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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덥다. 정말 덥다.

더위에 강한 내가 이렇게 더운걸 보면 온 나라가 절절 끓고 있나보다.

이렇게 더운 날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빴다.

남편이 내일부터 휴가에 들어가는데 오늘 퇴근 후 시댁이 있는 강릉으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8월 1일이 어머님 기일이다. 3형제 모두 여름 휴가를 기일에 맞추어

시댁으로 모이게 되었다.

내일 종일 음식을 만들고 밤 12시가 넘으면 제사를 시작하리라.

형님과 동서네는 오늘 강릉에 도착해서 장보고 집안 치우고

애를 많이 쓰고 있을 것이다.

 

나도 집에서 땀 흘리며 시댁 내려갈 준비를 했다.

농사 지은 푸성귀 거두느라 땡볕 아래서 고추, 피망, 파프리카 따고

장마 후에 새 순이 올라온 비름나물을 한 바구니 가득 뜯었다.

그리고 깻잎반찬을 만들어 가기 위해 깻잎을 가득 땄다.

지금 우리 밭에서 가장 많이 넘치는 것이 깻잎이어서

내가 깻잎반찬을 만들어 가겠다고 한 것이다.

해놓고 나면 반찬통 두 개 밖에 안 되는 것인데

음식이라는게 그렇다.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것 같아도

수없는 손길이 가야 음식이 되는 것이다.

아랫밭 여기 저기 심어 놓은 깻잎들을 따서

일일이 씻는 것도 일이고, 두장씩 냄비에 깔고 양념장 뿌려서

멸치국물에 졸이느라 한참을 더운 부엌에서 서 있었다.

 

그 사이 사이 집안 치우고 아이들 옷가방 싸고

아침과 점심을 해 먹고 치우고, 빨래 하고, 마른 빨래 개키고

냉장고를 정리했다.

3박 4일을 집을 비우기 위해서는 챙길것도 많고, 할 일도 많다.

 

남편의 낡은 와이셔츠를 입고 밭에서 깻잎따가다 생각났다.

어머님도 작년 이맘때 폭염에 밭일 하시다가 쓰러지셨지.

젊은 사람도 이렇게 땀이 줄줄 흐르고 모자를 써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만큼 더운데 칠순이 넘은 우리 어머님은

작은 체구에 다른 사람처럼 하느라고 얼마나 악착같이 일 하셨을까..

그러나 결국 심장에 무리가 와서 쓰러지셨으리라.

그 뜨거운 여름, 경황없이 어머님의 장례를 치르던 기억이 난다.

여름날보다 더 뜨거웠던 화장장의 그 열기도 생생하다.

벌써 1년이 지났구나.

 

한 여름 휴가를 시댁에서 지낸 것은 결혼 초 몇 년이 전부였다.

그 다음부터는 여름엔 차들이 너무 밀린다고, 너무 덥다고

내려오지 말라고 늘 만류하셨다. 그게 어머님 진심인 줄 알았다.

돌이켜보니 더워도, 밀려도, 힘들어도 내려오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차마 당신 입으로 말 하지는 못해도 그래도 자식들이 한 여름

더위와 밀리는 고속도로를 뚫고 내려오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결국 어머님은 제일 더운 날 돌아가셨고, 우린 매년 여름 휴가에

기제사를 모시기 위해 시댁에 모이게 되셨으니

하늘에 계신 어머님은 자식들이 힘들게 모이는 모습이 안스러우면서도

어쩌면 기뻐하실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한 여름에 대식구가 모여 제사를 지내는 일이 쉽지는 않다.

더운 날 좁은 부엌에서 더운 음식을 장만하고 대식구들

식사를 챙기다보면 땀은 비오듯 흐를 것이다.

제사가 끝나면 가까운 바다에 나가 몸을 담그기도 하겠지만

휴가철 사람들로 넘치는 바다는 어딜가도 북적이고 부산스러울 것이다.

그런것이 싫어서 휴가철엔 바닷가를 가 본 적이 없었다.

매년 여름 휴가에 제사를 모셔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솔직히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하지만 아버님 혼자 오래 적적했을 시댁에

다시 자손들의 말 소리가 가득해지는 것이, 모처럼 손주들을 보며

웃으실 아버님의 모습에 마음이 흐믓해지기도 할 것이다.

 

늘 나보다 먼저 내려가서 궂은 일 미리 다 해 놓는 형님과

동서가 있으니 든든하고 고맙고 어머님 안 계신 날들을

잘 버텨주고 계신 아버님을 며칠이라도 살펴드릴 수 있으니

큰 다행이다.

 

한 여름 휴가철 강릉에 내려가 본 일이 없다.

이젠 익숙해져야 하리라.

한 사람이 떠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새롭게 오는 경험들과

변화하는 환경속에 열심히 적응하다보면 얻게 되는 삶의 지혜들도

늘어나리라 믿는다.

 

덥고, 먼 길.. 잘 다녀오자. 

 

그러나 제일 더울때 다시 대 가족이 모이는 것이

제일 힘들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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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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