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엘이 초등학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학교에서 친구가 '너희 엄마 몇 살이야?'라고 물어서 답해 줬더니
그 아이가 대뜸, '그럼 너희 엄마 할머니네!'라고 말했다는 거다.

 

이를 전하며 씩씩거리는 다엘에게 얘기해 주었다.
"엄마가 나이 많아서 좋은 점도 많잖아?
바쁘지도 않고 너랑 같이 있는 시간도 많고.
내가 젊었을 땐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집에 왔거든.
성격도 지금보다 엄청 나빴어.
그러니 이렇게 늙어서 널 키우는 게 얼마나 좋아!"

 

자신의 속상한 마음에는 공감을 안 해주고
싱글거리는 엄마 탓에 다엘의 심기는 더욱 불편해졌다 .
이후 다엘은 엄마의 나이에 신경을 쓰면서
다른 엄마들에 비해 살날이 얼마 안 남았음을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학령기에 들어서면서 아이들은 구체적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모든 생명에는 끝이 있고,
이는 자신과 가족에게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란 것을 깨닫게 되면서
마음 속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불안을 피하게 하려고 대부분의 어른들은 죽음이란 주제를 감춘다.
한참 밝게 자라야 할 아이들에게 어둡고 불편한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장례식장에 데려가지 않는 것은 물론, 가까운 이의 죽음 소식을 쉬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돌아봐야 한다.

 

상황이 되어 그때 해결하면 된다고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심지어 자신의 애완동물의 죽음을 접하고 실신하는 아이도 있다.
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아동 성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될 때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으나 지금은 자연스레 자리잡은 것처럼,
죽음 교육도 초기의 저항을 뚫고 서구의 학교에서는 정착되는 추세이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 죽음교육은 아직 먼 남의 나라 이야기다.

 

다엘에게 읽어 주었던 책 중 죽음 관련 그림책과 동화들이 있다.
그 중 '다시 살아난 찌르'라는 그림책을 몇 년 전에 읽어준 적이 있다.
매미인 찌르가 주변 친구들이 알을 낳고 죽는 것을 보고 슬피 울다가,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들을 보면서 다시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는 내용이다.

 

찌르2.jpg

 

그림책을 읽고 나서 다엘이 물었다.
"우리도 알을 낳고 죽어?"
"아니야, 사람은 곤충보다 훨씬 오래 살고 생명이 다하면 죽게 돼."
"사람도 다시 살게 돼?"
"그렇지 않아. 우리 몸은 땅 속에서 없어지지만 다른 사람들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는 거야."
"그럼 지금 이 몸으로 살 수는 없는 거잖아."

 

안타까워하는 다엘의 말에 내 대답이 이어졌다.
"그렇지, 하지만 네가 엄마 아들인 건 영원히 변치 않아.
사랑했던 마음도 없어지지 않고..
우리 몸은 없어져도 다른 아름다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죽음에 대해 해소되지 않은 내 불안 탓에
나는 서두르며 장황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르면 부모가 설명을 늘어놓기 전에
아이가 말한 문장으로 다시 시작하거나,
아이의 생각을 먼저 말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부모가 지나치게 상세히 설명하지 말고 서서히, 나이에 걸맞게 말해 주면서
다른 문화권의 다양한 생각들도 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죽음에 관해 여러 질문을 하면
우리는 회피하거나 섣부른 설명을 하거나 황당한 얘기를 꾸며내곤 한다.
답변을 하기 전에 중요한 것은,
부모로서 나 자신이 죽음에 대해 질문하고 성찰할 용기를 가졌는가 하는 점이다.
덧붙여 어른들도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고백해야 한다.

 

나의 딸 민이가 30개월의 짧은 삶을 마치고 숨졌을 때
조카인 찬민이는 8살이었다.
당시 찬민이가 세상을 떠난 민이에게 보낸 편지 글을 그대로 옮겨본다.

 

민아! 안녕?! 그 동안 잘 있었니? 언니는 잘 있었어.
민이 언니 기억나? 언니 찬민이 언니야!
언니는 민이 꿈꾸고 있어....민이는 언니 꿈 꿔?
민아! 거기선 뭘 먹어? 맛있는 거 많아?
언니는 민이 보고 싶어....민이도 언니 보고 싶어?
민아! 사랑해...민이도 언니 사랑하지?
그럼 잘 있어 안녕!
2006년 8월 20일 사랑하는 언니가.

 

민이의 생명이 다하기 전까지 놀아주고
어른들의 애도 과정에도 함께 했던 찬민이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어른들과 달랐다.
민이에 대해 말할 때 같이 지냈던 기억을 늘 밝게 웃으며 얘기했고
숲 속 산책길에 주인 없는 무덤을 만났을 때는 그 앞에서 기도를 하기도 했다.
하늘나라에서 민이를 잘 대해주고 친하게 놀아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찬민이와 길을 가다가, 민이와 함께 산책하던 토끼풀 밭에 다다랐다.
내가 물었다.
"찬민아, 민이 잘 있을까?"
"응. 노할머니하고 하늘나라에서 잘 있대."
"어떻게 알아?"
내가 묻자 찬민이는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꼭꼭 눌렀다.
"여기서 말했어."

 

어떤 때는 자신의 손등을 휴대폰인 양 꾹 누르며
민이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뭐라고 왔냐고 묻자 찬민이는 천연덕스레 답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이렇게 왔어."

 

찬민이가 무심한 듯 했던 모든 말들이 나를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으나
한편으론 어떻게든 위로를 전하려 애썼을 어린 마음을 돌아보니
안쓰럽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죽음을 돌이킬 수 없는 어떤 것이라 인지하면서도
알 수 없는 다른 곳에 죽은 이가 존재한다고 찬민이는 믿고 있었다.
찬민이의 이런 소박한 믿음이 당시 내게는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어른들보다 살아온 세월이 짧은 아이들에게
역설적으로 죽음은 더 가깝고 자연스런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 나 놀고 올 동안 죽지 말고 있어!"

 

놀러 나가면서 현관에서 이렇게 말하는 다엘 덕에
나는 오늘도 오래 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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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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