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사회부적응자가 되어가는 거 같아!”



가끔 내가 하는 걱정이다.  갑자기는 아니고, 원래 그런 기미가 좀 있었다. 그런데 애 낳고 더 심해졌고, 훨씬 더 강력해졌다.



00e8c8fe3392115b1f3a100a1292b62a.일단 먹는 거! 밖에 나가서 먹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물론 절대 집에서 절대 구현할 수 없는 밖의 음식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도 있다. 예를 들어 학교 앞 떡볶이와 쫄면, 생맥주와 치킨, 커피와 와플 같은 밖의 음식들……. 그러나 대체로 밖에 음식은 간이 너무 강하고, 화학조미료 범벅에, 재료의 본질은 미궁 속으로 빠져 버린지 오래다.



사실 나는 경상도가 고향인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 짜고 맵게 먹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웬만한 음식은 내 입에 짜다. 싱겁게 먹기 시작한 건 모유수유 중에 매운 걸 먹으면 아기 똥꼬가 빨개진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다. 그러다가 아이와 함께 밥을 먹으면서부터 미각을 완전 재정비했다.



나는 이유식을 따로 만들지 않고, 아이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어른도 같이 먹자는 생각으로 밥상을 차린다. 이렇게 하면 따로 따로 차리지 않아 힘도 덜 들고, 오염된 어른들의 미각도 정화시키고, 밥을 같이 먹는 버릇을 들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조미료는 찬장에서 없어진지 오래되었고, 소금, 설탕도 가능한 적게 쓰고 원재료의 맛을 살리는 쪽으로 담백하게 요리하게 된다. 딸 아이가 김치의 맛을 알아버리기 얼마 전까지는 고추가루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간이 필요하면 된장이나 집간장으로 하고, 감칠 맛은 매실청, 조청 등을 사용한다. 집에서 이렇게 2년 이상 먹다보니, 정반대의 밖에 음식이 힘들어진 거다. (앗,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짜밥은 예외라능...ㅋㅋ) 



10885e2f6a6717e97e2d53d6034c9a9e.입는 것도 전혀 사회적이지 않다. 나는 옷차림을 상당히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다. 제대로 차려 입는다던가, 멋을 부린다는 말이 아니다. 아주 편하게, 가끔 너무 편해서 문제가 될 정도로 자기 중심적이고 자연인 같은 옷차림을 고수해오고 있다. 옷장에서 정장은 찾아볼 수 없고, 모두 티 쪼가리들만 가득하다. 가끔 엄마가 창피해한다.^^ 임신하면서 높은 뒤꿈치(하이힐!)에서 내려온 지도 오래되었고, 이미 고백했듯이, 젖을 물리면서 가슴도 완전 무장해제된 상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정장을 입어야 할 때가 있고, 노브라로 집 밖을 나서기에는 사회도 나도 아직 준비가 덜 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챙겨입어야 한다. 그 때마다 완전무장이라도 하듯, 비장해진다. 그나마 겨울에는 몇 겹으로 껴 입는 레이어드 룩으로 커버할 수 있어서 큰 어려움이 없는데, 요즘 같은 여름엔 애로사항이 좀 많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용케 이 모든 걸 갖춰 입어야 하는 일은 피해왔다만, 앞으로 그런 일을 해야한다면 나는 새로운 직업병 창시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0c37fdac9937c7b82f675c3e841dcc52.휴대폰도 없앴다. 이번에 처음이 아니다.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다. 한참 휴대폰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을 했었다. 특수한 경우이기는 했지만, 많게는 100여 통도 받았던 거 같다. 귀에다 휴대폰을 붙이고 있다시피 한 그 날, 심한 두통과 구토 증상까지 있었고, 결국 사직서에 '휴대폰이 너무 힘듭니다'라고 쓰고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휴대폰 없이 한참 해피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다시 입사지원서를 쓰면서 '휴대폰 없이'  일한다는 단서를 붙였으나, 또 다시 휴대폰을 떠안게 됐다. 



참 웃긴 게, 그렇게 싫었는 데도 일단 손 안에 들어오니 나도 모르게 휴대폰 종속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아이 키우면서 심심하고 답답할 때마다 휴대폰에 대고 떠들었다. 그리고 5만원이 넘는 전화료가 나왔다. 어느날 문득, 5만원이 넘는 삶의 질을 보장받고 있던가? 생각해 보았더니, 아니었다. 어떨 땐 아이가 매달리는 데도 휴대폰 저 너머의 사람에게 더 집중하고, 약속을 해놓고 꼭 약속을 미루거나  변경하는 버릇이 도졌다. 다 휴대폰을 믿고 그러는 거다. 다른 것보다 휴대폰 때문에 아이랑 옥신각신하기 싫어서  휴대폰을 없앴다. 불편하지 않냐고? 한결 편해졌고, 가볍고, 심플해졌다. 아, 그리고 통신비도 세이브다. 물론 가끔 아쉬울 때가 있고, 다른 사람들을 좀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좀 이기적으로 살고 싶다. 이러다 러다이트(기계 혐오주의자)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기에는 컴퓨터와 TV와 너무 친해졌다만……ㅋㅋ



그 밖에도 증상은 너무 많다. 한 여름에 사람 벌벌 떨게 만드는 에어컨이 힘들다못해 무섭다(물론 가끔 너무나 그립다!). 나에게 최고의 사치였던 향수도 젖을 먹이면서 자연히 멀어졌고, 샤워할 때도 거의 맹물로만 씻는다. 그렇게 무향무취로 돌아가니, 모든 사람을 동일한 향으로 만들어버린 P사의 섬유유연제 냄새, 너무 난감하다. 사람 많은 곳은 원래 안 좋아했지만, 요즘엔 10명 이상 넘어가는 자리에 가면 멍 때리고 있다. 하늘이 안 보이는 서울 한 복판에 가면 탈출할 생각만 하고, 강남은 나에게 저 휴전서 너머보다 더 머나먼 곳, 아니 사람 못 사는 곳이다. 어떤 기사에서 ‘전세값 때문에 젊은 부부들, 서울에서 밀려나…’라는 제목을 뽑았는데, 천만에! 난, 내 발로 서울을 걸어 나온 거임!!!



이렇게 나의 사회부적응지수는 점점 높아만 가고 있다. 다 애 낳고, 자연인으로 살다가 생긴 일이다. 지금이야 이렇게 살고 있지만, 이러다 사회생활 못 하는 거 아니야? 사실, 조금 걱정도 된다. 그런데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고, 지금 현재는 너무 행복하고 만족한다. 가능한, 이런 삶을 계속 살고 싶다. 이 자리를 빌어 자연스러운 삶,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게 해준 세 살 꼬마아가씨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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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30대 중반, 뒤늦게 남편을 만났다. 덜컥 생긴 아기 덕분에 근사한 연애와 결혼식은 건너뛰고, 아이 아빠와 전격 육아공동체를 결성해 살고 있다. '부자 아빠=좋은 아빠', '육아=돈'이 되어버린 세상에 쥐뿔도 없으면서 아이를 만났고, 어쩔 수 없이 '돈 없이 아기 키우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엔 돈이 없어 선택한 가난한 육아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경험을 통해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몸의 본능적인 감각에 어렴풋이 눈을 뜨 고 있으며, 지구에 민폐를 덜 끼치는 생활, 마을공동체에 재미를 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이메일 : tomato_@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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