를 착용하는 여성과 전혀 착용하지 않는 여성과의 유방암 발병율 차이는 125배나 된다. 브라를 착용할수록 유방암 발병율이 높아지는 가장 큰 이유는 브래지어가 임파액의 정상적인 흐름을 막기 때문이다.



여성은 걷거나 달릴 때 매걸음마다 가슴이 운동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움직이고 걷고 달릴 때 유방은 움직이면서 마사지되고 임파의 흐름이 증가하며 따라서 세포 대사에서 생기는 독소와 노폐물이 청소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유수유하는 여성이나 운동을 하는 여성들은 유방암 발병율이 낮다고 한다. 반면 경제적 지위가 높은 여성들은 유방암 발병율이 높은 데 그것은 이들이 저소득층 여성보다 브라 착용 기회가 많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넥타이와 브래지어는 오로지 미적인 이유로 목을 졸라매고, 가슴을 졸라매는, 인간에게 가장 쓸모 없는 물건 중에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쉽게 브래지어를 벗어 던질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나도 한때 그랬고, 가슴 모양이 미워질까 하는 염려 때문에 심지어 잠잘 때조차 착용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서양과 달리 노브라에 대해서도 관용적이지 못한 문화와 사회 정서도 걸림돌이다.



나 역시 다 벗어버리자고 얘기하지는 못한다. 다만, 우리는 유방암의 위험과 미적 자존심이라는 가치의 저울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브래지어를 완전히 벗어 던지기 힘들다면, 적어도 와이어는 피하는 것이 좋고, 잘 때만큼은 벗는 것이 좋지 않을까? 특히 아기를 낳고 수유할 때, 또는 요즘처럼 홑겹 옷도 거추장스러운 여름이 나이스 타이밍이다. 과감하게(?) 벗어던지자. 그리고 점점 용기가 생겨 노브라 차림으로 밖으로 나가고 싶다면 일회용반창고(단, 수유 중에는 권하지 않음), 가슴 부위에 프릴이 달리거나 주름이 잡힌 옷이나 레이어드룩을 권한다.



가슴이 늘어질까봐 걱정인가? 내 경험상, 나이가 들면서, 혹은 수유로 인한 영향은 좀 있지만,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아 가슴이 늘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리고 만약 영향이 조금 있으면 어떤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낮아질 뿐 아니라 건강에 좋다는데... 무엇보다 요즘처럼 후덥지근한 여름철에는 정말 시원하고 자유롭고 홀가분하다. 출산과 육아는 힘들고 어렵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삶의 지평을 넓혀주기도 한다. 아...이런 자유라도 없으면, 정말 더워 미치겠는 여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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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30대 중반, 뒤늦게 남편을 만났다. 덜컥 생긴 아기 덕분에 근사한 연애와 결혼식은 건너뛰고, 아이 아빠와 전격 육아공동체를 결성해 살고 있다. '부자 아빠=좋은 아빠', '육아=돈'이 되어버린 세상에 쥐뿔도 없으면서 아이를 만났고, 어쩔 수 없이 '돈 없이 아기 키우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엔 돈이 없어 선택한 가난한 육아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경험을 통해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몸의 본능적인 감각에 어렴풋이 눈을 뜨 고 있으며, 지구에 민폐를 덜 끼치는 생활, 마을공동체에 재미를 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이메일 : tomato_@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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