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5세를 몇 달 앞둔 둘째는 유난히 먹는 것과 장난감 욕심이 많다.

유치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동네 수퍼를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고,

주말에 가족 모두가 함께 쇼핑이라도 하는 날엔

아이스크림같은 달달한 음식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장난감 가게에 "반드시 구경만 한다!"는 약속을 하고 보러가서

어김없이 울고불며 사달라 떼쓰며 가게를 나오곤 하는데...

그래서 남편과 나는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주말에 밀린 장을 보러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대형 마트나들이가 늘 두렵다.


아직 사리분별이 어려운 아이들이 시도때도 없이 드러내는

거의 원시적인(?) 물욕에 대해, 그 상황마다 부모가 현명한 판단을 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원하는 대로 다 사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게 우리 부부의 기본방침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갖고 싶어하는 마음과 요구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건,

요즘 물건들이 너무나 많고 다양하다보니,

어른인 우리조차 그 유혹을 이기기가 힘든 때가 많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물건을 둘러싼 실랑이를 벌이지 않으려면

먼저 장난감과 과자로 가득찬 소굴(?)을 피해야 한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그 소굴 근처로 갈 수 밖에 없는 날이 있다.

아이들의 겨울 내복과 방한 용품을 아직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허둥지둥 대형마트로 장을 보러 가게 된 날 있었던 일이다.


요즘 둘째가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 장난감은 이미 '싼타할아버지에게 소원비는 걸로!"

스스로도 알고 있기에, 반드시 구경만 하기로 약속을 하고 장난감 코너에 잠깐 들렀다.

마침,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변신 벨트'의

새로운 모델이 막 출시된 때라, 아이는 그 앞에서 황홀해하며 어쩔 줄을 몰랐다.

마침, 유치원 남자아이들 사이에선 이 새로운 장난감을 가진 아이들이 마구마구 자랑을 하는 바람에

다른 아이들의 욕구도 나날이 부풀어가고 있던 참이었다.

싼타할아버지를 기다리기엔 한 두 달이란 시간이, 다섯 살 아이에겐 마치 1,2년처럼 느껴지는가 보다.

역.시.나 ... 조용히 나오기로 했던 약속은 물거품이 되었고

장난감 코너를 나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주차장까지 오는 내내

울부짖는 아이를 데리고 걷는 우리 식구들의 표정은 험악하게 굳어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흘낏흘낏 돌아보았다...


아. 이젠 이런 순간이 정말이지 지겹다.

아들 녀석은 더 어릴 때부터 이렇게 늘 고집이 세고,

자기가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물건에 대한 집착이 아주 강했다.

여자아이들보다 남자 아이들이 그런 경향이 더 강하다는 얘기는 많이 듣긴 했지만

매순간 가는 곳보다 이런 식이고, 요즘은 야외나들이를 많이 하느라 이런 매장을

오랫만에 와서 그런지 더 흥분하는 듯 했다.

차를 타고 나서, 안되는 건 안되는 거라고 야단치고,

타이르고 구슬러서 겨우겨우 진정시켜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가게에서 아이가 본 물건은 요즘 '갓'나온 새 장난감이라 그런지

갖고싶은 아이의 마음이 보통 때보다 더 간절했던 모양이다.

아이는 누나에게 새 장난감의 한 부분을

대충이라도 좋으니 종이로 만들어달라며 매달렸던 모양이다.

숙제를 하던 큰아이가 귀찮아하며 종이로 대충 뭉쳐 만들어준 '수제(?) 장난감'은 이랬다.


CIMG4598.JPG


왼쪽에 있는 자물쇠처럼 생긴 게, 새 장난감의 한 부품인데 이걸 장난감 카달로그를 보고

누나가 대충 만들어준 게 오른쪽에 허술해보이는 종이 장난감이다.

둘째 아이는 이걸 어찌나 소중하게 가지고 놀던지, 유치원에 갈 때도 호주머니에 소중하게

넣어가서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던 모양이다.

종이 한쪽이 뜯어지기라도 하면 열심히 테잎으로 붙여 며칠이나 잘 가지고 놀았다.


그 모습이 귀엽고 재밌기도 하고, 정말 갖고싶어하는 아이 마음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 그렇게 놀면서 조금만 더 기다려라,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올테니!

그런데 사실, 아이가 그토록 기다리는 '변신 벨트'를 산타 할아버지가

가져다 준다해도(물론 엄마아빠가 몰래 준비해서 연출하는 거지만) 또 좀 걱정이다.

변신 벨트를 갖게 되면, 거기에 따르는 부속 장난감들이 또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아이는 잠시동안은 원하던 물건을 얻은 기쁨에 들뜨겠지만,

차차 그 관련 부속 장난감들에 대한 욕구로 엄마아빠와 또 다시 줄다리기를 하게 될 것이다..


얼마전에 우연히 유치원 같은 반 엄마들과 얘기할 기회가 생겨

나의 이런 고민을 털어놨더니, 다들 공감한다는 표정이었다.

"요즘 얘들 다 그런걸 뭐.

 얼마 안 지나 싫증낼 걸 뻔히 알면서도 그냥 사주고마는 부모들도 많을걸?!"


"아유, 우리 아들은 요즘 물욕대마왕같다구. 보는 것마다 다 사달래. 정말 못살겠어!"


"근데, 어느 정도 상황을 지켜봐서 꼭 원하는 거는 사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릴 때 어느정도 물욕이 채워지지 않으면 좀 더 커서 물욕에 대한 자제가 어려워

 더 돈을 많이 쓰게 되는 일도 생긴다더라구..."


휴.. 정말 부모 노릇 하기 힘든 시대다.

이제 겨우 5살 아이에게 덜컥 안겨주기에는 꽤 비싼 장난감들이지만

그것들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비치는지 엄마인 나도 잘 안다.

남자 아이들의 본능과 상상력을 마구 자극시키고 만족시켜주는 장난감들을

아이가 꽤 오랬동안 잘 가지고 논 걸 보면, 그만큼의 돈이 크게 아깝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장난감이 너무 많다는 것.

하나가 유행이 지나고 나면 또 새로운 것들이 아이들을 유혹할 거란 사실이다.


하긴 뭐. 둘째 아이만 물욕에 시달리는 건 아니다.

오랫만에 나간 대형 쇼핑매장에서 작정을 하고 지갑에 두툼하게 채워간 현금을 단 몇 시간만에

홀라당 써버린 이 엄마에 비하면야 뭐... 식구들 겨울옷만 장만한다더니

매장 분위기에 취해 크리스마스 기분은 혼자 다 내며,

이것저것 사들여 집안 곳곳에 쇼핑봉투가 널린 것도 모자라

택배 주문할 것들도 마음속에 몇 개나 줄서있는데다, 며칠 전 못 사고 그냥 돌아선 가게의 물건이

아직도 눈에 삼삼하니 ... 이걸 어쩌나.


어른도 이렇게 물욕을 다스리기가 어렵고,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인가 아닌가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데

5살 아이에게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은 매번 어렵기만 하다.

큰아이도 유아기에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나아졌으니

둘째도 지금이 아마 물욕의 절정기가 아닐까 하며, 좀 더 크기를 기다리면서 타이르고 있다.

자연으로 바깥놀이를 많이 나가고, 좋아하는 친구와 사람을 많이 만나게 한다해도

아이에게 이 문제는 별개인걸까.


휴.. 얼른 싼타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져오셔야 조용해질텐데.

9월부터 크리스마스, 싼타, 크리스마스, 싼타 .. 하루에도 몇 번을 외치고 있으니!

한참 온 것 같은데 아직 한달이나 남았다니.

아들 녀석보다 이 엄마가 먼저 숨넘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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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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