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이의 초경파티.jpg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간 딸이 나를 불렀다.

"엄마.... 잠깐만 와 주세요"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아... 드디어 그 날이 왔구나..

나는 생리대와 새 속옷을 챙겨 딸에게 건네 주었다.

잠시 후에 딸은 조금은 쑥쓰러운 듯 조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와서 내 앞에 앉았다.

"윤정아... 기분이 어때?"

"... 잘 모르겠어요. 그냥... 좀 이상해요"

"그래.. 그럴꺼야"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한꺼번에 여러가지 감정이 밀려들어 잠시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정말 정말 다행이야.

엄마가 너를 도와줄 수 있을 때, 충분히 안전한 공간에서, 충분히 여유있을 때 시작해줘서..

엄마가 너를 낳고 난 후에 항상 이날을 생각해왔어. 딸을 키우는 모든 엄마들이 그럴꺼야.

딸 아이의 첫 생리란 모든 엄마에겐 정말 특별한 일이니까..

엄마는 네 나이때 생리에 대해 어떤 어른으로부터도 자세한 설명이나 안내를 받지 못했어.

그저 닥치면 안다... 그런 얘기만 들었지.

하지만 막상 닥쳤을땐 너무 당황했지. 어쩔줄 몰랐고.. 겪으면서도 잘 몰랐어.

그래서 힘들었어.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나를 잘 챙기기 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  엄마 시절에는 대부분 그랬어.

그래서 평생 생리를 하면서도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모른채, 불편하고,

싫고, 귀찮은 일이라고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도 엄청 많고..

그래서 내가 엄마가 되어 딸을 낳으면 그 딸에게는 나 같은 경험을 주지 말아야지..

좋은 안내자가 되어야지...

몸에서 일어나는 일의 의미를 잘 전달해줘야지.... 생각했지. "

여기까지 말하고 나는 지금까지 내가 써 왔던 생리에 대한 글 몇 편을 윤정이에게 보여 주었다.

한 살이 된 윤정이를 안고 이날을 생각하며 썼던 글과, 생리에 대해 내가 배우고 깨달았던 것을

적었던 글과, 30년 넘게 생리를 해 오고 있는 나 자신과 생리에 대해 세상이 여자들에게 덧입혀 온

편견들에 대해 썼던 글들을 윤정이는 말없이 읽으며 가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나도 그 앞에서 말없이 눈물을 닦았다.

"엄마가 하고 싶었던 얘기들이 뭔지 알겠어?"

"... 네.."윤정이는 붉어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윤정아..

태어날때부터 네 몸안에 자리잡고 있던 난자들이 이제 성숙해져서 활동을 시작한거야.

앞으로 적어도 30년 이상 난자들은 자궁 양쪽에 있는 난소로부터 번갈아가며 매달 한번씩 자궁으로

내려올꺼야. 몸은 아기를 만들 준비를 위해 자궁벽에 두터운 혈관벽을 만들어 난자를 품고

정자를 기다리지. 정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준비해 둔 자궁벽을 허물어서

몸 밖으로 보내.  그게 생리잖아. 우리가 한참전부터 얘기해왔던 내용들이지.

이제 윤정이는 언제든 엄마가 될 수 있는 몸이 되었어. 그만큼 자신을 더 잘 돌보고 잘 지켜야 할

책임도 생겼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몇 번 경험해 내면

한 달에 한번씩 네게 오는 이 일을 수월하게 잘 맞이하게 될꺼야.

물론 엄마가 늘 곁에서 도울꺼고...

생리를 시작했다는 것은 네가 네 나이에 맞는 자연스럽고 건강한 성장을 잘 해왔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앞으로 살아가는 내내 네 몸과 더 잘 지내고 더 잘 알아가야 하는 책임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해.

내 몸에 일어나는 일을 내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보살피며 살아가는 가에 따라 여자의 몸과

마음은 정말 큰 영향을 받아. 네 몸과 더 친해지고 이해가 깊어지면 윤정이는 평생 스스로를 잘 돌보며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을꺼야.."

이런 얘기를 하면서도 우린 이따금 서로 눈물을 닦으며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무엇보다 고마워.

엄마가 이날을 생각하며 항상 염려했던 것은 윤정이의 첫 생리가 너무 난처한 상황이나 장소에서

시작될까봐..

체육을 하는 운동장에서나 혹은 어디를 가는 차 안에서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나, 중요한 행사를 앞둔 때나

뭐 그런때 시작되면 어쩌나 하는 거 였거든. 엄마가 도와줄 수 없을때, 충분히 네게 일어난 상황을 처리할 수

있는 여유가 없을때 시작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역시 윤정이는 엄마가 늘 기도해온 대로 정말 좋은 시간,

좋은 상황에서 시작해 준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몰라.

또 엄마가 나이 많은 엄마이기 때문에 혹 엄마의 생리가 완전히 끝난 후에 네 첫 생리가 올까봐 두려웠거든.

왜냐하면 엄마에게 폐경, 아니 요즘은 완경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완경이 오면 엄마 삶에서도 중요한

전환기이기 때문에 엄마 자신도 엄마의 몸을 새롭게 이해해야 하는 숙제를 시작할테고 그렇게 되면

첫 생리를 하는 너를 충분히 제대로 살펴주지 못할까봐 말야.

그런데 아직 엄마가 생리를 하고 있을때 윤정이가 첫 생리를

해 주어서 너무 고마워. 언제까지 일진 모르지만 엄마 나이가 이제 쉰이니까 그리 오래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너와 같은 경험을 나눌 시간이 생겼으니까 너무 고맙지"

윤정이는 다시 눈가에서 눈물을 닦았다.

마악 생리가 끝난 참이라 아직도 내 생리대가 담겨 있는 세면대에 딸 아이의 첫 생리혈이 묻은

속옷을 담그면서 열 세살과 쉰, 두 여자의 생이 이렇게 섞여 찬찬히 우러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밤 늦게 퇴근한 남편까지 온 가족이 모여 작은 케익을 놓고 윤정이의 첫 생리를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언니 몸에 찾아온 변화에 누구보다 흥분하고 관심이 컸던 이룸이는 아빠가 첫 생리를 축하하는 선물로

언니에게 천생리대를 넣을 수 있는 예쁜 파우치를 선물한 것이 서운해서 대성통곡을 했다.

남편은 초경이 오면 그때는 더 이쁜 파우치를 선물해주겠다며 울음이 끊이지 않는 막내를 달랬고

가족들은 이룸이의 소동에 한바탕 웃었다.

여동생의 초경에 대해 한 마디 해달라는 요청에 필규는 노코맨트를 부르짖었다.

"전 할 말 없어요. 저는 겪어본 일이 아니잖아요"

"무슨 소리야. 너는 산울학교 다닐때 '아른 파티'라는 이름으로 했잖아. 아이와 어른의 중간이라고

그렇게 이름 붙였다는 것까지 엄마는 기억하는데? 초경을 한 친구와 앞 둔 친구, 몽정을 했거나

앞둔 친구들 모여서 선생님들이랑 촛불 켜 놓고, 엄마들이 편지도 써서 다 보내고 같이 읽고 너,

엄마 편지 들으며 울었다는 얘기도 들었다구! 선생님한테 선물도 받아 놓고는.."

"그때 윤정이는 나한테 한 마디도 안 해줬잖아요"

"그거야 너는 학교에서 했고 그때 윤정이는 어려서 몽정을 이해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렇지"

몹시도 뜸 들이던 필규는

"윤정아, 앞으로 30년, 아니 50년 동안 파이팅!" 한마디를 던지고는 빙글빙글 웃었다.

이룸이는 울어서 붉어진 눈으로

"나만 파우치 못 받아서 너무 속상해.. 언니는 성인으로 더 한발자국 갔구나..

아플것도 같고, 어떤 느낌인지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 나는 언제할까.. 걱정도 되고...

그렇지만 ..축하해" 속삭였다.

"아빠는... 남자들만 있는 집에서 자라서 사실 생리나 이런것에 대해 잘 몰랐어.

결혼하고 엄마한테 얘기를 많이 들어서 알게 되었어. 엄마가 너희들하고 이런 얘기 자주 나누는

것도 같이 들었고...

무엇보다 집에 엄마랑 같이 있을때 시작된 것이 참 고맙고 기뻐. 윤정이가 잘 자라준 것도 고맙고..

지금까지 참 건강했고, 잘 자라주었고, 언제나 고맙고 대견스럽고 그래"

윤정이는 울먹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아빠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했다.

"윤정아 ... 오늘 하루.. 어땠어""

".... 잘 모르겠어요. 그냥...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어색하기도 하고...."

"그래.. 엄마가 물어보니까 저랑 친한 친구들도 올 겨울에 한 두명씩 생리를 시작했더라.

이제 개학하면 더 많은 친구들이 같이 생리를 하게 될꺼야. 보건 선생님에게도 말씀 드리고

만약 학교에서 난처한 일이 생기면 제일먼저 달려가 도움을 청해.

혹 수업시간에 생리가 시작된 것 같으면 선생님에게 말해서 도움을 받고.."

"만약 남자 선생님이면요?"

"그래도 말씀 드려야지. 생리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 무엇보다 당당했으면 좋겠어.

생리라는 말을 직접 하지 않더라도 네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게 당당하게 행동해"

"네.."

다같이 왁자하게 웃으며 촛불을 끄고 케익을 함께 먹었다.

밤 늦은 시간에 딸아이와 나의 천 생리대를 비벼서 빨고 삶았다.

다시 깨끗해진 생리대를 건조대에 널면서 늘 엎드려 자곤 하던 딸 아이가 반듯한 자세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꿈속에서도 조심하느라 긴장을 놓지 않고 잠이 든 모습에 애틋함이 밀려왔다.

하루 동안 참 많은 일을 겪었구나. 마음이 고단했겠다.

괜찮아. 겪다보면 요령도 생길거야.

성장이란 계단은 한동안 완만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가팔라져서 하루가 다르게 새로와지는구나.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겠지.. 같이 가보는거다.

네가 필요할때 엄마는 언제나 곁에 있을테니.. 걱정하지말고..

'처음'이란 언제나 참 중요하지.

그 '처음'을 잘 겪어내면 그 일이 주는 모든 경험들을 잘 겪어나갈거야.

네 첫 생리... 잘 겪어냈다. 고맙다.

네 삶의 봄이 새로이 왔구나.

엄마는 늦여름 어디쯤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작되는 봄도 무르익은 늦여름도 다 아름답다.

같이 가보자.

매일 새로운 계절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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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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