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 이룸3.jpg

 

아침 여덟시 십 오분..

두 딸과 집을 나선다. 바람은 조금 차지만 햇살이 좋았다.

 

"엄마, 오늘은 걸어서 가는게 정말 좋아요.

다연이 만나기로 했거든요. 맨날 만나서 같이 걸어가기로 했어요"

"그래? 니들이 기분좋게 걸으니까 엄마도 힘 난다.

'수리(식당집에서 기르는 개)가 기운이 없어 보이네. 수리야! 수리가 심심한가보다"

"수리는요, 우리가 가까이 가야 움직여요. 어제도 내가 가니까

나랑 하이파이브 했어요. 언제는요, 수리 줄을 풀어서 산책을

시키더라요. 우리 앞으로 와서 완전 깜짝 놀랐어요"

"그래도 수리는 착해서 안 물어. 그래도 풀어서 산책시키기엔  너무 큰데..."

 

"봐봐. 길가에 풀들이 지난주보다 초록색이 늘었어. 쑥도 많이 나왔네?"

"아.. 쑥 부침개 먹고 싶다"

"조금 더 크면 부침개 할 수 있겠다. 첫물 쑥은 정말 몸에 좋거든"

"엄마, 나는 진달래 부침개 먹고 싶어요"

"이룸아, 언니도 진달래 부침개 만들 줄 안다? 거기에 개나리꽃

넣어도 맛있어"

"제비꽃 넣으니까 정말 이쁘더라"

"아... 먹고 싶다"

 "여기 이 길, 여름에 칡덩굴이 막 우거져서 촉수처럼 너울거려서

우리가 이 길 지날때 뛰어 갔던 거, 기억나?"

"근데 다 잘라버렸나봐요. 없어졌어요"

"아니지, 칡이 얼마나 질긴 생명인데.. 지금 숨어 있는거야.

때를 기다리면서... 곧 온 산을 덮을 걸?"

 

"엄마가 윤동주의 '눈감고 간다'를 노래로 만들었다? 같이 불러볼래?"

"나는 엄마가 좋아요, 높고 높은 하늘보다 더 많이.. 그 노래에 붙인거죠?"

"그 음에 붙이니까 딱 노래가 되더라?"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았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엄마, 언니랑 나는요, 눈 감고 걷다가요, 감았던 눈을 와짝 뜨라 했을때

정말 와짝 떴다요?"

"진짜? 감았던 눈을 '번쩍'뜨라는게 아니고 '와짝' 뜨라니..

윤동주 시인이 정말 멋진 표현을 했더라. 와짝 떠라"

"와짝 떠라, 와짝 떠라. 히히"

 

"조지훈의 '달밤' 암송해 볼 사람?"

"나요, 나요"

"언니야, 같이 하자"

"순이가 달아나면

기인 담장 위으로 달님이 따라 오고

분이가 달아나면

기인 담장 밑으로 달림이 따라 가고

하늘에 달이야 하나인데

순이는 달님을 데리고 집으로 가고

분이도 달님을 데리고 집의로 가고"

"근데요 엄마, 윤동주 시 중에도요, '달밤'이라는 시가 있어요"

"그래? '달밤'이라는게 시를 쓰기 좋은 주제인가봐.

엄마는 윤동주의 '달밤'은 모르는데, 찾아봐야겠다."

"시집, 내 책상 위에 있어요"

"우리, 윤동주의 동시 '산울림' 다 외웠잖아? 다음에 같이 암송할 시, 이번에도 윤정이가 찾아봐. '산울림'도 정말 좋았거든, 쉽고.."

" '봄'이라는 동시가 있는데요, 완전 재미있어요"

"그럼, 이번에도 윤정이가 종이에 써 줘. 지난번처럼 그림도 그리고.."

"네!!"

 

"여기 비닐하우스에 딸기 농장 생겼더라? 딸기도 판대.

아빠가 너희들 밭에 딸이 모종, 잔뜩 심어주신대"

"나도 엄청 많이 심을래요. 완전 많이.."

"딸기 많이 달리면요, 팔기도 할래요"

"한바구니에 4천원?"

"아니요, 3천원... 그 중에 500원쯤은 저 가질래요. 저금하게.."

"엄마도 내 딸기 사 먹으세요. 100원 주고... 히히"

"니네들 딸기도 저렇게 주렁 주렁 많이 달렸으면 좋겠다.

아, 정말 맛있겠다"

 

"저기, 저 나무에 매달려 있던 호박, 생각나세요?"

"그러게.. 덩굴이 나무 가지를 타고 올라가서 꼭 나무에 호박 열린것처럼

매달려 있었는데, 그 호박.. 누가 먹었을까"

"엄마, 마법 지팡이 하나 만들어 주세요. 스투페파이 하게요"

"음.. 이게 확실히 포도나무 가지야. 어제건 사과나무 가지 같더라.

너무 길게 하면 안돼, 30센티 정도가 적당하다고.."

"스투페파이.. 이렇게 하는거죠?"

"끝을 살짝 휘두르면서... 스투페파이!!"

"또 무슨 주문 있어요?"

" 어두울때 '라모스'라고 외치면 지팡이 끝에서 불빛이 나와서 환해져"

"라모스!"

" '봄바르다'는 폭파 주문이야. 펑 하고 폭파돼"

"봄다르다!! 히히, 재밌다."

 

"엄마, 언제는 언니랑 나만 걸어갔다가 같이 걸어와도 돼요?"

"니가 1학년에 입학하면 언니는 4학년인데, 끝나는 시간이 다를 걸?"

"수요일엔 4학년도 4교시해요. 그럴 때 걸어갈 수 있어요"

"우리끼리 가고 엄마는 편히 쉬고요"

"그럼, 엄마는 뚱띵이 되겠다. 걸어야 운동도 하고 살도 빠지는데.."

"에이, 가끔은 쉬어야죠. 우리끼리 가면 엄마는 편하잖아요"

"그런 날 오면, 엄마는 아침부터 놀러가야지"

 

"오늘은 날씨, 정말 좋다. 금방 따듯해지겠어. 오늘은 학교 총회라

엄마는 하루 종일 학교에 있을꺼니까, 이따가 학교에서 만나자"

"네!!"

"엄마, 안아주세요. 사랑해요"

"엄마가 더 사랑해"

"내가 더 사랑해요!!"

"그래, 그래.."

 

오전 여덟시 40분쯤, 두 딸은 교실로 들어갔다.

딸들과 걸었던 길을 나 혼자 되 짚어 걸어왔다.

길가마다 두 딸이 조잘거린 이야기들이 몽실몽실 살아나서

풍경속에서 너울거렸다.

봄 햇살 속을 귓가에 맴도는 딸들 목소리 따라 춤 추듯 걸었다.

이런 봄 날 이라면 앞으로 한 만 년 쯤 더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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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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