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하나를 낳은 지 40일이 다 되어간다.

예정일을 일주일이나 지나서 세상에 나온 아이 덕분에 잠시 처가에서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아내와 함께 힘을 주며 아이를 낳는 것보다 혹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며 기다리는 일주일이 더 힘들었다.

이 모든 조바심을 날려 버린 것은 출산 때 아내 곁을 지킬 수 있었고,

세상에 나온 아이 얼굴을 아빠가 현장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아내는 아내대로 제때, 안전하게 아이를 낳기 위해 남편과 매일 천변을 걷고 계단을 오르고

베이비트리앱을 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내 곁을 지키며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는 여성이 얼마나 위대한지 느낄 수 있었고,

작은 몸집의 아내가 애를 쓰는 것을 보고는 한편으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함에도 아이 낳을 때의 감동과 둘째를 키워야 하는 아빠의 현실은 달랐다.

신생아를 키운 지가 무려 4년 전인지라 애기를 낳고는 어떤 기저귀를 사야 하는지,

새벽에 분유는 미지근한 물에 얼마나 희석을 시켜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릴 때 잠결에 ‘누구 아이가 이렇게 시끄럽게 울지’하다가

“분유 좀 타주세요”라는 아내의 부탁을 듣고서야 새삼 둘째아이의 아빠가 된 점을 실감하게 된다.

새롭고 낯선 세상에 발을 딛는 미개인이 된 느낌이랄까.

아내는 아이를 낳고 다시 몇 달간은 산후조리를 해야 한다.

아이가 새벽에 칭얼거릴 때는 아내가 나를 배려하려고 처가로 갔나 싶다가도

휴일 끝나고 제주로 복귀할 때는 기분이 착잡해진다.

온전히 가정을 꾸려나가기에는 제주 생활이 조금은 부족한가 싶어서 미안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빨리 돌아오지 않는 아내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기러기 아빠’가 된 지 세 달이 되다보니 내 일상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아이와의 긴 통화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고 하릴없이 스마트폰을 열어보는 일이 잦아졌다.

‘슬로푸드 제주모임’의 강연회가 있어 성당을 자주 찾아가게 된 점,

초파일 허리가 아픈 어머니를 위해 절에 들렀다가 매일 백팔배를 하게 된 점은 일상의 큰 자극을 주었다.

그동안 쓴 베이비트리 육아기을 엮어 육아책을 내고 제주지역에 정착하는 데 도움을 준 분들에게 감사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반평생을 살아온 결을 조금은 다듬어 ‘나이 마흔의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선언문을 작성해보았다.

앞으로 살아갈 반평생을 의, 식, 주, 사람, 일, 건강, 취미, 대외활동, 종교 등으로 분류하고

내게 맡는 스타일을 정의내려보았고, 앞으로 나는 그런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둘째를 낳으며 혼자 지낼 시간이 뜻하지 않게 생겼다.

혼자라는 것이 외로운 과정이지만 이 또한 마흔을 시작하며 더 성숙하라는 아이의 선물이 아닐까.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저자 홍창욱

*이 글은 5월 20일 한겨레 신문 베이비트리지면에 실린 생생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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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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