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다엘

상처를 드러내는 법

핏줄 강조 사회에서 공개입양이란

제11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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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입양 세미나 모습. 어린 시절 자신의 입양을 알고 당당해지는 경험은 소중하다. 정은주

 

“초등학교 입학 뒤 다엘의 입양 사실을 굳이 교내에 알려야 했나요?”

지인이 나무라듯 내게 말했다. 학교에서 한 아이가 입양을 이유로 다엘을 놀린 사연을 전해들은 지인은 자신의 일인 듯 분개했다. 한국에서 공개입양 역사가 20년 가까이 됨에도 여전히 공개입양은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입양을 공개해서 얻는 게 뭐지? 아이를 보호하려면 발설하지 말아야 하지 않나?’ 이면의 목소리다.

 

공개입양은 당사자에게 입양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므로 주변에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고 하는 입양부모가 있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물론 당사자인 자녀에게 공개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아이가 처음 접하는 공적 사회인 초등학교의 구성원에게 공개하는 것이 이와 별개일 수 없다. 주변에 공개하는 것을 꺼리는 부모는 아이가 상처받거나 입양에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될까봐 그렇다고 한다. 여기에 이율배반이 있다. 아이가 당당하길 바라면서 한편으로 당당해질 상황을 숨기고 막겠다는 것이다. 이중적 메시지는 눈앞의 상처를 피하려다 더 큰 함정에 빠지는 결과를 낳는다.

 

오래전, 상처를 드러내는 법을 알려준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고등학교 교사 시절 내가 담임했던 영준(가명)이 이야기다. 6살 때 동네 아이들과 놀다 감전 사고를 당한 영준이는 양팔이 절단되는 장애를 입었다. 입학식 날 교실 문 앞에서 환한 웃음을 보인 영준 어머니와, 아들이 발로 글씨를 쓸 수 있도록 책상과 의자를 만들어준 영준 아버지를 기억한다. 영준이는 빠짐없이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했고, 공부도 곧잘 했다. 결정적 장면을 본 건 신체검사 때였다. 아이들이 모두 윗옷을 벗고 검사를 받았는데, 영준이도 당당히 옷을 벗고 화상으로 덮인 가슴과 두 팔이 절단된 어깨를 드러냈다. 어느 아이도 영준이의 장애에 주목하지 않았다. 검사하는 선생님들만 당황했을 뿐. 영준이가 졸업하고 몇 년이 흘렀을 때,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공익광고에 등장한 그를 TV에서 보았다. 멋진 청년으로 성장한 모습이었다.

 

‘입양을 숨기는 게 아니라 굳이 드러내지 않을 뿐’이란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다. 핏줄을 강조하고 출생 스토리에 방점 찍는 분위기에서, 입양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면 촘촘하게 여러 세트의 거짓말을 준비해야 한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임신·출산·가족관계를 다루고 자신의 태몽을 알아오라거나, 심지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찍은 초음파 사진을 가져오라고 하는 게 우리의 학교 현실이다.

 

자신의 기본적인 역사를 숨기거나 얼버무리지 않는 것은 긍지를 갖는 첫 출발이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 본인이 입양 공개 여부를 결정해야겠지만, 어린 시절에 입양 공개로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경험을 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최선의 도움을 주면서 그 길을 함께 가는 것이 부모가 당연히 감내해야 할 몫이다.

 

정은주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웰다잉 강사

 

(* 이 글은 한겨레21 제 1172호(2017. 7. 31)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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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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