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4,5세가 된 아이들은

이제 밥도 스스로 먹고, 화장실도 혼자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언어도 제법 훌륭하게 구사할 수 있으며

밤에도 안 깨고 아침까지 논스톱으로 잘 만큼 멋있고 근사해진다.

다만, 그만큼 몸과 마음이 성장한 탓에

잠시도 심심한 걸 못 참고 놀고 싶어한다.

만3세 전후까지도 이어지던 낮잠의 유혹마저 물리칠 정도니까..

 

아들은 지금 딱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일주일 중에 하루도 빠짐없이 대부분을 각종 유치원 행사와 친구집에 가거나,

친구가 오거나 가족끼리 외출을 하거나 할머니댁에 놀러가거나.

그렇게 다이나믹하게 보내고도 더 많이 놀고 싶고 한다.

그런 아이의 놀이욕구도 충족시켜줄 겸, 더 추워지기 전에 밖에서 많이 놀리자 싶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그럭저럭 즐거운 가을을 만끽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며칠 전에 일본에 큰 태풍이 찾아왔다.

유치원도 갑자기 하루 휴원이 될 만큼, 많은 비와 바람이 불었다.

그렇게 한 이틀 밖을 못 나간 아들은 괴로워했다.

 

그런 아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생각보다 태풍은 금새 잠잠해졌고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하늘이 파아란 색으로 맑아오자, 학교갔던 누나도 일찍 돌아왔다.

"우리, 자전거 타고 놀러갈까?"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두 아이는 현관밖을 뛰쳐나갔다.

'그래, 도서관에 책도 반납할 겸 그 옆 공원에서 잠시 바람쐬고 오자.'

 

그런 마음으로 즐겁게 지갑과 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밖에서

"악!"하는 딸아이의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얼른 문을 열고 나가보니, 어른 자전거가 넘어져 있고 그 곁에서

두 아이가 넘어져 있었다.

딸아이의 얘기를 들어보니, 아들은 엄마가 나오는 그새를 못 참고

혼자서 자전거 뒤에 딸린 어린이 보조의자에 올라가려다 자전거와 함께

넘어진 것이다. 다치진 않았지만 곁에 있던 딸아이도 살짝 부딪혔다 한다.

 

아... 이제 좀 커서 한숨놓는다 싶었더니 또 한번 가슴이 철렁한 순간..

위험한 돌발행동을 한동안 어째 안한다 싶었더니

태풍 탓에 갇혀있었던 지난 이틀이 아들의 야성(?)을 다시 깨웠나 보다.

천만다행으로 넘어지는 자전거에서 재빨리 몸을 피했는지

아들은 곁에 있던 누나보다 더 멀쩡했다. 다친 곳도 없고..

딸아이 말로는 그 와중에도 땅바닥에 안부딪히려고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더란다;;

 

아... 정말...

아기 시절을 보내면서 하루에도 몇 천번 가슴을 쓸어내리던 기억이 다시 났다.

고작 2,3분 사이에 일어난 일.. 어째 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아직 긴장을 놓치면 안되겠구나..

아이들이 발을 딛고 있는 곳을 보니 단단한 돌로 된 현관 계단이 오늘따라 무서워보이고

거기에 아직 어린 아이의 머리가 부딪혔을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무섭다..

수십가지 무서운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안되겠다!

이번 참에 다시 한번 확실하게 각인시켜야 겠다. 무섭고 따끔하게 야단쳐야 해!!

 

넘어진 자전거를 그대로 둔 채, 아들을 붙잡고 단호하게 말했다.

"혼자서는 절대로 어른자전거에 올라타면 안되는 거야!!  엄마아빠가 있을 때 함께 하는 거라구!

알겠어?? 누나까지 다칠 뻔 했잖아! 왜 그렇게 참을성이 없는 거냐구!!"

간만에 듣는 폭풍야단에 아들은 무섭기도 하고 놀랐는지, 알았으니 이제 그만 하란 듯이

자기 두 손으로 내 입을 막으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아니야, 이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냐. 목숨과 연관된 일이라구!!'

내 마음 속 어딘가에서 그렇게 들려왔다.

 

"너 지금부터 엄마 말 제대로 들어! 자전거랑 넘어져서 땅바닥에 머리라도 부딪혔으면

죽는 거라구. 죽으면 엄마아빠도 다시 못 봐. 하늘나라로 멀리 떠나는 거야. 그래도 좋아??"

 

자기 딴에도 엄마 말이 꽤 무섭고 심각하게 느껴졌는지

아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풍이 막 지나가며 그려준 하얀 구름과 새파란 하늘을 천천히 보고 있더니

다시 엄마를 바라보며, 웬만해선 보기힘든 아주 심각한 표정과 소심한 목소리로 하는 말,,

"매..미..처럼? "

 

뭐??  지금 매미 얘기가 왜 나와! 

첨엔 얘가 아직 사태파악을 못 하고 있나? 내가 야단칠 때 딴 생각하고 있었나?싶어

더 화가 나려하다가 여전히 심각한 아들 표정을 보니 그건 아닌거 같고..

놀라고 흥분된 마음이 아직 가라앉지 않아  씩씩대며 아이 표정을 살피고 있자니

그때서야 아들의 '매미처럼'에 담긴 뜻이 이해가 되었다.

아들은 여름이 지나면서 집 주변이나 나무 아래 여기저기서 떨어져 죽어있는 매미들을

숱하게 보아온 지 얼마되지 않았고,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이젠 목숨이 다해서

하늘나라로 갔다는 말을 주고받았고, 집 근처에 떨어져 있는 매미는 아이들과 함께

나무 밑에 묻어주기도 했던 터였다.

 

엄마가 사건사고의 위험에 대해 목놓아 훈계하고 있을 때

아들은 머릿속에서 엄마의 이야기를 매미의 죽음과 대비해서 연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전히 겁먹은 채 말이 없는 아이의 표정에서 그 모든 장면들이 읽히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아니, 매미는 자연사고.. 너랑 자전거는.. 그게 아니잖아...

이 와중에 매미의 죽음을 떠올리는 아이의 상상력이 너무 사랑스러운데도

자전거에서 넘어지는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너무 끔찍해서 마냥 귀여워 할 수만도 없고..

이 상황에서 내가 웃어버리면 지금까지 야단친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테니

애써 엄격한 표정을 유지하며

어른이 없는 곳에서 위험한 짓은 절대 안 하기로 약속을 하고 정리를 했다.

 

휴..

그날이 있고나서 밤에 곤히 잠든 아들의 얼굴을 보고있노라면

안 다치길 천만다행이다..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아들의 그 "매미처럼?" 멘트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다.

아냐! 웃으면 안돼! 큰일날 뻔 했잖아. 

그런 말에 동요되지 말고 더 야단칠 걸 그랬나?

꽤 무서워하는 것 같았으니 제대로 알아들었겠지..

소심한 엄마는 이런 생각들로 지난주 며칠 밤을 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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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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